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스토리

염빙을 파괴할 바이러스는 R바이러스로 명명되었다.(염빙 바이러스 (제24회))

허슬똑띠 2023. 1. 2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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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곳을 ‘신세계’라 불렀다.

 

16. 외로운 싸움(계속)

 

천재일우였을까? 아니면 아내의 간절한 기도가 통했던 것일까? 어찌됐든 각 용기에 들어있던 세포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폭죽처럼 터져 오르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둘은 얼싸안은 채로 눈물을 흘렸다. 천신만고 끝에 사지에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을 누르며 창곤은 생환한 세포를 분석해보았다. 놀랍게도 이것은 염분을 먹으면서 개체수를 늘려가는 본래의 성질과는 180도 달랐다. 아내의 실수로 서로 섞여진 액체의 성분이 직방으로 먹혀들어간 것임에 틀림없었다. 이 성분으로 말미암아 세포조직이 변형을 일으키는 동안 활동을 멈춘 것이었다. 이것으로서 염빙바이러스의 성질을 바꾸는 신형 유기화합물의 조합방법은 확실하게 알게 되었으나 이것이 과연 본래의 염빙바이러스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추가 실험이 필요했다. 그러나 당장 실험 대상의 염빙바이러스가 남아 있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어찌 보면 염빙바이러스를 변형시킬 수 있는 유기화합물을 발견한 자체가 어마어마한 성과로 볼 수 있었다. 비록 실수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이 화합물이라도 투입하여 염빙바이러스의 성질을 변형시킨다면 최소한 해빙의 확장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선에서 만족하기로 하였다. 둘은 이 사실을 합동연구팀에 넘겨주고 추가적인 연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정도면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한 마음의 위로는 충분히 받는 셈이었다.

그러나 막상 이를 정부에 통지하려 마음먹었을 때 창곤은 이 변형바이러스에 한계가 있을 수 있음을 인식했다. 즉 해빙에 이번에 발견한 유기화합물을 투척한다고 해도 과연 그 단단한 얼음 속을 어느 정도까지 파고들 수 있을 것인지와 변형바이러스가 바다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에 이를 제공하면서 이와 같은 문제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추가 실험대상의 염빙바이러스를 일부 제공받는 것을 협의하기로 했다.

 

그때까지 3개국의 미생물 전문과학자들이 합동을 이루어 연구하던 기관에서는 거의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창곤의 연구결과를 통보받은 정부에서는 그의 의견이 타당하다는 것과 그의 능력을 인정하고 비상대책위원회의 연구팀에 합류시키기로 결정했다. 한국 연구팀에 합류한 창곤은 자신이 생성해낸 변형 바이러스를 본래의 바이러스를 공격하여 완벽히 파괴할 수 있을 정도로 추가적인 변형을 시키는 방법을 모색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변형바이러스를 공급받은 중국과 일본의 연구팀 역시 일제히 창곤의 연구방향을 쫓아 해빙 바이러스 공격체를 생성하는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였다. 먼저 모든 전문가들이 창곤이 생성해낸 변형 바이러스의 분석에 달려들었다. 극히 원시적인 구조를 하고 있긴 하였지만 어째든 바이러스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조직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이를 온갖 상태로 재배열하는 과정에서 한 연구원이 바이러스의 성질을 다시 바꾸는데 성공했다. 먼저 염빙바이러스에 염분을 주입하여 얼음덩어리를 만들고 난 뒤 2차 변형바이러스를 주입했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이이제이(以夷制夷) 격으로 이것이 본래의 염빙바이러스가 만들어 놓은 얼음을 모조리 암석과 같은 형태로 만들어 버렸다. 이와 동시에 변형 바이러스 역시 염빙바이러스와 결합되어 암석화 되면서 염빙바이러와 함께 소멸되었다.

 

이 바이러스는 R바이러스로 명명되었다. 근원을 회복한다는 의미에서였다. 모든 연구원은 기쁜 함성을 질러댔고 이 보고를 받은 정부에서는 중국과 일본 정부에게 통지하는 한편 R바이러스의 대량 증식을 위한 준비에 착수토록 했다. 그리고 언론에도 이러한 사실을 공표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시키도록 하였다.

