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스토리

자신의 정신세계라 하더라도 뜻대로 움직이기에는 그렇게 쉬운 대상은 아니죠.(운명은 숙명이 드리우는 오묘한 그림자(제10회))

허슬똑띠 2023. 2. 4.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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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줄위에 춤추는 무서운 악연의 끝은?

 

두 번째 관문(계속)

 

“그렇다면 고압과 고온이라는 종속변수를 없애버리면 어떨까? 나는 아버님의 생각이 맡는 것 같아!”
창준은 별로 어렵지 않은 듯 대답했다.
“뭐? 그게 핵심관건일 수도 있는데도?”
“그건 자연 상황에서의 필요충분조건에 지나지 않을 것 같은데? 네가 전에 얘기 했듯이 진리라는 것이 절대불변인 것은 없잖아. 과학적 이론이라는 것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그러니 자연적인 것을 인공적인 것에 자꾸 결부시키려 하지 말고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아. 즉 트리즈에서의 ‘분리의 법칙’이지.
네가 연구하고 있는 것은 분명 인공적 생산방법이잖아! 그러니 압력과 온도가 꼭 동반되어야 한다고 고집부릴 필요가 있을까?
불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면 과감히 버려야 한다 이거야. 그래야만 네가 바라는 바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틈새가 보이지 않을까?“
그러면서 창준은 유라온의 분발을 촉구하듯 한 마디 더했다.
“게오르그 지멜은 ‘인간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이와는 모순되지만 인간의 불가능성도 무한하다.’ 라고 했어. 나는 나름대로 이 말을 이렇게 해석했지.
‘최선을 다한다는 것만으로는 자신의 가능성을 무한히 펼칠 수 없다. 불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 곧 무한한 가능성을 보장한다고.’
왜냐하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상념은 자기 자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원흉이 아니겠냐고.“
“그래! 알았다. 정말 이제부터는, 나의 가능성에 대해 털끝만큼도 의심을 갖지 않을  거다! 창준아 고맙다!“

  창준의 이러한 제안이 다시 또 새로운 전기가 될 줄이야. 그는 창준의 말대로 여태껏 그를 괴롭혀 왔던 높은 압력과 초고온이라는 문제를 과감히 팽개쳤다. 한결 가뿐해진 기분으로 연구에 임하자 가속도가 붙었다. 드디어 실오라기 같은 단서가 마치 하늘을 온통 뒤덮고 있는 먹구름을 헤집고 비치는 한줄기 빛처럼 머릿속에 나타났다. 그는 벅찬 감격에 소름까지 돋았다. 그것을 조심스럽게 현실화 해나가면서 드디어 구체적인 방향을 잡았고 그를 괴롭혀 왔던, 석탄화 시키는 박테리아 세포성질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양치식물을 분해시켜 완벽하게 탄화수소만 추출해내는 변형 박테리아였다. 나아가 이것은 탄화수소의 함량도 획기적으로 높여주었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났다. 분해와 추출과정의 속도가 원하는 수준까지에는 거리가 있었다. 사실 유라온이 인공석유의 개발에서 중점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공해발생을 최소화 시키는 것이었다. 즉 석유가 연소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거의 제로 상태로 만들자는 것이었는데 이 기능을 병행시키는 것은 현재의 상황으로서는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어째든 연구가 이정도 진척이 되었으면 벤처투자유치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 유라온은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면서 차원이 다른 연구를 위해서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해보기로 했다. 성공을 눈앞에 둔 지금은 여정의 마침표가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의 첫걸음인 것이다. 이제부터는 전혀 다른 가치를 풍미하는 세상이 그에게 펼쳐지게 되리라는 상상은 그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단우공

 

