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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쪽지를 내던지고 방향을 읽은 분노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운명은 숙명이 드리우는 오묘한 그림자(제3회))

by 허슬똑띠 2023.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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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줄위에 춤추는 무서운 악연의 끝은?

 

아버지의 일기

 

나는 유복자 아닌 유복자였다. 어머니는 나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느라 38선을 넘어가신 뒤 소식이 끊어지는 바람에 이후 매일 눈물로 지새우셨다고 했다.

뒤이어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숨 가쁜 피난 생활을 하다가 서울로 되돌아 왔건만 고향으로 향하는 길은 38선보다 더욱 높은 장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크나큰 상심과 허탈감 속에서도 어머니는 숱한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며 아버지가 살아 돌아 올 것이라고 믿고 기다렸다고 했다.

 

어머니는 오롯한 사랑과 뒷바라지로 나를 키우셨고 그에 부응하고자 나도 당차게 세상을 대하면서 꿋꿋하게 살았다. 어머니는 가끔 아버지 생각이 나실 적마다 '너는 아버지를 꼭 빼어 닮았어.'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어머니가 항상 품속에 간직하고 계셨기 때문에 볼 수 없었던 가족사진을 우연히 본 적이 있었다. 거기에는 부모님과 갓난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나는 당연히 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는 나의 형이었다.

누렇게 변색된 사진 속에서의 아버지는 아주 오래 전 유행하던 복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에 못지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잘 어울리는 모습으로 보아서 빼어난 옷걸이임에 틀림없었다. 늘씬한 키에 쌍꺼풀이 진 것처럼 보이는 눈매는 당시 여인들의 시선을 한 눈에 받았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어머니 역시 아버지의 천생배필이었다.

 

그러한 아버지를 닮아서일까? 학교에서 여학생들한테 인기가 많았었다. 그런데 나는 나를 진심으로 대하는 소다미를 좋아했다.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그녀의 부모가 이북인 함경도 출신이라는 것, 그리고 무남독녀였던 그녀가 대학 입학 할 당시 부모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고아나 다름없었다는 점이 작용했을지 모른다.

주변의 비우호적인 시선을 극복하면서 우리는 진정으로 사랑했었고 졸업하자마자 결혼했다. 소다미가 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살림을 하였고 나는 공부와 연구를 계속 해나갔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국립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양치식물의 포자연구에 몰두하던 나는 실수로 아주 특이한 박테리아를 발견하게 되었다. 페니실린과 같은 유명한 과학적 발견이 뜻하지 않은 실수에 의해 이루어졌었던 것처럼.

이것은 급속하게 식물의 성장을 촉진하는 성질을 지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생존율이 극히 낮았고 생성된 후 얼마 되지 않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등 아주 불안한 존재였다.

계속적인 실험에도 불구하고 연구에 진척이 없자, 함께 입사하여 몇 년간 같은 연구실에서 근무하면서 자주 연구방법에 대한 의견을 나누어왔던 동료 연구원인 강유영에게 이에 대한 것을 상의하였다.

 

강유영은 미뿐 구석은 없었으나 처음부터 곰살궂게 구는 통에 가깝게 지냈었다. 그러나 그의 지나친 관심과 문제의 중심에서 동떨어진 엉뚱한 제안은 도움보다는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답답한 심정에 그에게 연구에 대한 얘기를 꺼낸 것은 판단착오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또한 처음 그에게 연구내용에 대한 얘기를 꺼냈을 때 그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음이 기억났다. 그러다 보니 마뜩찮은 표정을 숨기기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딱히 집히는 것은 없었다. 허나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할 것 같았다. 박테리아를 발견하게 된 과정과 성질 등에 대한 연구내용을 연구일지에 암호로 적어놓고 이를 별도로 보관해 두었다.

또한 강유영과의 의견교환도 중단했다. 이에 따라 그와의 대화가 계속 겉돌게 되자 강유영의 얼굴에서 언짢은 표정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악의로 변질되었고 나를 공격할 수단을 찾고자 했던 것 같다.

 

1984년 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이었다. 연구실에서 혼자 늦게까지 일에 몰두하고 있던 나는 걸려온 전화를 받고 기겁하였다. 네 살 된 아들 라온이었는데 복면한 사람들이 침입하여 아직 두 살도 채 되지 않은 라은을 데리고 갔다는 것이다. 아들은 동생을 재우고 나서 마침 화장실에 갔다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낌새를 눈치챘다.

구둣발이 어수선하게 들리며 자기를 찾는 소리를 듣고는 빨랫감을 담아놓은 통에 숨어있어 화를 모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후 라온은 오랜 동안 동생을 챙기지 못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았다.

그제야 아내 역시 학교일로 늦는다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연구가운을 벗어 던지고 양복으로 갈아입으면서 부랴부랴 연구실을 달려 나왔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주차장에 도착한 나는 승용차를 급하게 발진시켰다. 집에 도착해보니 아들이 아직도 공포에 사로잡혀 떨면서 울고 있었다.

 

집안은 마치 악마가 설쳐댔던 것처럼 젖은 구둣발자국들이 난무하고 있어 애간장을 끓게 만들었다. 아들을 달래며 이리저리 둘러보던 나는 식탁 위에 놓인 쪽지를 발견하고 급히 펼쳐보았다. 다음 날 오후 8시까지 지금 개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기술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보내지 않으면 딸아이의 목숨은 없다는 통지였다. 순간 한 인간의 얼굴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다 사라졌다.

쪽지를 내던지고 방향을 읽은 분노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러는 나의 곁에 있던 아들이 불안한 눈빛으로 슬그머니 나의 손을 잡았을 때 그제야 아들이 겪었던 악몽을 떠올리고 와락 껴안았다. 아들의 눈에 그렁그렁하던 눈물이 뺨을 마주치자 내 얼굴에 흘러 넘쳤다. 한참을 덜덜 떨고 있던 아이는 그제야 평온해지는 듯 했다. 그러나 눈물로 얼룩진 녀석의 발그레한 얼굴에는 나 이상의 짙은 슬픔이 진하게 배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음날 나는 강유영의 행동을 세심히 살펴보았으나 평소의 그와 전혀 다름이 없었다. 강유영을 직접 대면하여 다그쳐볼까도 했으나 아무런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화만 자초할 수도 있어 이내 마음을 바꿔먹었다. 그러나 어째든 딸을 구하기 위해서는 개발 자료를 넘겨줄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아직은 내 연구가 완벽하게 끝나지 않았다는 것과 진행과정이 공식적으로 보고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아쉽지만 우선 딸아이를 구하는 게 급선무였다.

하지만 그날 연구 자료만 넘겨주고 딸은 찾아오지 못했다. 자료를 점검해보고 이상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으며 거기에다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자료를 폐기하고 더 이상 연구를 계속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해야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허울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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