 

17. 승리

 

모든 작업은 아주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이미 해빙이 가깝게 도달한 곳은 육지로부터 거의 100km 정도 거리에 육박한 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표면이 굳어버리면 그 이후 R바이러스 주입은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에 봉착하였다. 어렵사리 해결책을 만들어내어 한시름 놓았다 생각했던 사람들은 또 다시 고민에 빠져들었다. 한 고비를 넘으면 또 다른 고비가 나타나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한 인물은 다름 아닌 창준이었다. 그는 자신이 연구하던, 토양의 자동복원성 유기성질을 강화시킨 박테리아를 R바이러스에 접목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박테리아의 성질상 R바이러스가 염빙바이러스와 함께 암석으로 변하더라도 이것들이 암석에 수많은 기공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추가로 투입되는 혼합R바이러스는 계속 암석을 뚫고 꾸준히 유입될 수 있을 것이었다. 곧바로 창곤이 제시한 박테리아와 혼합된 R바이러스가 과연 그런 기능을 하는 지에 대한 임상실험에 착수하였다. 계속적인 반복 실험결과 이것이 사실임이 입증되었다. 이제 모든 문제가 해결된 셈이었다.

 

이제나 저제나 후련한 소식이 있기만을 고대하고 있던 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통보받자마자 직접 나섰다. 전 세계에 대응바이러스의 개발 내용을 알리는 한편 후속으로 필요한 사항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를 위해 정상회의를 제안하였다. 회의 일자가 신속히 결정되었고 대부분의 정상들이 한국으로 몰려들었다. 해빙의 제거작전 및 이에 따른 필요사항에 대한 논의가 있기 전에 합성R바이러스의 개발과정과 임상실험 결과 등에 대한 브리핑이 있었는데 관계기관에서는 이창곤에게 이를 맡겼다. 말미에 그는 염빙바이러스 제거작전의 속도를 가속하기 위해서는 일정 깊이이하의 심해에 잠겨있는 부분의 해빙에 직접 혼합R바이러스를 쏘아붙이는 방법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브리핑에 이어 각국 실무자들이 동석한 자리에서 구체적인 제거 작전계획과 이에 필요한 장비들의 조달 방법도 세세히 논의 되었다. 공중에서의 살포를 위한 전폭기의 지원은 물론 심해 작전에 필요한 잠수정과 이를 분사하는 기기들의 생산을 위한 유기적인 협력 방안에 대해서 완벽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우선은 한, 중, 일 각국이 합성R바이러스를 분배 받아 자국 내에서 신속히 대량 배양토록 하고 공중 살포할 준비에 들어갔다.

 

일정량이 생산되자 각국에서 수많은 전폭기 편대가 출격하였다. 종합사령실의 지시에 따라 수송기들이 차례로 빙원의 상공을 돌면서 합성R바이러스를 뿌려댔다. 이 바이러스가 떨어지자마자 즉각적인 반응이 일어났다. 빙원의 표면에서 용암이 터져 나오듯 얼음덩어리들이 솟구쳐 올라왔는데 그 높이가 항공기에 거의 다다를 듯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강도는 빠른 속도로 약해졌고 드디어 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빙원의 표면에서 검은 빛이 드문드문 출현하더니 이내 급속한 속도로 확산되었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며 중계하던 각국 방송국들의 아나운서들은 흑색으로 변하는 빙원의 영상모습과 함께 흥분된 어조의 멘트를 계속 내보내고 있었다.

 

해빙이 표면에서부터 흑색의 암석으로 변해가고는 있으나 바다에 잠겨있는 뿌리에는 얼마만큼 영향을 주고 있는 지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제일 깊은 곳까지 들어갔었던 심해 잠수정을 동원하여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모습을 관찰하여 송신하도록 하였다. 이 관측보고에 따라 합성R바이러스를 내쏘아 빙벽에 부착하는 작전이 전개되었다.

처음 몇 대에 불과하였으나 세 나라에서 생산하여 공급되는 것들과 미국이나 유럽등지에서 지원하는 것들이 속속 도착하여 빙원 해역의 바다 속은 마치 온갖 대형 어류들이 노니는 것과 같은 진풍경을 연출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역시 심해 잠수정에서 영상으로 기록되고 있었다. 그런데 바다 속에서도 해빙의 표면에서와 마찬가지로 곳곳에서 이에 대응하듯 얼음덩어리들이 분출되는 바람에 많은 잠수정들이 파괴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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