 갈증을 느끼는 다솜의 마음을 꿰뚫기라도 했던 것일까?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부터 그녀에게 살갑게 다가와 학교생활에 도움이 될 여러 가지를 알려주던 선배가 있었다. 서로 친근하게 지낸 지 6개월이 채 안되어서 그 선배는 그녀에게 갈증을 풀어줄 방안을 제시해주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가 과연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기는 하는 걸까 하면서 반신반의했다. 그런 그녀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다 안다는 듯 빙그레 미소만 지을 뿐이던 선배가 한 날은 갑자기 함께 갈 곳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턱대고 그저 자기만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는 거였다.
  선배의 승용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경기도의 한 조그만 마을이었다. 그 마을은 삼면이 꽤 험준한 산으로 들러 쌓여있었고 마을 앞으로는 폭이 제법 넓은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말 그대로 배산 임수의 풍광 좋은 곳이었다.
  차를 마을의 공터에 주차시켜놓고 좁은 길을 따라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선배는 줄곧 자신이 읽었었던 수사기법에 관련된 것이나 법의학관련 서적의 내용에 대해 드문드문 얘기할 뿐 현재 가는 곳에 대해서는 일절 아무런 단서로 비추지 않았다. 그래서 다솜도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생각보다 험악한 길을 30여분쯤 올랐을 때 암자와 비슷하게 생긴 것이 나타났는데, 입구에는 단아한 한복차림의 노인이 서있었다. 그들을 마중 나온 듯 했다. 다소 길게 자란 머리는 젊은 사람 못지않게 까만 모습이었고 주름살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은 붉게 잘 익은 대추 빛이었는데 깊게 가라앉은 눈은 그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했다. 이런 외관으로 인하여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지 않았지만 후에 선배로부터 그의 나이를 듣고는 농담인 줄 알았다.
  '그분 연세가 95세야. 믿기지 않지?' 그래서였을까? 아니면 뭐 다른 것이 있어서였을까? 선배가 그 사람을 보자마자 허리를 깊숙이 숙여 절을 하는 바람에 다솜도 무심결에 똑 같은 동작을 취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반가운 표정으로 그들을 맞이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다솜은 찰나였지만 체구가 상당한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걸음걸이가 아주 가벼워 보여 젖은 땅에서도 발자국을 내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솜이 단우공이라는 미지의 인물을 만나게 되는 순간이었다.

  단우공을 따라 들어간 방은 넓지 않지만 깔끔히 정돈되어 있었다. 안쪽으로 단우공이 앉자 두 사람도 그를 마주보고 앉았다. 단우공은 잠시 부드러운 눈길로 다솜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을 향한 단우공의 눈빛이 온화하면서도 마주대할 수 없는 미지의 빛처럼 느껴져 계속 그의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그녀에 대한 탐색이 끝났는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단우공은 찬찬히 말을 시작했다.
"선휘군으로부터 자주 윤다솜양에 대해서 말을 들었어요. 선휘군의 말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군요"
이 말에 다솜이 선배를 바라보자 그는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우공의 청아하면서도 부드러운 음성은 일반사람들과 아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면서 그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다솜양이 경찰에 투신하고자 하는 데에는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는 것 같군요."
다솜은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아 괜스레 무안했다.
"네. 어릴 적부터 저를 둘러싸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를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의지로 극복해서 나타나지 않습니다만 초등학생중반까지는 이해할 수 없는 악몽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적정을 많이 했었어요."
"나도 다솜양을 보는 순간 그 점을 느꼈어요. 아직 그 실체를 나도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다솜양이 직접 그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다솜양은 보통사람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어요. 어느 정도는 선천적인 면도 있기는 하지만 다솜양이 후천적으로 배양시킨 부분이 더 많은 것 같군요. 그러면서도 다솜양의 정신력 향상에 대한 갈증은 끝이 없어 보입니다. 아무튼 좋은 생각입니다. 사실 자신의 정신세계라 하더라도 뜻대로 움직이기에는 그렇게 쉬운 대상은 아니니까요. "
  단우공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으며 본인 스스로도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실상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그를 따르며 정신 수행을 하고 있는 제자들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선배는 얘기했다. 그들은 누구에게도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서 나름대로 그들에게 주어진 일들을 묵묵히 하고 있다고 했다.
  윤다솜이 단우공을 다시 보니 얼핏 다른 세계에 속한 듯 느껴졌는데 그게 바로 선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단우공이 고아하고 초아적인 능력의 소유자로서 탈속의 세계에 존재하면서도 범인들을 위해 살고 있는 분이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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