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스토리

정신을 집중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잔영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인물이 있었다. (운명은 숙명이 드리우는 오묘한 그림자(제24회))

허슬똑띠 2023. 2. 20.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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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줄위에 춤추는 무서운 악연의 끝은?

 

서글픈 인연(계속)

 

다녀오겠다는 인사말을 뒤로 하고 씩씩하게 대문을 나서는 딸에게 손을 흔들고 나서도 차를 타고 멀어져 가는 모습을 한참 동안 쳐다보던 윤경은은 집안으로 들어가면서 '이제 저 애도 시집을 보내야 할 텐데~'라는 어머니 윤소희의 말에 그 동안 잊고 지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결혼을 하고 평범한 가정주부로서 평탄하게 지낸 지 1년도 채 못 되어 그녀는 이혼하자는 남편의 급작스런 말에 불타는 소돔을 뒤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되어버린 롯의 아내처럼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아무 이유도 묻지 않고 이혼에 합의했다.

 

나중에 남편의 친구로부터 그 사유를 알고 난 그녀는 그가 자신을 사랑해서가 아니고 단지 그녀의 미모와 재산 때문에 결혼한 아주 속되고 속된 미물이라는 생각에 쓴 웃음만 나왔다. 남편은 한 술좌석에서 그녀 모친의 과거를 아는 사람과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대놓고 그녀가 아비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생아였다고 떠들어 댔다는 것이다.

속물이라 생각하니 쉽게 잊게 되었고 마음에 별로 상처도 남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남자를 만나기가 싫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아이는 갖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부탁을 하여 친구의 모친이 운영하는 고아원에 가게 되었다. 마침 아주 예쁘고 귀여우면서도 똑똑한 여자아이가 있다고 해서였다.

 

친구의 얘기로는 수개월 전 사무장이 데려왔는데 그저 부모가 모두 급사했고 후견인이 아무도 없어 오게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겨우 두 살 남짓한 나이라 아이는 이틀 동안 부모를 찾으며 많이 울었으나 이후에는 매우 당차게 지낸다는 것이다. 친구는 아이가 고아원에 올 당시의 옷차림으로 보아 궁색하지 않은 집안에서 자란 것으로 보였는데 정말 똑똑하고 예쁜 아이라고 자기의 아이처럼 자랑을 해댔다.

 

그런 연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그녀가 아이를 처음 본 순간 마치 잠시 떨어져 있던 자기의 아이를 다시 만난 것 같은 느낌이 감동적으로 밀려왔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아이를 와락 껴안았다. 그리고는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안고 있었다. 아이도 그녀의 포근한 가슴이 좋았던지 아니면 엄마의 품처럼 느꼈는지 숨소리도 고르게 조용히 안겨있었다.

 

집으로 데려오고 나서 아이의 이름을 다솜이라 지었고 그녀를 자신의 호적에 올리면서 아이가 온 날을 생년월일로 했다. 다솜은 정말 자신이 낳은 아이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유라온이 다솜을 처음 보았을 때 혹여 자기 동생 유라은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가지기도 했지만 다솜의 나이가 두세 살 더 어리다는 것을 알고는 그 기대를 버렸던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윤경은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날이 가면서 다솜은 그녀를 친엄마처럼 알게 되었다. 다솜은 배 아파 낳은 아이보다 더 애틋한 정을 느끼게 하는 아이였다. 그런 다솜이 무척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아이가 잠자다가 가끔 가위눌린 듯 놀라는 모습을 보고 아이에게 불행한 일이 있었음을 느꼈었다.

 

그녀의 두 뺨에는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이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솟구쳐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려 애쓰면서 현실을 직시하고자 했다.

한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일어나 그녀의 오빠를 죽이고 기술을 빼내간 범인을 기필코 잡아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거의 평상시의 평온한 마음으로 돌아오자 다시 정신을 집중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과연 이곳에는 오빠 외에 또 누가 있었을까? 서서히 잔영 속에 드러나는 인물이 있었다.

 

이중 함정

 

수사본부에서는 이번 일을 비보이의 범행으로 단정 짓고 비보이가 국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출국자의 체크를 철저히 하면서 그의 추적을 계속해갔다. 그러나 넓은 흙탕물 속의 미꾸라지 한 마리를 잡으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제임스 역시 비보이가 아직 한국 내에 있을 것이라는 본국 수사대의 통보에 따라 한국 수사대와의 공조수사를 계속하기로 했다.

 

윤경위는 두 가지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첫째는 가장 의심스러운 인물은 제임스이므로 그의 행적을 계속 추적해보기로 했다. 이미 그녀는 비밀리에 그의 호텔 숙소를 샅샅이 조사해보았었다. 그러나 약물 같은 것이 들어 있는 비닐봉지가 다소 특이했을 뿐 기대했던, 유라온에게서 달아난 저장기기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합동 회의 시에 제임스를 세심히 관찰하면서 그것을 지니고 있는지 여부를 파악해보았으나 역시 뚜렷하게 잡히는 것은 없었다. 그래도 그가 국내에 있을 동안 그의 움직임은 예의주시하기로 했다.

 

둘째는 비보이가 스스로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도 분명 기술을 빼내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인 만큼 아직 국내에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다면 조만간 그가 제임스에게 접근할 가능성이 컸다. 그도 역시 가장 의심스러운 인물로 제임스를 지목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기회를 포착하자는 의도였다.

 

그 동안 계속 비보이에 대한 정보가 제임스에게 날아왔으나 최근 그의 행적을 전혀 감지할 수 없다는 통지가 왔다. 그러자 그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제임스도 모를 리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 그림자인물에게 자료를 건네주고 모든 것을 마무리 짓고 싶던 차에 연락이 왔다. 분명 그의 목소리였다.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하다. 사람을 보낼 테니 그 사람에게 전달하라'고 하면서 그가 말문을 열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

 

미심쩍기는 했지만 그의 지시를 무시할 수도 없어 그가 제시한 날에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 나갔다. 아직 자료는 그의 뱃속에 있었다. 그의 사자(使者)를 만나서 자초지종을 들은 다음에 꺼내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만나자고 한 장소부근에 도착하자 미리 내려 걸어갔다. 큰 공장건물이었으나 오랜 동안 방치되어 있었는지 담도 군데군데 허물어져 있었고 꽤 볼품없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페인트칠이 거의 벗겨진 철문에는 자물쇠를 채운 시늉만 내고 있었고 그나마 그 동안 부랑자들이 많이 드나든 듯 반쯤 열려져 있었다.

 

제임스는 조심스럽게 문틈 사이를 통과해 마당으로 들어갔다. 주위를 경계하면서 군데군데 허물어져 있는 공장건물의 출입구로 향했다. 문을 열자 축축한 생선 비린내와도 같은 역겨움이 풍겨왔다. 길게 이어진 내부는 어두침침하기는 했으나 여기저기 뚫린 천장구멍 사이로 빛이 흘러 들어와 사물은 확연히 분간할 수 있었다. 그는 찬찬히 공장내부 전부를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들어오면서 느꼈던 역겨움은 계속 불쾌한 여운을 남겼다.

 

녹슨 기계들과 자재찌꺼기들이 멋대로 널려 있는 내부를 서성이다가 반대편 출입구 문을 잠근 다음 바로 옆 기둥에 몸을 숨기고 자신이 들어온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누군가가 소리 없이 공장건물 내부에 들어서더니 그가 있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권총을 꺼내 들고 그가 접근하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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