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스토리

배달되어온 우편물을 열어보는 순간 얼어붙는 듯했다.(운명은 숙명이 드리우는 오묘한 그림자(제6회))

허슬똑띠 2023. 1. 30.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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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줄위에 춤추는 무서운 악연의 끝은?

 

 

죽음의 부메랑

 

번개가 번득일 적마다 하늘이 두 쪽이 나듯 갈라졌고 곧이어 천둥이 치면서 강력한 성능의 폭탄이 터지는 소리처럼 굉음이 울렸다. 하늘이 노여움을 있는 대로 표출하듯 터지고 또 터졌다. 철천지원수처럼 퍼붓고 있는 비는 희뿌연 막을 형성하고 있어 흡사 우유 빛 유리로 장식된 창을 통해 반대편을 내다보는 것과 같은 형상을 만들고 있었다. 또 한 차례의 번개가 다시 하늘을 갈라놓는 촌음의 순간 산중턱 고개위로 튀어 오르는 승용차가 보이다 사라졌다.

강유영이 이민 온지 10여 년이 흐른 뒤의 미국. 폭우가 쏟아지고 있는 부르클린 외곽 산길 도로를 승용차 한대가 질주하고 있었다. 세찬 비바람에 길가의 나무들이 이리저리 휘어지고 빗줄기에 거의 점령당한 대기에는 비릿한 내음이 빈약한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숨 가쁘게 좌우로 움직이고 있는 와이퍼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만큼 세찬 빗줄기가 차를 두들겨 댔고 전조등 역시 불과 2~3미터 정도를 어렴풋이 밝혀줄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순간순간 중앙선을 넘기는 다반사였고 도로 주변에 부딪치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으나 세찬 빗소리에 삼켜지고 말았다.

다소 심하게 굽어진 길을 지났을 때 역시 급하게 질주해오는 또 다른 차의 전조등이 멀리 보이기 시작했는데 앞차를 추격하는 듯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 차의 간격이 좁혀 들어갔고 결국 뒤쫓아 오던 차가 앞선 차의 옆으로 다가왔다. 순간 우측으로 낭떠러지가 등장했다. 그러자 뒤따르던 차가 앞서가던 차를 옆으로 들이받으면서 낭떠러지로 몰고 갔다. 몇 차례의 공격을 견디지 못한 차는 결국 벼랑으로 굴러 떨어졌고 계곡에 처박히면서 폭발하고 말았다.

 

그 시각, 제임스 강(한국이름 강진성)이 집에 막 도착하여 차고에 차를 주차시키고 있었다. 마침 어머니와 여동생이 한인회 모임에 갔기 때문에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연구실이 있는 지하실로 통하는 문이 살짝 열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족들의 출입조차 엄격하게 통제하던 아버지가 외출하면서 문을 그대로 열어둘 리 만무했다.

머리를 갸우뚱하며 문을 열어본 순간 내부가 엉망진창이 되어있음에 깜짝 놀란 그는 재빨리 아래로 내려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여러 대의 컴퓨터뿐만 아니라 관련 연구 설비는 모조리 파괴되어 있었고 키가 그대로 꽂혀 있는 채 열려있는 자료 보관함은 텅 비어있었다. 게다가 군데군데 깨어진 유리용기가 널브러져 있어 연구실 내부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유리 용기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는, 용설란 같이 생긴 작은 식물들의 줄기에는 미끈거리는 액체가 배어 있었는데 휘발유 비슷한 냄새를 풍겼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것들을 발로 걷어 차버리고 멍하니 서 있는데 냉장고 옆쪽 구석에 나뒹굴고 있는 쓰레기통이 눈에 띠었다. 혹시나 하고 그리로 다가간 그는 주변에 내동댕이쳐져 있는 종이쪽지를 발견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대한 단서를 기대하면서 마구 구겨져 있는 쪽지를 펼쳐보니 연구 자료를 다 넘겨주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협박조의 문구가 쓰여 있었다. 그 외에는 K라는 글자로 십자가의 형태를 그린 희미한 문양뿐이었고 발신인 표시는 없었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음을 직감하고 아는 곳마다 연락해 보았으나 공허한 답변뿐이었다. 분명 무슨 변고가 발생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는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어머니와 동생이 오기를 기다렸다. 집에 도착한 두 사람 역시 뾰족한 수가 없었으므로 고민 끝에 신고하지 않고 일단 기다려 보기로 했다.

