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줄위에 춤추는 무서운 악연의 끝은?
국제범죄수사대
"비보이가 움직인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네. 비교적 신빙성이 있어."
긴급히 책임자 회의를 소집한 대장은 책임자들이 회의실에 들어서자마자 다짜고짜 말을 던졌다.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히듯 천정에 붙어 있는 프로젝터가 스크린 위에 관련 영상을 뱉어내기 시작하자 대장의 말이 이어졌다.
"모두들 알다시피 특급 범죄자인 '버쳐 보이(Butcher Boy)'란 인물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네. 국가 정보기관의 정보파일에도 간단한 이력과 별명만 있을 뿐이야. 그리고 그와 거래하는 세계에서는 통상 비보이로 불린다는 것 정도"
회의가 간단히 끝나자 국제범죄수사대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 동안 주요 인사의 피살에는 항상 그의 이름이 거론되었으나 언제나 티끌만한 단서조차 찾지 못했고 용의선상에서만 흘러 다닐 뿐이었다. 그는 미국 내에서 뿐만이 아니고 외국의 유명 경제인이나 정치가들을 저격 살해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한 침투에도 능하여 침입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곳에 보관되어 있던 보물이나 기밀서류를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탈취하여 사라지기도 했다.
일단 전 세계 정보기관에 간단하나마 그의 인적 사항을 보내고 수사협조 요청을 하는 한편, 출국하는 사람들과 주요 국가의 입국자를 대상으로 특이한 인물이 있는 지를 조사했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수사대에 특이한 인물이 포착되었다. 비보이가 행동을 개시한 것으로 판단되는 날로부터 5일 지난 후였다.
최근 출국한 사람들 중 평범하지 않다고 판단되고 다소 특이한 점이 있는 사람을 추려서 조사를 하였는데 한 명의 명의가 며칠 전 사망신고가 접수된 사람으로 드러났다. 급히 그 사람의 경로를 추적해보니 동남아시아를 경유하여 일본에 도착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급하게 일본에서의 행방을 추적해 보았으나 오리무중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책임자 회의를 통하여,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의 출국목적이 최근 공공연한 비밀로 되어 있는 인공석유제조기술과 관련이 있을 것이며 그렇다면 그의 최종 행선지는 한국일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다만 그를 사주할 만한 인물이나 단체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깊은 안개 속에 덮여있어 드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오랜만에 그의 움직임에 대한 뚜렷한 실마리를 붙잡았다는 것에 대해 감지덕지해야 할 일이었다. 그만큼 수사대에서 비보이를 추적해오면서도 번번이 꼬투리를 잡는데 실패했었고 그 원인은 정확한 정보의 부재였기 때문이었다.
수사대는 이러한 내용을 한국의 정보기관에 통보하고 수사협조요청을 보냈다. 또한 제임스 강과 함께 두 명의 요원을 한국에 파견하기 결정하였다. 제임스 강을 한국으로 파견하기로 한 것은 면목 상으로는 그가 한국계라는 점도 있었지만 실제는 정체를 확인할 수 없는 힘이 작용했다는 걸 제임스는 느낄 수 있었다.
잠행과 추적
제임스가 한국으로 출발하기 얼마 전 도쿄 긴자거리의 좁은 골목에 갈색머리에 턱수염을 기른 백인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주변을 한번 휙 둘러보다가 3층짜리 작은 건물로 재빨리 들어갔다. 그리고 3층까지 급하게 올라가서 작은 사무실의 문을 두 번 연달아 노크한 다음 천천히 사이를 두고 다시 두 번 노크했다. 그러자 문 윗부분에 달린 작은 공간이 열리며 누군가가 잠깐 외부를 살피는 것 같더니 이내 문이 열렸다. 들어서자마자 문을 열어준 남자와 가볍게 인사를 한 그 사나이는 작은 소리로 투덜대었다.
"내 행적이 노출되었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누만. 만약에 대비해서 미리 얘기해 놓기를 다행이네. 그래 다 되었겠지? 일정에 차질을 빚으면 곤란해."
상대는 걱정할 것 없다는 의미의 작은 웃음을 머금으며 자신의 책상에 앉자마자 서랍에서 여권 두 개를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제임스 일행이 수사대 전용기로 김포공항에 도착한 그 시각에 일본에서 온 여객기 한대가 김포공항에 착륙하고 있었다. 제임스 일행이 마중 나온 한국 요원들과 악수를 한 뒤 그들의 안내를 받아 자신들이 묵을 숙소로 향하고 있을 무렵 도쿄의 그 사나이는 출국수속을 마치고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검은 양복차림을 한 그에게는 작은 가방 하나뿐이었다. 얼마 후 그는 서울 시내 한 고급호텔 앞에 정차한 택시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호텔로 들어간 지 5분 여 뒤에 호텔 앞에 도착한 승용차에서 외국인 남자 한 명이 내려 로비로 들어갔다. 차는 이내 지하주차장에 들어갔고 운전자는 차안에 머무르며 주차장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로비에 들어간 사람은 조심스럽게 로비를 들러보다가 사람들 움직임의 파악이 용이한 커피숍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사이 호텔 바로 옆 편의 건물에서 코란도 한 대가 나타나더니 대로를 덮고 있는 수많은 차량의 대열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 건물의 이층에는 렌터카 사무실의 간판이 걸려 있었다. 그가 떠난 지 2~3시간가량 시간이 흘렀을 때 커피숍에 앉아 계속 들락거리는 사람들을 살펴보던 사나이가 휴대폰으로 연락을 받자 곧바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서 호텔을 떠났다.
비보이가 추적자들을 따돌린 것은 그들의 존재를 인식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아무리 변장을 했더라도 귀신처럼 알고 그림자처럼 꼬리가 붙을 수 있다고 판단했고 또한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혹시 있을 수도 있는 모든 변수를 감안해 가며 움직이는 그의 기본적인 행태의 결과일 뿐이었다.
어둠이 켜켜이 내려 쌓이고 있을 무렵 유라온의 안가로 향하는 길에 차량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주변을 휘저으며 나타났다. 예의 코란도였다. 차는 안가로 꺾여 들어가는 입구에서 잠시 속도를 늦추었다가 유턴을 하더니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주변을 살피듯 낮은 속도로 달리던 차가 숲 속에 난 좁은 길로 들어서더니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 비좁은 공간에 정차했다. 이내 간편한 복장을 한 남자가 내렸다. 그는 뒷좌석 밑에 숨겨져 있던 가방을 끄집어내어 안을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분해된 저격용 라이플 등의 장비가 들어있었다. 그는 특수망원경을 꺼내 목에 걸었다.
갑자기 새 한 마리가 놀란 듯 퍼덕거리며 다른 나뭇가지로 이동하는 하는 통에 멈칫하며 긴장했던 그는 주변을 면밀히 살펴보고 나서 조심스럽게 숲을 헤치며 나아갔다. 안가의 불빛이 보이는 주변보다 다소 높은 곳에 도달하자 은폐가 가능한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망원경으로 안가를 살피기 시작했다. 숲을 헤쳐 오는 동안 숨을 죽이고 있던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이곳에 오기 전 이미 이 안가의 위치를 확인했고 잠시 머물 모텔도 확인해 두었는데 거기는 안가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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