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스토리

호기심으로 가득한 눈빛은 아름답고 관능적인 요정 멜린느처럼 최면을 거는 듯했다. (운명은 숙명이 드리우는 오묘한 그림자(제14회))

허슬똑띠 2023. 2. 8.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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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줄위에 춤추는 무서운 악연의 끝은?

 

예지(叡智)

 

윤경위는 경찰청에서 근무하다가 특수수사대로 파견되었다. 그곳에서 1년쯤 되었을 즈음 오랜 만에 단우공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때 단우공은 예지력에 대해 얘기하면서 제갈량의 예를 들었다.

"제갈량은 참으로 수련단계가 아주 높았던 분이었습니다. 비록 유비의 꿈을 완전하게 이루어 주지는 못했지만 한계라기보다는 자신이 속계에서 할 일만큼 하고 갔던 것이지요. 그런 그는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고 있었던 분입니다.

보통 앞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예지력이라 하는데 그의 예지력은 오랜 세월을 뛰어 넘는 것도 있어요. 다만 오랜 세월이라는 것은 우리들의 관념이니 그 당시 제갈량의 시간으로서는 그리 멀지 않은 앞날이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단우공은 얘기를 계속했다.

"제갈량이 죽고 나서 약 천년 후의 송나라에 조참(曹參)이란 대장군이 있었지요. 그는 당대를 주름잡는 명장이었고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당대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걸출한 인걸들에게까지도 자신을 당할 사람이 없다고 큰 소리를 쳐대고는 했었지요. 조참은 그 중에서도 제갈량을 폄하하는 말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자기가 그 정도의 초능력을 가졌었다면 능히 천하를 평정하고도 남았을 거라는 것이었지요. 그러다가 아주 호되게 당한 적이 있습니다.

 

조참은 공명이 오랜 전 과거에 자기의 웅지를 펴던 본거지였던 서촉(西蜀)정벌을 나섰는데 도중 한 마을 앞에 비각 하나가 세워진 것을 보게 되었고 제갈무후가 생전에 세워둔 전각이라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이 봉해진 채로 아무도 열지 못하도록 다짐해두었기 때문에 아직껏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하고 있다고 하자 가당치 않게 생각한 조참은 당장에 문을 열라고 명령했고, 병사들이 주저주저하면서도 결국 문을 열게 되었는데 우뚝 눈앞에 나타난 빗돌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는 겁니다.

‘천세후 지아자 기조참(千歲後知我者其曹參)

천년 뒤에 나를 알아 볼 사람은 바로 조참이렸다!’

이것은 공명이, 천년 뒤에 누군가 그것도 바로 조참이라는 인물이 이 전각을 열어보리라 예지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거지요.“

 

“이외에 주원장을 보필하여 명나라를 세웠던, 일등공신이자 참모인 유기의 얘기도 있지요. 그가 천하를 평정한 후 전국을 돌아보는 도중 한 절에 이르러 생전에 공명이 머물렀다가 떠나면서 만들어주었다는 토계(土鷄)가 새벽에 정확하게 울어 스님들을 깨운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지요. 그는 공명에 대한 시기심도 들고 또한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그것을 깨뜨렸다고 해요.

그런데 놀랍게도 깨어진 토계 안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힌 명패가 들어 있었다고 하지요.

‘유기 파 토계(劉基破土鷄)

유기가 이 토계를 깨뜨릴 것이다.‘

나는 제갈량과 같은 분에 범접할 수 있는 정도의 높은 계제(階梯)까지 이르지는 못했으나 계속 수련하면서 그분들의 그림자 정도에는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순간 어떠한 일들이 바로 눈앞에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

그러면서 단우공은 머지않아 그녀가 큰 사건에 접하게 될 것이라고 귀띔해주었다. 그러나 궁금해 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웃음만 지을 뿐 더 이상의 얘기는 없었다. 그런지 3개월 후 윤경위에게 그러한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임무

 

