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스토리

우리들의 버거운 일상을 하늘이 조롱이라도 하는 것 같네요. (운명은 숙명이 드리우는 오묘한 그림자(제15회))

허슬똑띠 2023. 2. 9.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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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줄위에 춤추는 무서운 악연의 끝은?

 

 

올가미(계속)

 

제임스는 기다리는 시간이 엄청나게 길게 느껴졌지만 승용차 한대가 슬그머니 그들에게 다가와서 멈추어 선 것은 불과 몇 분만이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건장한 두 사내가 내리더니 아무 말도 없이 죽은 사람을 트렁크에 싣고 가버렸다. 떠나면서 앞자리에 앉아 있던 사내가 창문을 내리고 친구에게 가라는 손짓을 하였다.

일 처리가 끝나자 궁금해 하는 그에게 세르게이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얼버무렸다. 그리고 모든 일은 아무 탈 없이 깨끗이 처리되었으니 걱정할 것 없다고 하면서 그를 위로했다. 이 일은 자기와 제임스 단 두 사람만의 비밀이고 자신은 절대 발설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그는 너무 고마워서 그의 손을 잡고 눈물까지 흘렸다.

그러나 그와 헤어져 집으로 오면서 차분히 생각해 보자 의문은 집요하게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어떻게 멀쩡한 사람이 슬쩍 부딪쳤다고 해서 그렇게 죽을 수가 있는지, 그리고 그 시체를 가지고 간 사람의 정체는 무엇이며, 세르게이는 어떻게 그 사람들을 알고 있었는지 등등. 그러다 갑자기 그와 만나게 된 경위가 떠올랐다.

 

교정은 이곳저곳 산개해 있는 라일락꽃이 흩뿌리는 향기로 넘쳐흘렀다. 미스킴이라 이름 붙은 라일락도 있었는데 그 유래를 알고는 그것도 자신처럼 머나먼 한국에서 왔다는 생각이 드니 괜스레 코끝이 찡해왔다. 한국 토종 수수꽃다리가 원조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않았던 감상에 젖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에 오르려하는데 누가 부르는 소리가 났다. 한 녀석이 차의 보닛을 열어놓고 서서 손짓을 하는데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 같았다.

 

척보니 그도 외국계인 것 같았는데 그가 다가가자 차의 배터리가 방전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차에서 내릴 때 전조등을 끄는 것을 깜박했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제임스는 자기 차를 그쪽으로 갖다 대고 점프케이블을 연결하여 그의 배터리를 충전시켜주었다.

일이 끝나자 그는 고맙다면서 자기소개를 했다. 그 역시 그 학교 학생이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온 세르게이라면서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난 뒤 미국에 먼저 이민 혼 삼촌을 따라 왔다는 것이었다. 자기의 전화번호를 적어주며 다음에 보답을 하겠다고 했다.

꼭 연락해줄 것을 당부하면 떠났는데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그에게 호감이 갔다. 이렇게 단순한 일로 그와의 인연이 맺어졌다. 이후 둘은 절친한 사이가 되었으며 함께 자주 술을 마시곤 했다. 그는 대단한 애주가였는데 자기가 다니던 고급 술집에서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본인이 직접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상당한 것으로 보였다.

 

당시 제임스는 자기와 부딪치고 나서 쓰러져 죽은 사람이 약을 먹고 일시적으로 숨진 것처럼 보였다는 사실과 이 모든 일이 앞으로 그를 적절히 이용하기 위해 세르게이가 치밀히 계획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 리 없었다. 후에 세르게이가 자기에서 특별한 일에 대한 협조를 요청해왔을 때 그가 이미 벗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들었으며 어렴풋이나마 그 때 그 일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 계획적인 함정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연정(戀情)

 

윤경위는 그 후로 유라온과 가끔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가 그녀를 볼 때마다 그녀의 모습에서 무언가를 떠올리려 무척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그의 표정에서 알 수 있었다. 사실 유라온은 다솜의 아름다운 눈을 볼 적마다 그 눈빛 속에서 현재(顯在)되지 않은 두려움의 편린이 느껴졌기 때문에 그것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나름 추리를 하노라 골몰하곤 했던 것까지 윤경위가 인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윤경위는 유라온을 볼 때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애잔한 감정이 솟구치고는 했는데 그 때마다 괜히 무안해져서 혼자 웃고 말았다. 그러나 그러한 감정이 놀랍게도 날이 갈수록 서서히 애정형태로 변하고 있음을 깨닫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유라온만 생각하면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은 억제할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껏 그녀의 미모에 반해 그녀 주변에서 맴도는 남자에게서는 물론 자기에게 각별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전혀 표현한 적이 없던, 단우공을 만나게 해준 그 선배에게서 조차 이런 유의 감정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녀는 그런 점에서 선배에게 매우 미안함을 어쩌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정말 환상적인 날씹니다.”

안가의 정원에 드문드문 자리 잡고 있는 나뭇잎 사이로 눈부신 태양이 빛을 흩뿌리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라온이 아쉽다는 듯 말을 꺼냈다.

“그러네요. 우리들의 버거운 일상을 하늘이 조롱이라도 하는 것 같네요. 마치 하늘빛으로 물 들은 것처럼 주위 전체에 엷은 쪽빛이 감돌고 있어요.”

휴게실에서 유라온과 함께 자리한 윤경위는 동시에 밖을 내다보며 잠시 시정에 잠겼다가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치 어린 소년과도 같은 맑은 얼굴과 유난히 빛나는 눈을 바라보면서 단우공을 떠올렸다. 항상 그랬지만 그의 눈이 매우 현현(玄玄)하다고 느끼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의 눈동자를 깊숙이 바라다보게 되었는데 퍼뜩 생각나는 일이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 어리는 자신의 모습에서 어떤 모습이 연관되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유라온을 암살하고자 하는 그림자와 같은 킬러의 잠입 정보와 미국 국제범죄수사대에서 요원이 파견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난 직후 다솜은 집에서 수련의 일환으로 단우공의 가르침대로 정신을 집중하면서 내면의 세계로 깊이 빠져들어 갔었다.

마치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것처럼 계속 퇴행하여 먼 시간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녀 어머니의 젊은 모습이 나타나다가 갑자기 어린 계집아이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나타났는데 도대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흉측한 모습을 한 반인반수의 괴물이 나타나더니 거대한 털북숭이 손으로 그 아이를 들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괴물은 그녀가 어릴 적에 수시로 나타나 그녀를 두려움에 빠지게 했던 존재와 비슷하여 그 당시처럼 놀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는데 여태껏 나타난 적이 없었던 아주 당찬 사내아이가 불쑥 튀어나와 그 괴물을 쫓아갔다. 그 얼굴이 어쩐지 무척 낯이 익다 싶었지만 계집아이 정체를 알 수 없었던 것처럼 그 아이 존재 역시 명확히 집히는 데가 없었다.

이 생각에 미치자 유라온이 그 사내아이 이고 그의 눈동자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은 혹여 그 계집아이가 아닐까라고 스스로에게 반문해보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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