 

다음 날 TV뉴스는 처참한 교통사고 소식을 전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의 아버지 강유영이 사고 당사자임이 밝혀졌다. 경찰 조사결과는 그가 브루클린 외곽에 있는 연구소를 방문했다가 폭우를 뚫고 귀가하던 중 운전부주의로 낭떠러지에 추락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며칠 후 강유영이 자주 들락거리며 도움을 받던 연구원 한 사람이 강물에 익사한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술에 취해 강물에 빠져 숨진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의 죽음은 다소간의 의문을 남겼으나 이에 대해 개의하는 사람은 없었으며 하물며 어느 누구도 그의 익사사고와 강유영 교통사고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오일플랜트

 

강유영이 미국으로 이민 온 후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유강성의 연구내용을 기필코 자신이 마무리하리라 다짐했다. 브루클린 근교에 비교적 널찍한 집을 구입하고 지하에는 연구실을 만들었다. 그리고 연구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한 연구소에 적지 않은 기부를 하고 그곳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끈질기게 매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유강성이 자기에게 어려움을 논의했던 부문, 박테리아의 단명과 불활성화 성질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잦은 실패는 그것을 꼭 이룰 수 있다는 신념을 허물어뜨렸고 그게 무너지자 오랜 동안 혼란에 빠졌다. 게다가 유강성의 얼굴이 자주 어른거리기 조차했다.

 

그는 며칠 간 술에 취해 지냈다. 그날도 연구실에서 알코올기운에 몸을 떠맡긴 채 레테의 강기슭을 헤매고 있는데 일순간 얼굴에 번지는 산뜻한 느낌에 화들짝 놀라서 눈을 떴다. 어느 사이 들어왔는지 딸아이가 얼굴에 살짝 댔다가 그에게 내미는 게 있었다. 서늘한 기운이 정신을 들게 했다. 한국에서 온 친구가 가져왔다면서 숙취해소에 좋은 헛개차라고 했다.

딸이 그것을 건네주고 나간 뒤 그것을 음미하면서 잠시 고향 생각에 잠겼다. 시원한 기운이 퍼지자 상심의 나락에 침전되어 있던 의지가 새삼 서서히 목덜미를 타고 올라옴을 느꼈다.

‘그래~ 포기할 수 없다면 다시 도전해야지!’

이렇게 속으로 외쳐대며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새로운 각오로 재무장을 한 다음 자주 어른거리던 유강성의 이미지도 씻어낼 겸 이곳 연구소에서 힌트를 얻은 것을 활용도 할 겸 방향을 전면 수정하기로 했다. 즉 이 박테리아가 특정 식물에 직접 석유의 성분을 생성시키는 기능을 하도록 변환시키는 것이었다.

수년의 연구개발 끝에 그는 어중치기로 그가 의도하였던 것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아직은 불완전했지만 표본 식물의 모종을 만들어 내는 데까지 성공했다. 들뜬 마음으로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던 어느 날 그에게 관련된 모든 정보를 자신들에게 넘기라는 협박 전화를 받게 되었다. 예전에 자신이 사주했던 행위의 재판이었다.

그런 것은 전혀 생각지 않고 불쾌감과 불안함이 교차하는 와중에도 ‘어떤 괘씸한 놈이야’ 라고 중얼거리며 애써 무시해버리고 말았지만 다음 날 배달되어온 우편물을 열어보는 순간 얼어붙는 듯했다. 전화로 협박을 받을 때만해도 찔끔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흥분이 가라앉고 차분해지자 까짓 뭐 대수로울 것 있느냐며 대범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협박장 속의 문양은 그런 마음자세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갑자기 한기가 휩쓸고 지나가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전화상으로 요구한 내용을 재차 촉구하며 생명을 위협하는 협박장이었는데 무엇보다도 협박장 귀퉁이에 자그마하게 그려진 문양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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