창작스토리

좌우당간, 발견했을 때 즉각 신고하는 게 우선순위 아니겠소? (염빙 바이러스 (제22회))

허슬똑띠 2023. 1. 2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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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곳을 ‘신세계’라 불렀다.

 

15. 실마리를 찾다.(계속)

 

아니나 다를까 한기자가 염빙바이러스 발견 특종을 기사화하기 위해 신문사로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직원들이 대거 몰려왔다. 이들은 한국에 도착한 당일 호텔숙소에서 개별적으로 빠져나온 다음 약속된 강원도 산악지대의 움막에 집결하였다. 이곳은 그들이 오기 전 조직에서 미리 준비해둔 아지트였다. 모두 도착하자 이번 작전의 책임자가 나서서 벽 한편에 붙어있는 지도에 주목하도록 한 다음 이곳 지리에 밝은 한국인을 내세워 자세하게 설명하도록 하였다. 그 다음 행동지침과 그밖에 산악에서 장기간 지낼 각종 장비들을 나누어주고 출정지시를 내렸다.

 

등산객을 가장하여 몇 명씩 조를 이룬 이들은 산등성이와 골짜기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창곤이 들렀던 산골 민가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은 한국인을 내세워 집주인에게 여러 가지 물건들을 제공하며 일단 환심을 샀다. 주인 할머니를 안심시키고 난 뒤 유도질문을 해가면서 정보를 캐내기 시작했다. 성공이었다. 집주인은 병곤과 창곤이라는 서울 사람이 차례로 다녀갔다는 것과 병곤이 거의 한달 간을 그 민가에서 지내다가 계곡에서 추락, 사망했던 사실까지 알려주었다.

 

병곤이라는 청년이 사망한 지 거의 일 년이 거지반 되어가는 날 갑자기 그의 형인 창곤이 다시 찾아와서 동생이 사망한 장소로 가는 길을 알려달라고 했다는, 묻지도 않은 얘기까지 해주었다. 그들은 확고한 단서를 잡았다며 쾌재를 불렀다. 추가 인원의 지원을 요청한 다음 집주인으로부터 알아낸 그 주변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소득도 올리지 못하자 그들은 그 운석이 창곤에게 가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서울로 돌아온 그들은 이창곤이라는 사람을 수소문하였다. 그의 소재지를 알아내는 데에는 몇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창곤의 회사사무실이 있는 건물에 도착했을 때 흠칫하여 모두 몸을 숨겼다. 전투경찰이 그 건물을 에워싸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이미 그들의 행동거지가 모두 알려졌고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 것임을 인지한 그들은 조직에 연락을 취하여 조직에서 급하게 마련한 거소로 움직였다. 그곳에서 그들은 안전하게 퇴각할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16. 외로운 싸움

 

실의

 

다음날 W신문사 조간에는 염빙바이러스의 발견에 대한 기사가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세계 최초로 발견된 외계 생물체 [염빙바이러스]

바이오 벤처기업인 A사의 이창곤 사장은 소행성의 운석에서 이상하게 생긴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이 파편은 1년 전 지구로 추락한 소행성의 일부인데 이사장의 동생인 이병곤씨가 강원도 산간지역에서 발견한 것이다. 아깝게도 그는 이를 발견하고 돌아오는 길에 벼랑에서 추락하여 사망하였다고 한다.

이창곤사장은 바다로 추락한 소행성 파편과 이 운석이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 바이러스가 현재 동중국해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빙하를 생성한 존재임을 확신하였다.

그래서 이를 분석하면서 갖가지 실험을 한 결과 염분을 공급하면 급속히 빙결되면서 커지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염분의 추가 공급이 없으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다는 것도 밝혀냈다.

정부에서는 이 바이러스를 활용하여 문제의 빙하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을 빠른 시일 내에 모색하여야할 것이다.‘

이와 함께 염빙바이러스의 사진도 함께 게재되었다.

 

창곤이 위기를 모면하게 된 때는 꽤나 늦은 시간이었지만 한기자는 아랑곳없이 염빙바이러스 관련 자료를 가지고 신문사로 날아가듯 향하였다. 전화를 해보니 이날따라 이런 상황을 예견이나 한 듯 편집국장이 자리에 있었다. 기사의 무게를 감안할 때 이미 완료 되어가고 있던 인쇄원판을 전면 수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관련 직원들이 영문을 모르고 다시 호출되어 긴급작업에 들어가 다음날 새벽에 신문의 배포가 가능하였다.

이렇게 한기자가 신문사에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창곤은 정보부직원과 정부기관에서 급파된 직원들에게 심문을 받고 있었다. 정보부의 고위요원이 직접 그를 취조했는데 그의 인상은 정보요원 같지 않게 부드러워보였으나 말투는 사뭇 고압적이었다. 그는 자리에 앉더니 옆에 배석한 요원과 창곤을 찬찬히 갈마보았다. 창곤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이미 간파했다는 듯 보이는 표정과 그 위에 덧씌워져 그려지는 야릇한 미소는 꽤나 창곤을 거슬리게 만들었지만 무덤덤하게 그를 대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단추가 해빙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무슨 이유로 처음 이를 발견하였을 때 정부당국에 신고하지 않았습니까? 국가의 안위가 경각에 달린 시기란 점을 감안한다면 이런 행위가 매우 중한 범죄에 속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정보관의 어투는 어느 새 은근한 어조로 변해있었지만 ‘국가’라든지 ‘안위’라는 상투적인 단어는 다시 또 역겨움을 유발했다.

“난 동생이 찾아냈던 파편조각들이 과연 진정한 소행성의 파편인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했었던 것이고, 그걸 확인하는 과정에서 바이러스를 발견했던 것 뿐 입니다. 발견직후 정부기관에 진정한 소행성의 파편이라고 신고하려 했는데 마침 알았다는 듯 찾아오는 바람에 신고할 타이밍을 놓친 것 뿐 입니다.”

“좌우당간, 발견했을 때 즉각 신고하는 게 우선순위 아니겠소?”

이제 그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묻어났다.

“만일 그것이 하찮은 일반 돌조각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을 경우 그 웃음거리를 어떻게 감당할까요? 아마 그랬다면 사기기만 죄로 처벌하겠다고 했을 것 아닌가요?”

 

창곤의 이 말은 그가 주장하던 미신고죄 성립에 대한 반박성도 띠고 있음을 모를 리 없었다. 그는 이에 대해 적당히 대꾸할 말이 없는지 입맛을 쩍쩍 다셨다. ‘이제 마음대로 하쇼’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자포자기 하고 있는데 그 정도 선에서 취조가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끝까지 무표정한 상태를 유지하던 창곤은 심문하던 고위요원이 일어서면서 마지막으로 내던진 말로 인하여 결국 당혹스러운 빛을 내비칠 수밖에 없었다. 마음대로 하쇼 라는 마음속의 말이 그에게 전해졌던 것일까?

운석과 염빙바이러스는 전문가들에게 보내져 철저한 재검사 분석과 연구를 하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창곤에게 그나마 지금까지의 공로를 참작하여 요정도로 마무리하겠으니 현재 하고 있는 일에나 열중하라고 하였다. 그 말 때문에 일그러지는 창곤의 얼굴 모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가면서 지시를 내렸다. 곧바로 여러 사람들이 달려들어 안전한 보관과 추가적인 분석 및 연구를 위한다면서 운석과 이와 관련한 실험 자료를 어디론가 반출하였다. 고위정보요원은 그의 사무실을 떠나면서 마치 그를 골리듯 한 마디 더했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연구를 위하여 미생물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연구진이 편성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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