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스토리

영정 앞에서 풍기는 향내가 죽음보다 더한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운명은 숙명이 드리우는 오묘한 그림자(제5회))

허슬똑띠 2023. 1. 29.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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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줄위에 춤추는 무서운 악연의 끝은?

 

변신의 귀재(계속)

 

위기 상황을 모면한 그는 피난민 병자로 위장한 미군조종사를 이끌고 내려오다가 우여곡절 끝에 진격해오는 미군부대에 합류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로 인해 목숨을 구할 수 있게 된 조종사는 그 후 그의 단단한 후견인으로 자리 잡았다. 강명구는 그의 도움으로 미군부대 군무원으로 근무할 수 있었고 그의 신분도 철저히 세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미8군과의 고리를 철저히 자신의 축재수단으로 삼아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그는 대단한 수완가였다. 모은 재산은 부동산투기나 남대문시장에서의 일수놀이와 같은 사채업으로 계속 굴려나갔다.

 

그러면서 특별한 접대나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요정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요정이었는데 그곳의 한 여인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그녀를 독차지하기 위한 집요한 노력을 계속하다가 요행히 하룻밤 만리장성을 쌓았는데 후에 그녀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 불안해진 그는 자신의 핏줄인지 알 수 없다는 억지와 함께 낙태시키라면서 얼마간의 돈을 건네주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인은 그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요정을 떠났고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그 사건을 까마득히 잊고 지내던 중 둘째 아들이 피난 중 횡사함으로 인해서 강유영과 터울이 많이 지던 딸이 해외여행을 갔다가 사망하는 비운을 맞았다. 또한 나이가 들어가는데도 아들이 끝내 자신의 뜻을 따라주지 않자 마음이 허전해졌다. 허탈한 마음은 예전의 요정 여인이 여아를 낳았다는 풍문을 떠올리게 했고 은연중 보고 싶다는 생각 들자 하루는 아들에게 슬며시 이 사실을 얘기 해주면서 나중에 한번 그 여인을 찾아보라고까지 했다.

 

도피

 

이 이야기를 할 적마다 강명규는 ‘이 녀석아! 재주 좋은 이 애비를 당연히 따라야 하는 거 아냐?’라고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지만 그 때마다 강유영은 아버지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했다.

“나는 아버지의 그런 경력이 싫단 말이야. 오히려 수치심마저 느껴! 그래서 나는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고 싶지 않아. 또 그동안 이룩해놓은 것 역시 그대로 물려받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단 말이야.“

그러면 강명규는 어이없어 하면서도 아들의 마음을 달래고자 했다.

“창피하기는 뭐가 창피해? 이 녀석아! 이 만큼 떵떵거리며 사는 게 다 누구의 덕인데?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다 네 것인데 도대체 뭐가 문제야?”

“그게 다 아버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버지 마음 깊숙한 곳에 깃들여져서 이제는 아예 어찌 해볼 도리도 없는, 정말 치졸하고도 편협한 전형적인 아버지의 사고방식이라는 거야!”

“이눔의 자식이 좀 배웠다고 문자 쓰고 있는 것 좀 봐라!”

“나는 그런 것을 초월하여 나 자신 스스로 위대함을 가꾸어 나갈 거란 말이야!“

 

이 말과 함께 아들을 달래려 참았던 화가 폭발되었고 대화는 단절되었다. 강유영은 아버지의 찬성유무를 떠나 더 나아가서 사고의 대립을 무시하고라도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기고자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자 했으나 아버지의 반대는 아무리해도 막아낼 도리가 없어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웬만하면 기를 쓰고 유학을 보내거나 가고자 했던 당시의 세태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아마도 강명규는 그가 일궈놓은 자신의 재산을 아들이 직접 관리해주기를 바랐고 그러기 위해서는 부러 먼 나라에서 공부할 필요 없이 자신을 따라 실무경험을 쌓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자기가 바랐던 방향과는 완전히 동 떨어진 이과분야를 선택한 것에 대한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동안 못마땅해 하면서 말도 하지 않고 지냈지만 내심으론 '제가 고집을 피우면 얼마나 피겠냐? 두고 봐라, 너는 어쩔 수 없이 내 뜻을 따를 것이다' 라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강유영은 계속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대학원 졸업 후에 국립연구원에 들어 간 강유영은 그곳에서 유강성을 만나 동료 연구원으로 가깝게 지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자신에게 연구 상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논해왔다.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뜸해지기 시작하더니 아예 자신에게 거리를 두는 듯 했다.

처음에는 자기가 무엇을 잘못해서 그런가 하고 최근의 일들을 되새겨보았으나 달리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껄끄러운 구석의 원천이 어디일까 생각하다가 혹시나 해서 그의 집안에 대해 수소문해보기 시작했다.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두 집안 사이에는 좋지 않은 연이 드리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런 사실을 어떻게 풀어나갈까 그리고 유라온이 자신에게 품은 오해는 어떤 방법으로 해명할까 하는 고민이 강유영을 상당히 괴롭혔지만 유강성이 진행하던 연구가 떠오르자 악마의 유혹이 시작되었고 끝내 이에 넘어가고 말았다.

자기와 문제점을 논의하다가 중단된 이후 유강성이 문제점을 찾아내고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한 그는 수시로 유강성의 연구파일과 컴퓨터를 뒤져가며 최대한의 정보를 캐내고자 혈안이 되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연구결과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자, 강유영은 유강성이 비밀리에 자료를 숨겨놓았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은근히 부아가 난 그는 극단적인 방법을 쓰기로 하고 부친을 따르던 건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작열하는 태양의 위세로 몹시 무덥던 80년대 후반 어느 여름 날 오전의 김포공항. 강유성의 가족을 태운 여객기 한대가 굉음소리와 함께 이글거리며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솟아올랐다.

유강성의 아내가 쓰러져 끝내 사망한 당일, 강명규도 중환자실에서 사망했다. 그는 뇌출혈로 쓰러져 급히 응급실로 후송되었었다. 후에 부친이 사망하던 날 유강성의 아내 역시 사망한 것을 알고 내심 찜찜했다. 마치 그녀가 자신의 아버지를 이승으로 달고 간 것 같은 섬뜩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차제에 강유성은 그의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재산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예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로 작정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쳤다. 어머니는 '이 나이에 외국에 가서 친구도 없이 외롭게 어떻게 사냐?' 면서 반대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결국은 어머니로부터 반강제적인 승낙을 받아 낼 수 있었다.

그가 이런 결정을 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급작스러운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영정 앞에 피워둔 향에서 풍기는 향내가 이상하게 죽음보다 더한 두려움을 느끼게 했고 또한 그가 저질은 악행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이 작용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오래 전부터 갈망해왔던 유학도 겸하면서 불타오르는 야심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곳이 곧 미국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그는 악랄한 방법으로 손에 넣기는 했지만 어째든 유강성의 연구물을 자기 힘으로 완성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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