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스토리

많이 고민을 하는 것 같아서 ‘너를 위해 내가 떠날게’하고 말았지 뭐~ (운명은 숙명이 드리우는 오묘한 그림자(제1회))

허슬똑띠 2023. 1. 25.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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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줄위에 춤추는 무서운 악연의 끝은?

 

 

첫 번째 관문


서울권역에 속해있기는 하지만 차라리 지방의 한적한 시골동네라는 게 더 어울리는 곳이었다. 마을주변은 수풀이 우거진 낮은 산으로 둘러 쌓여있는데 그 안쪽에 삼십여 채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중심마을 뒤편의 다소 언덕진 곳에는 옥수수나 감자 등이 자라고 있는 밭이 있고 그 사이사이에 농가들이 드문드문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에 유라온이 홀로 사는 집이 있었다. 그는 대학교 졸업 때까지 부모와 함께 살던 집에서 지냈었다. 그 집은 할머니의 도움으로 아버지가 건축한 것이었으며 가족의 삶의 터전이었다. 그 집이 들어설 당시만 해도 서울의 외곽 지대였는데 어느 사이 번화한 동네로 변해버렸다. 그러한 환경변화는 그에게 크게 달갑지만은 않은 것이어서 연구에 전념할 겸 연구에 필요한 자금도 보탤 겸해서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라온에게는 아버지가 남겨준 귀중한 자료와 소중한 연구결과가 있었다. 아버지가 추진하던 연구는 두 가지 방향이었다. 그 중 한 가지는 기본적인 틀만 잡혀있던, 식물에 함유된 탄화수소를 급속히 추출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였다. 탄화수소는 화석연료의 중심 구성물이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인공석유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먼저 이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웬만큼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 날 듯 했으나 막상 중요한 부분에서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그래서 다른 연구 분야로 방향을 돌렸다. 이것은 식물성장을 촉진시키는 박테리아로서 그의 아버지가 우연히 발견해낸 것인데 생장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으나 완벽하게 보존시키는 방법은 아직 미완성인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가 전에 이에 대한 완결을 뒤로 미루어둔 이유는, 아버지가 거의 완성을 한 셈이었을 뿐만 아니라 몇 가지 실험을 한 결과 아주 손쉽게 해결될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이것에 매달려 보았으나 알리바바의 보물동굴을 여는 암호는 손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상당기간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자 답답한 마음을 달래고자 조금 전 거실로 나온 차였다. 신념의 간극으로 회의감이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사고의 고리마다 집중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너무 심했던 것 같았다.

  생각이 꼬리를 물어도 발상의 변화는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격이었다. 컴퓨터의 운영체제가 뒤엉켜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 것과도 같은 머릿속을 정리해보고자 차 한 잔 마시며 거실 문 앞에 서서 무심히 뜰을 내다보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창준이었다. 그는 무슨 작당을 하고 있기에 1년 내내 소식이 없냐는 둥 한참 타박을 해대었다. 창준은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을 정도로 아주 가깝게 지내는 친구였는데 졸업 후에는 연구에만 매달리느라 자주 만나보지 못했었다. 그런 그가 공간을 초월하여 유라온의 답답한 마음을 꿰뚫어 보았던 걸까? 창준의 술 한잔하자는 말에 흔쾌히 동의하고 약속 장소에 나갔다.


  학창시절부터 그들이 가끔 가던 선술집이었다. 언제나 손님이 많은 곳이었으나 그날은 비교적 한적했다. 주문을 받은 아가씨가 카운터로 옮겨가자 창준이 궁금한 듯 운을 뗐다.
"연경씨와는 어떻게 돼가고 있는 거니? 곧 결혼 할 것처럼 그러더니."
"응~ 끝난 지 오래 됐어.“
“뭐?”
“연경이 부모님에게 퇴짜 맞았다.”
“왜? 잘생긴 것이 죄라더냐?”
  유라온은 하얀 피부, 다소 날이 진 코에 약간 둥그스름한 얼굴 모양이었는데 남자가 보아도 호감을 살 수 있는 타입이었다. 겁 많게 보이는 비교적 큰 눈이 얼굴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연경이 부모님을 찾아뵈던 날 하필이면 집에 거의 다 와서 비가 쏟아지더라. 완전 물에 빠진 생쥐 꼴 하고 뵈었으니 뭐, 온전하게 보였겠냐? 더 더욱 나는 부모님도 안계시지, 연구한답시고 제대로 밥벌이도 못하고 있지, 어느 것 하나 탐탁하게 보일만 한 것이 있어야지 말이야~~”
“연경씨는 뭐래?”
“많이 고민을 하는 것 같아서 ‘너를 위해 내가 떠날게’하고 말았지 뭐~”

  창준은 이 말에 멋쩍어하며 씁쓰레한 표정을 짓더니 화제를 돌렸다.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레 유라온의 연구내용으로 이어졌다. 유라온의 고민을 듣던 창준은 잠시 라온의 큰 눈을 응시했다.
“내가 보기에 너는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뭔가 잘못된 아집을 마냥 고수하려 하기 때문일 거야. 네가 현재 하고 있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자기 합리화의 늪에 빠져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
  이 말을 듣는 순간 유라온은 가슴 한편이 뻥 뚫리는 듯했다. 그의 기분을 알아 차렸다는 듯 창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고의 방향을 틀어보는 것도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자신이 꽤 공감했었던 사례에 대해 언급했다. 


  이것은 ‘트리즈(TRIZ)’라는 '창의적 문제해결이론'에 대한 설명에서 나오는 이야기였다. 어떤 카페리가 항해도중 차량갑판으로 바닷물이 들어오는 바람에 사고를 당했는데 어떻게 하면 똑 같은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거의 대부분 사람들은 사고가 나지 않기 위해서는 여전히 '갑판에 물이 들어오면 안 된다'는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러니 계속 겉돌기만 했다. 
  그런데 누군가 차량갑판에 구멍을 뚫으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지금까지 떠들어 댔던 사고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는데 거의 모든 참석자들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고 난리를 쳤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멀쩡한 배도 아닌 구멍이 난 배가 온전하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 의견은 무조건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할 게 아니라 거꾸로 차량갑판에 구멍을 뚫어놓고 사고로 인하여 바닷물이 들어올 경우 이 바닷물이 배 밑바닥으로 이동하도록 장치해 놓자는 거였다. 그러면 들어온 물 때문에 배의 무게중심이 좋아질 것이고, 그래서 오히려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설명을 듣고 나서는 모두들 무릎을 치며 동감했다고 하는데, 결국 지금까지의 생각을 당연시 여기는 함정, 즉 고정관념을 바꾼 역발상으로 문제를 해결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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