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스토리

이 후로는 두 가족 모두 서로 좋은 인연이 되어 만날 수 있을게요. (운명은 숙명이 드리우는 오묘한 그림자(제26회 / 마지막회))

허슬똑띠 2023. 2. 22.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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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줄위에 춤추는 무서운 악연의 끝은?

 

 

악연의 끝

 

비보이의 온몸을 수색해보았으나 아무런 것도 나오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으로 제임스의 숙소로 와서 그의 사물을 다시 뒤져 보았으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자료가 어디로 가버렸는지 귀신 곡할 노릇이었다.

미국 국제범죄수사대에는 제임스가 비보이를 사살하는 과정에서 그가 미리 설치해놓은 폭발물로 인해 폭사한 것으로 통보했다. 그는 비보이의 사살 공적을 인정받아 일 계급 특진했다.

 

후에 윤경위는 단우공과의 대화를 통하여 그의 몸속에 비밀이 감추어졌고 그가 불타 죽으면서 그 역시 사라진 것임을 나름 추정했다. 거대한 기술이 한 순간에 홀연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다솜양의 오빠가 이루었던 높은 업적을 폄하하고자 하는 뜻은 아니나 원래 그것은 우리 것이 아니었어요. 더구나, 그 기술로 인해 우리나라가 많은 혜택을 누릴 수도 있었겠지만 역설적으로 그 보다 더 뛰어난 청정기술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니 그것이 영영 사라졌다고 해서 아쉬워하거나 나의 실수로 인한 것이라고 탓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오."

다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솜양이 오빠에게 남자로서의 애정을 느꼈던 것도 알고 있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두 사람은 전생에 아주 애틋한 사랑으로 가득했던 부부였어요. 불행스럽게도 전란 통에 생이별을 하게 되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정으로서 남매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오빠가 마지막 악업의 고리에 있었기 때문에 이를 돕기 위해서 가슴 아픈 이별을 겪게 된 겝니다. 그러니 너무 가슴 아파하지 말아요. 어차피 연이라는 것은 이리 저리 변하면서 한없이 순환되는 것이니까요."

 

그녀는 단우공에게 전혀 얘기한 적이 없었는데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부끄러운 일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두 볼이 엷은 홍조로 물들었다. 그런 다솜의 모습에 따뜻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의 엄마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다솜양에게는 분명 적대적인 위치에 있어야 할 어머니가 다솜양을 이리도 훌륭하게 키워주었다는 사실은 업의 해소를 위한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되었다고 생각해요.“

 

잠시 말을 멈춘 단우공은 윤다솜을 부드럽게 바라보았다.

“한 동안 드리워졌던 악업의 그림자가 점차 거두어지고는 있는 상황이었기는 하지만 그 힘의 작용이, 끝나지 않을 것만도 같았던 악연의 고리를 풀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겝니다. 덕업을 위한 발전적 전개이지요."

"저도 그렇게 받아드리고 있습니다. 제 어머니는 누가 뭐라고 해도 제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분이니까요. 한편으로는 어머니도 피해자이기도 하잖아요. 그러면서도 부지불식간이지만 저희들에게 너무도 많은 보시를 해주셨다고 생각해요."

 

그러자 단우공은 환히 빛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견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솜양의 정신수양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군요. 그래요! 언젠가 오빠가 이런 말을 했다고 했더랬지요? '업은 창조되는 것이다.'

다솜양의 할아버지 때 강은규라는 사람과 맺어진 악연이 3대에 걸쳐 이어지기는 했으나 전생에서부터 시작된 악업에 대한 창조적인 미묘한 변화가 있었고 그럼으로 해서 지난 업이 서서히 씻기어 내려가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악연의 끝을 맺게 하는 묘한 힘의 작용으로 몇 가지 더 들 수 있을 겝니다.

 

애석한 일이었지만 다솜양의 오빠가 강진성에게 죽임을 당한 일, 그리고 삼대 째 악업의 당사자인 강진성의 죽음이 우리 다솜양에 의해서가 아니라 비보이라는 제 삼자에 의해서였다는 것, 이 모든 일들이 상호 작용하면서 모든 악업을 종결하는 결과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어요.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다솜양의 어머니가 해준 것입니다. 이 후로는 두 가족 모두 서로 좋은 인연이 되어 만날 수 있을게요."

다솜은 단우공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 현실적으로 본인이 직접 겪으면서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의 힘을 느꼈기 때문이다.

 

유라온의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그녀가 그와 함께 안가를 빠져 나와 연구소로 향하던 차 안에서 마치 오랜 만에 해후하는 연인처럼 느꼈던 일을 회상하며 아주 짧은 만남이었음에도 너무도 쉽게 오빠를 보내는 아쉬움에 사로잡혔었다. 그 아쉬움을 그의 묘지 속에 함께 묻으며 그녀는 다음 생애에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그를 보냈다. 부부로든, 남매로든 또는 부녀로든 간에…

 

장례식장을 떠나는 다솜의 귀에 익은 노래가 들리는 듯해서 그녀는 흘깃 뒤를 돌아보았다.

 

‘약속해요 이 순간이 다 지나고

다시 보게 되는 그 날

모든 걸 버리고 그대 곁에 서서

남은 길을 가리란 걸.

인연이라고 하죠. 거부할 수가 없죠.

내생에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 다시 올 수 있을까요?

 

취한 듯 만남은 짧았지만 빗장 열어

자리했죠. 맺지 못한 데도

후회하진 않죠. 영원한 것 없으니까.

하고픈 말 많지만 당신은 아실 테죠.

먼 길 돌아 만나게 되는 날

다신 놓지 말아요.‘

 

(이선희의 ‘인연’ 가사 중에서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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