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줄위에 춤추는 무서운 악연의 끝은?
삼대 모녀의 집안(계속)
한 손에 가시 들고 다른 한 손엔 막대를 들고 가시론 늙는 길 막고 오는 백발은 막대로 치려 하자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온다더니 세월의 무상함을 쉽게 당해낼 재간이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은 모양이었다.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는 젊은 날 엄마가 얼마나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였는지를 미루어 짐작케 하고 있으나 머리에는 조금씩 서리가 내리고 있고 눈가에는 작은 주름들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는 것 아닌가?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것인데 크게 눈여겨보지 않았던 탓이었을까? 경은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는 엄마가 어떻게 자신을 키웠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어릴 적 딱 한번 아버지에 대해 묻는 말에 대강 얼버무리고 나서 자기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돌아서는 엄마를 보고난 뒤로는 그녀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엄마 역시 계속 일언반구 없었으나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가족사에 대한 내용을 풍문으로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척 당황스러웠으나 딸을 위해 사실을 숨겨오면서 상처 없이 자라도록 해준 엄마가 너무도 고마웠다.
엄마는 요정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그만둔 뒤 아무 연고도 없는 지방으로 내려가 한식집을 운영하였다. 평소 음식솜씨가 대단했던 엄마는 10여 년간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고 했다.
음식점이 소문나자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더욱 번성했었는데 어느 날 급작스레 음식점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손을 뗀 후 그곳을 떠났다는 것을 그녀가 다 자란 후에 알았다. 엄마의 과거에 대한 나쁜 소문이 떠돌았다는 것이다.
지금에서야 엄마가 왜 그랬는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퍼지는 소문으로 말미암아 딸이 상처를 받게 하고 싶지 않았고 또한 윤경은이 다솜에게 해주려 하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정상적인 성장을 원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음식점에서 손을 뗀 후부터는 엄마가 직접 그녀를 돌보면서 공부를 시켰고 현모양처로서의 틀을 만들어 나갔던 것이다.
엄마의 말을 듣다가 엄마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고 나서는 엄마의 조언을 듣기로 했다. 그래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 후에도 한동안 행여나 하고 다솜의 의지를 바꿔보려 몇 번 시도하다가 끝내는 도리어 자신을 설득하는 논리에 두 손 들고 말았다. 또한 다솜이 어릴 적에 자주 놀라 깨었던 것이 기억나면서 운명적인 연유로 인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되었다.
다솜은 경찰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향후 수사관의 역할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중 선배의 소개로 한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학업, 범죄수사 실습 그리고 무술 등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경찰에 투신하리라 마음먹고 태권도와 합기도 등 여러 무술을 연마하여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련 대회에서 몇 번 우승하기도 했었다. 학업에서도 남에게 뒤지지 않았다.
그런데 학교에 입학 한 뒤 언제부턴가 유행어에서와 같이 뭔가 항상 2%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무리 실전 같은 실습에서 남들보다 앞서고 무술에서도 유감없는 솜씨를 발휘하는가 하면 사격에서도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얻고는 했지만 소용없었다.
'내게 부족한 건 과연 뭐지? 전설적인 인물인 셜록 홈즈의 천부적인 능력? 칫, 그는 가상인물에 불과하잖아? 아니면 외국의 범죄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수사관들의 후천적인 능력? 흥! 그것도 만들어진 이미지에 불과할 뿐이지.
하지만~~ 아무리 가상인물이고 드라마 속에서 태어난 수사관들이라 해서 그들이 지닌 능력이 그저 소설이나 드라마로 끝나는 것인 아닐 수도 있잖아?
그렇다면 혹시 이 느낌은 그런 면에 대한 갈증이 아닐까?'
두 번째 관문
첫 번째 과제의 성공이후 라온의 두 번째 과제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였다. 다소 쉽게 식물을 고온과 고압 속에서 분해시켜 탄화수소화 시키도록 하는 변형 박테리아를 생성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문제가 튀어나왔다. 박테리아의 활동성이 둔하면서 시간이 늘어지자 액체스타일이 아닌 석탄형태의 가루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석탄은 깨끗한 에너지가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효율적인 사용을 위해서는 재가공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바로 이점에서 상업생산성이 한참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면 천연석유와의 경쟁 역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석탄이 더 이상 각광받지 못하는 에너지원 이라는 점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지구 과학자 제임스 한센은 석탄을 ‘지구 생물체에게 가장 위험한 물질’로, 석탄 공장을 ‘죽음의 공장’으로 정의할 정도이며 그린피스는 석탄을 ‘가장 더러운 에너지’라 부르기조차 한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뒷덜미를 잡힌 셈이었고 연구는 이 포인트에서 오랜 동안 브레이크 걸린 자동차마냥 주춤대면서 더 이상의 진척이 없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아버지의 유지를 생각해서라도 포기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실패라는 무언의 폭력에 굴복하기란 정말 싫었다. 때로는 실패한다면 죽음 외에 더 이상 있을 게 없다고 비장한 결의를 내세우기까지 했지만 사실 이대로 생을 마감한다고 해서 패배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포기 자체가 끝이라 하지 않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달간은 유라온에게 있어 달콤한 세이렌의 노랫소리처럼 가혹하게 포기를 유혹하는 나날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안 되겠다 싶었다. 이번에는 그가 먼저 친구인 창준에게 전화를 했다.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와 대화를 해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었다.
역시 단골 술집에서였다. 창준이 앉자마자 ‘카르페 디엠(carpe diem)!’ 이라면서 오른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 말을 들으니 생각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였던 것 같은데, 선생이 엉망진창인 학생들을 바라보며 ‘카르페 디엠! 오늘을 즐겨라, 소년들이여. 삶을 비상하게 만들어라!’라고 했던 것 같은 데.”
라온의 이 말에 창준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그런 모습이라는 건 아니고, 힘들지만 오히려 그 상황을 즐겨라 하는 뜻에서 하는 말이야. 그래 지금 너를 괴롭히는 또 다른 문제가 뭔데?”
“인공석유 제조기술에 대한 건데‧‧‧ 아버지는 일단 식물에 함유되어 있는 탄화수소를 초단기적으로 추출할 수 있는 방향에만 집중하셨고 그 때만해도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가능성을 찾아내셔서 그걸 나한테 전해주셨거든.
그런데 문제는 화석연료생성에 있어 중요한 변수는 또 있었던 거야. 높은 압력과 초고온이란 거지. 이것이 시간이란 최대 변수와 맞물린 종속상황이란 것을 간과하신 것 같아.”
라온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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