단우공을 방문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해외 정보기관으로부터 다급한 정보가 국내 정보기관에 입수되었다. 유라온의 개발기술을 노리고 국제 범죄세계에서 확실히 알려지지 않는 인물이 국내로 잠입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곧바로 이에 대한 대비조치가 내려졌다. 그를 일부 국한된 사람들 외에는 알려지지 않은 안가로 이동시켜 철저히 보호하는 한편 연구시설도 함께 이전하여 그곳에서 연구를 계속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윤경위에게 그 책임이 주어진 것이다. 그녀는 국제범죄수사의 공조업무로 미국 국제범죄수사대에서 몇 달간 지낸 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로 해서 그녀가 적임자로 선정된 것으로 보였다.

 

윤경위는 경호요원들과 함께 유라온을 안가로 데려가기 위해 준비하면서 그와 처음 대면하게 되었다. 그녀는 사전에 그에 대한 자료를 받아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의 사진을 바라보자 알 수 없는 파장이 이는 것을 느꼈었는데 직접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에는 그보다 더한 전율이 격한 풍랑처럼 온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다소 움찔했다. 너무 이상해서 그 역시 정신수련을 통해 내면세계를 단단히 무장한 것은 아닐까 할 정도였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니 느낌자체가 다른 것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단우공이 예언했던 사건에 대한 단초일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 후 유라온을 세심히 관찰했다.

 

그녀와 마주쳤을 때 유라온도 묘한 감정이 교차하는 듯 보였다. 다른 사람 같으면 전혀 느낄지 못할 정말 나노초의 순간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내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간 그에게서는 사건의 예후를 암시할 만한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그가 개발하고 있는 기술이 세계 경제에 엄청난 파장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전혀 예상치 않은 일들이 터질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 전율을 단초와 연계시키는 것이 억지춘향만은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말았다.

 

사실 유라온도 윤경위와 마찬가지도 가슴 저리는 파장이 온 몸에 퍼졌었지만 곧바로 그것을 내면 깊숙이 가라앉혔었다. 이는 어릴 적부터 키워온,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게 할 수 있는 강한 억제력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윤경위를 잠시 보았지만 유라온에게도 여운은 길게 남았다. 우수에 젖은듯하면서도 호기심으로 가득한 눈빛은 아름답고 관능적인 요정 멜린느처럼 최면을 거는 듯했다. 또한 그녀가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 복사꽃 향내가 풍겨오는 듯했다. 전에 사귀던 연경한테서는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생소함 그 자체였다. 그러다가 단지 그녀는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업무에 충실해야 하는 경찰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공연한 생각말자면서 고개를 젓고 말았다.

 

올가미

 

제임스는 아버지인 강유영이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의 공부를 하여 그 연구를 도와주기를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나 그의 꿈은 달랐다. 미국생활의 현란함에 젖어 생활하던 그는 다소 허황된 세계를 추구하게 되었다. 그는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환상적인 스파이세계에 침잠하면서 본인이 그 주인공이 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그의 여동생 역시 연예계로의 진출을 위해 밤낮으로 밴드그룹에 열중하고 있었다.

제임스가 대학에 다닐 때 친하게 지내던 학생이 있었는데 그는 세르게이라는 우크라이나 출신 미국인이었다. 그 친구와 자주 어울리며 지내다가 우연하게 뜻밖의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다. 밤늦도록 세르게이와 함께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나와 같이 택시를 잡기 위해 잠시 보도를 걸어갔다.

 

거리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끊겨 있었는데 친구가 뒤쳐진 것을 알고 돌아보다가 순간적으로 나타난 사람과 부딪치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맥없이 도로에 나뒹굴더니 쓰러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 순간 퍼뜩 정신이 들어 그를 잡고 흔들어 보았으나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당황한 그는 손을 흔들어대며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도 당황한 듯 달려와 함께 확인해보았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몸을 부르르 떨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그에게 세르게이는 일단 죽은 사람을 부축해서 벽에 기대어 놓도록 했다. 그러더니 자기에게 맡기라고 하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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