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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은 험하고 험하다. 굴곡도 갈림길도 있었는데 지금 어디인가. (운명은 숙명이 드리우는 오묘한 그림자(제2회))

허슬똑띠 2023. 1. 26.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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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줄위에 춤추는 무서운 악연의 끝은?

 

첫 번째 관문(계속)

 

웃음을 띠며 유라온은 그의 이야기에 자신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책하고 있었다.

'그래 너무 한 가지 방향에만 집착하다 보니 아주 단순한 역발상 시도조차 사고의 영역에서 밀려나 있었던 거야.'

들뜬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라온은 방향을 완전히 전환했다. 박테리아의 활성 단기화를 해소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활성기간을 더욱 단축시켜보았다. 며칠간 끈질기게 달라붙어 계속적인 시행착오를 겪은 결과 전혀 바뀔 것 같지 않던 박테리아의 활동성이 한 순간 변화되는 조짐이 보였다. 라온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뜬금없이 나타난 창준이가 해결사 노릇을 한 덕택일까? 이 후 수많은 시도 끝에 지속적으로 작용을 할 수 있는 완벽한 박테리아를 배양해 낼 수 있었다. 아버지가 끝내 완성하지 못했던, 온전한 박테리아 배양기술을 완성한 유라온은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말씀이 새삼 떠올랐다.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종자식물과 똑 같이 광합성을 하기는 하지만 꽃은 피우지 않고 포자로 번식하는 게 양치식물인데 이것들이 석탄기로 불리는 2억년 내지 3억 년 전의 고생대에 매우 번창하였었다는 것을 너도 배워서 잘 알 것이다.

포자라는 것은 다른 생식세포와 결합하지 않고도 새로운 개체로 이루어질 수 있는 생식세포인데 내가 이 세포에 기생하는 묘한 박테리아를 발견한 것이란다. 다만 활동성이 매우 둔하고 생성되었다가는 이내 사라지곤 하는 문제점이 있기는 했는데, 이것에 자극을 주면 양치식물의 성장을 엄청나게 촉진시키는 성질이 있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지.

 

신기해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해본 실험결과를 보고는 기절초풍했단다. 이게 불과 반년 만에 100미터나 자랄 수 있게 한다는 거지. 고생대에 자라던 양치식물인 봉인목 같은 것은 보통 30미터 정도였고 줄기의 둘레도 20여 미터나 되는 거대한 식물이었는데 아주 큰 것은 80미터나 자란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

이 거대한 것들이 그 당시 쓰러져 늪이나 땅속에 파묻히게 되었고 결국은 오늘날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석탄이나 석유로 변한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지. 허나 아쉽게도 이 박테리아가 생명이 아주 짧다는 게 치명적인 약점이었단다.'

 

아버지의 죽음

 

유라온에게 아버지 유강성은 그가 방금 이룩한 연구결과에 대한 알파요 오메가였다. 또한 아버지의 신념은 그에게도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라온아! 아빠가 너에게 수시로 얘기 했었지? 우리나라는 지구상에 있는 어느 나라보다도 유구한 역사를 지닌 나라이고 또한 그 오랜 세월 우리 스스로를 지켜온 정말 자랑스러운 나라라고 말이야.

그런 자랑스러운 나라의 일원으로서 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언인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고.“

그의 아버지는 이 말대로 실천한 인물이었다. 그 많은 대상 증에서 유강성이 선택한 것은 자원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우연치도 않게 식물을 급속하게 성장시키는 박테리아를 발견한 것이다. 이로서 당연히 나아가야할 방향이 정해진 것이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연구계획을 세우고 나서 거기에 몰두하였다.

 

유강성은 성장 촉진 박테리아를 보다 완벽하게 보완한다면 그의 최종 목표인 인공석유를 만드는 원자재는 가뿐하게 확보할 수 있지 않겠나 싶었다. 그 다음은 이렇게 단기간에 성장시킨 거대식물을 초단시간에 분해시켜 석유를 추출해 내는 방법을 찾아내면 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과연 시간을 초월하게 하는, 즉 시간을 몇 천 만분의 일로 단축시켜줄 수 있는 그 무엇, 이것을 과연 찾아낼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는 간단하지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야생에서 죽은 동물의 사체가 부패하여 순식간에 사라지는 모습이 떠올랐다. 이것은 고속카메라로 연출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장면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것이 틀림없이 있을 거라 확신했다.

 

“‘갈 길은 험하고 험하다. 굴곡도 갈림길도 있었는데 지금 어디인가.’ 시인 이백이 행로난(行路難)이라는 시에서 마치 지금의 우리 처지를 관조하듯 읊조리는 구절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모진 풍파 이겨내고 때가 되면 돛 높이 달고 창해를 건너리라.’

라온아! 너에게 너무 미안하지만 아빠가 이제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단다. 아빠가 없더라도 방금 들려준 이백의 시를 항상 마음에 담아두고 정진해주었으면 한단다. 그래서 네가 이것을 완성시켜 아빠의 소망을 대신 이루어 준다면 아빠가 저 세상에서도 너무 기쁘지 않겠니?“

 

유라온이 고등학생 때, 확고한 신념과 자신감으로 충만 되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남긴 채 아버지 유강성이 뜻하지 않게 세상을 떠났다. 옥중에서 얻은 병 때문이라 했지만 모든 일을 자신의 업으로 생각하고 분노를 삭이다가 속이 다 타버린 것이 진짜 원인라고 유라온은 생각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유라온은 한 동안 실의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세상에 이제는 자기 혼자만 남겨졌다는 충격이 뼈에 사무치는 외로움의 폭풍 속을 헤쳐 나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막막함과 허전함은 삶에 대한 의지의 불씨를 점차 사그라지게 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빠이기 전에 자신이 나아갈 바를 인도해주던 스승을 잃고 난 뒤에 몰아치는 방향상실감은 아버지의 유지를 따르고자 하는 의지의 싹까지 꺾어갔다. 그렇게 후유증은 오래 지속되었다.

아직도 가시지 않은 겨울의 차가운 기운이 이제 막 솟아오르려 하는 새순과 꽃봉오리를 시샘하고 있던 이른 봄날, 유라온은 넋을 놓고 책상에 앉아서 창을 통해 흘러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볕을 무심히 쫓고 있었다.

점차 햇볕이 길게 늘어져와 닿는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얼핏 생각이 나는 게 있었다. 그의 아버지 유품을 간직해둔 곳이었다. 그는 그곳을 뒤져보다가 아버지의 오래된 일기책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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