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스토리

이것은 브라질 원주민들이 동물 사냥할 때 쓰는 ‘큐라레’라는 독일 겁니다.(운명은 숙명이 드리우는 오묘한 그림자(제21회))

허슬똑띠 2023. 2. 17.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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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줄위에 춤추는 무서운 악연의 끝은?

 

 

 

교묘한 위장 설비(계속)

 

그녀는 눈을 감고 연구실 전체를 마음속으로 그려보았다. 색다른 느낌이 다가 오지 않다가 한 순간 컴퓨터기기의 모습이 크게 확대되어 왔다. 즉각 그 기기를 모두 분해하여 살펴보도록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무나 쉽게 감지할 수 없도록 교묘하게 연결된 송신장치가 발견되었다. 그는 이를 통하여 유라온의 기술개발 내용을 모조리 빼내려고 했던 것이다. 송신장치뿐만 아니라 원격으로 조정하여 기기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조치까지 되어 있었다.

요원들이 이들 장치를 제거하려는 순간 윤경위는 아니라면서 이를 제지했다. 제거하는 순간 비보이가 알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틀림없이 다른 방법을 강구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일단은 이 장치를 그대로 두고자 한 것이다. 그러면 비보이가 안가에서 이 장치를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할 것이고 당장은 그가 재차 공격해오지 않을 것이므로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후 그녀는 다른 각도로 추측해보았다. 유라온이 생존해 있을 경우 그가 다시 개발기술을 복원하면 그만 아닌가? 그가 그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유라온을 제거하기 위한 추가적인 덫이 설치되어 있을 것이었다. 다시 요원들과 함께 컴퓨터 기기 외에 연구실에 있는 모든 시설들을 쥐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모두들 부산을 떨면서 이곳저곳 뒤져보고 있을 때 윤경위는 지긋하게 눈을 감고 다시 침입자의 영상을 떠올렸다. 자신이 그라면 어떻게 움직였을까 그려보고 있는데 냉장고 속이 잡혔다. ‘맞다! 여기가 틀림없어!,라고 중얼거리며 냉장고 내부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플라스틱 병 음료수가 눈에 확 들어왔다. 하나를 꺼내들고 면밀히 관찰하다가 병 뚜껑에 보일 듯 말듯 나있는 아주 미세한 구멍을 발견했다. 분명 어떤 조치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단정한 그녀는 음료수를 음식물에 묻혀 새장 속의 새에게 주어보았다. 그것을 몇 번 쪼아 먹던 새는 날개를 퍼드덕거리며 몸부림치다가 곧 축 늘어지고 말았다. 그 장면을 본 모든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새가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제임스가 다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것은 브라질 원주민들이 동물 사냥할 때 화살촉 같은데다 바르는 ‘큐라레’라는 독일 겁니다.”

윤경위는 본부에 다시 연락해서 현재까지 파악된 상황을 보고했다. 그러면서 당장 새로운 안가를 마련해 줄 것과 일단 비보이가 머물던 모텔을 중심으로 해서 그의 행적을 추적해 주도록 요청했다.

 

실수

 

안가에서 꽤 멀리 떨어진 모텔의 객실. 창문의 모든 커튼이 처져있고 창가에 비치된 탁자 위에는 아담한 크기의 송수신장치가 놓여 있었다. 가끔 커튼 사이로 망원경을 통해 외부를 조망하다가 그것에 신호가 들어오는 지 눈여겨보는 사나이가 있었다. 비보이였다.

그는 안가에서 빠져 나와 묵고 있던 모텔로 돌아오다가 그의 위치가 누군가에 의해 드러난 것을 간파했다. 그래서 모텔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그대로 지나쳐 그보다 훨씬 멀리 떨어진 지금의 모텔로 들어왔다. 일본에서부터 그의 위험인지감각에 울리던 알람 신호가 점차 커져오는 것을 느끼고 불안감이 살살 피어올랐었는데 이런 상황은 여태껏 일을 해오면서 겪어보지 못했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알람이 울리면 일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것이 그의 철칙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타이밍이 중요했기 때문에 그 철칙을 스스로 깨뜨렸다. 시일을 놓치면 죽도 밥도 되지 않을 것이기에 다소간의 위험을 무릅쓰기로 작정했다. 그에게 임무를 맡긴 마피아와의 약속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안가에 침투했었던 일을 상기해보았다.

