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스토리

내닫지 않아도 빠르고 움직이지 않아도 도달하게 되며 보이지 않아도 보게 되는 겁니다. (운명은 숙명이 드리우는 오묘한 그림자(제22회))

허슬똑띠 2023. 2. 18.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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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줄위에 춤추는 무서운 악연의 끝은?

 

텔레파시 추적

 

본부로 돌아온 윤경위와 제임스는 본부장 주재 하에 회의를 가졌다. 그러나 단서나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겉도는 얘기로 일관하다가 일단 회의를 끝냈다. 윤경위는 개별적으로 제임스와 의견을 나누다가 그가 숙소로 돌아가자 요원 한 사람을 붙여 그의 움직임을 감시하도록 했다.

그러나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이 요원과의 연락이 두절되자 직접 나서기로 했다. 다른 요원들에게 행방불명 된 요원을 찾도록 지시한 다음 윤경위는 자신의 차에서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고 단우공의 말을 떠올렸다.

 

'무한한 우주에 비하면 사람은 묘창해지일속(渺滄海之一粟) 즉 드넓은 바다의 좁쌀 한 톨에도 미치지 못할 존재로 보이지만 신비하게도 우리의 인체는 이 우주에 버금가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인체는 소우주이며 천지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어요. 머리는 곧 하늘이요, 배는 곧 땅입니다. 귀는 해이고 눈은 달이며 입과 손은 산과 물에 흡사하며 팔과 사지는 곧 우레나 바람과 같다고 보면 되지요. 이는 천지의 조화가 사람의 몸에 그대로 깃들여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 어찌 사람이 위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위대한 육신을 바로 계발하게 되면 우주 만상의 오묘한 기틀이 그대로 우리 자신에게 발현이 되고, 발현이 되면 또한 그것을 아주 오묘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겝니다. 이 기틀이란 고요(靜)하면 변(變)하고 움직(動)이면 화(化)하는 법(法)이므로 동정(動靜)간의 무궁한 변화의 조화로 결국은 '내닫지 않아도 빠르고 움직이지 않아도 도달하게 되며 보이지 않아도 보게 되는 겁니다. 바로 이처럼 천지와 우주의 묘법이 자신들 몸 안에 있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는 것이 수련의 첫걸음입니다.'

 

이 말의 의미를 명상으로 이어 갔다. 한참 동안 유라온의 행적을 추적하다 보니 서서히 무언가 희미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가물가물 거리는 것이 유라온의 모습 같기도 하고 언젠가 우연히 마주쳤던 사람인 것 같기도 한데 명확하지가 않았고 주변에 나타나는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이것이 한갓 데자뷰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 안타까운 마음이 강렬해서였을까? 그마저 도리어 희미해지더니 흩어지고 말았다.

 

눈을 뜬 다솜은 얼굴에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을 닦아내고 심호흡을 했다. 아마도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진 게 틀림없었다. 추적의 끈이 쉽게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은 그에게서 발산하는 생체리듬이 끊어졌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불안감을 최대한 억누르고 마음을 다잡은 다음 더욱 강렬하게 정신을 집중했다. 아까의 데자뷰 현상이 다시 시작되다가 서서히 주위환경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흐르는 강물과 강변 길 그리고 숲 속으로 향하는 길이 나타나더니 어느 지점에 이르자 강한 충격이 일어났다.

순간 그녀는 눈을 활짝 떴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곳이었다. 곰곰 기억을 더듬다가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자마자 급하게 시동을 걸었다. 그녀는 자신의 텔레파시가 이끄는 대로 달려갔다.

 

마지막 악연 (死의 찬가)

 

길가에서 총격을 벌인 끝에 유라온을 납치한 괴한들은 울창한 숲 속에 숨은 듯 자리 잡고 있는 통나무로 지은 집에 도착하였다. 오는 도중 깨어난 유라온은 전혀 안면이 없는 건장한 외국인들이 좌우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뭔가 일이 단단히 꼬여가는 게 분명했다. 그들은 유라온이 정신을 차리고 영문을 모른 채 안절부절 하는 것을 본체만체 하면서 아무 말도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그를 재촉하여 집안으로 들어온 그들은 커튼이 처져있는 거실 소파에 그를 앉게 하고 손발을 로프로 묶었다.

 

앞으로의 일이 무척이나 걱정되었지만 그래도 잠은 쏟아져 왔다. 누가 수면제 같은 것을 먹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긴 채 그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무슨 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 확인해보니 다름 아닌 제임스였는데 어리둥절하고 있는 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소음기가 달린 권총을 안주머니에 집어넣고 있었다.

 

그는 반가움으로 벌떡 일어났지만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보고 기절초풍했다. 그를 지키고 있던 사내 두 사람이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어안이 벙벙하여 그들을 바라보다 제임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눈빛은 어제의 것이 아니었다. 오싹해질 정도로 싸늘해 보였다.

그는 일어선 그를 풀어주더니 다시 권총을 꺼내들고 말없이 그에게 겨누었다. 총으로 지하실로 통하는 입구의 문을 가리키며 유라온에게 그곳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유라온은 영문을 몰라 제임스에게 말을 붙여보려고 했으나 대꾸도 없이 마냥 그를 밀쳐대며 지하실로 내려가도록 했다.

 

그곳에는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들어서자마자 제임스 강이 총으로 그를 겨냥하다가 컴퓨터를 가리켰다. 컴퓨터 앞에 앉자 그가 보관하고 있던 외장하드 장치와 함께 이상한 형태의 금속판을 건네더니 모든 자료를 그곳으로 옮겨 담도록 지시했다. 저항하다가 그의 폭력에 못 견딘 유라온은 어쩔 수 없이 자료를 옮기기 시작했다. 그가 완료하고 건네주는 판을 받아드는 순간 제임스 강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에게 권총을 난사하였다. 무방비상태에 있던 유라온은 그 자리에 그대로 고꾸라져서 곧바로 숨을 거두었다.

유라온의 죽음을 확인하고 나서 그는 바쁘게 움직였다. 양복 주머니에서 비닐 봉투를 꺼내어 안에 든 액체를 컵에 쏟아 부은 다음 자료가 입력된 판을 담자 순식간에 수많은 작은 알갱이로 변했다. 잔속에서 회오리처럼 휘돌며 변화하는 모습위로 세르게이의 얼굴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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