안가에 침투했다가 유라온이 없는 것을 알고 당황했다. 아침에 안가를 떠난 차에는 분명 윤경위와 요원 한 사람뿐이었다. 이 두 사람 외에는 인지를 하지 못했는데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들이 연구소로 가면서 지나치게 될 모텔 주변이 찜찜하게 느꼈던 윤경위가 자신의 기를 총동원하여 유라온의 존재를 숨겼던 사실을 그가 알 턱이 없었다.

 

그는 유라온의 기술개발연구가 마무리 단계에 온 것을 확인하고 오늘 윤경위가 없는 사이 일을 해치우려 했었던 참이라 자신의 실수를 탓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그래서 보완책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는 송신장치가 발각되지 않았음에 틀림없었다. 연결 상태를 계속 보여주고 있는 것이 그를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정이 다되도록 아무런 반응이 전해지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유라온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 판단하고 잠간만이라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샤워실에서 찬 물을 뒤집어쓰니 평온함이 찾아왔다.

 

기습

 

조사를 완료한 지 한 시간이 지나자 윤경위에게 연락이 왔다. 동시에 안가 정문에 호위 차량 두 대가 도착했다. 이미 자정이 넘고 있었다. 윤경위는 요원 두 명과 함께 유라온을 자신의 차에 태우고 호위 차량 뒤를 쫓아갔다. 제임스와 그의 동료들은 자신들의 차를 타고 윤경위 차를 뒤따랐고 마지막에는 나머지 한 대의 호위차량이 따라왔다.

왕래하는 차량이 드문 2차선 국도를 한 시간 정도 달려갔을 즈음 밴 차량 한대가 앞서가는 것이 보였다. 그 차는 적당한 간격을 두고 계속 그렇게 달렸는데 한 순 간 차에서 총이 발사되는 되는 것 같더니 맨 앞 호송차량의 운전자가 피격 당했는지 차가 중심을 잃고 몹시 흔들거리다가 길옆의 논으로 추락하였다.

 

뜻하지 않은 돌발 상황이 발생하자 윤경위는 비상등을 켜고 속도를 늦추도록 했다. 그러나 이어서 날아온 총알에 앞바퀴 하나가 펑크 나면서 중심을 잡지 못하다가 역시 꽤 높은 언덕아래의 밭으로 곤두박질쳤고 추락하는 순간 모두들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제임스가 탄 차량과 뒤편의 호송차는 급히 차를 정지시켰다. 순간 제임스는 소음권총을 꺼내더니 운전자와 옆의 요원을 차례로 사살했다.

그런 다음 차에서 내려 호위차량을 방패삼아 밴 차량에 대응사격을 가하고 있는 호위요원 쪽으로 피신하듯 왔다. 그들은 모두 밴 차량에 신경 쓰고 있었으므로 제임스의 행동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는 호위요원들 뒤편으로 와서는 그들 역시 모두 사살하고 말았다.

 

상황이 종료되자 밴 차량에서 복면을 한 두 사나이가 나오더니 유라온이 탄 차량으로 달려가서 유라온만 꺼내어 그들의 차에 실은 뒤 사라져 버렸다. 그것을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던 제임스는 밴이 사라지고 나자 본부에 구조요청을 하고 나서 윤경위 등을 차량에서 구출하기 시작했다.

구급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데 먼저 윤경위가 정신이 들었다. 제임스 강으로부터 그들을 공격한 사람들이 유라온을 납치해갔다는 말을 듣고 당황하면서도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맨 뒤의 호송요원들은 모두 피격을 당해 사망했는데도 홀로 멀쩡한 제임스가 설명하는 상황을 곰곰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그가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아가 이 납치사건이 그 연유는 알 수는 없지만 제임스가 연출한, 치밀하게 계산된 위장술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지 않아도 단우공으로부터 그의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고 윤경위도 그의 이미지가 저 멀리에서 기회를 노리며 창공을 맴돌고 있는 솔개 같기만 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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