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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

위대한 순간

by 허슬똑띠 2021.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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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서강대 영문과 교수님께서 미국 유학 당시 경험하셨던 이야기입니다.

 

기숙사의 경비 중에 토니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나이가 한 예순쯤 되었는데 전직이 콜택시 기사였다고 합니다.

그는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동향 출신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습니다.

낙천적인 성격으로 파바로티처럼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였습니다.

아침이면 기숙사에 있던 사람들은 그가 밖에서 일하며 부르는 ‘오 솔레미오’ 소리에 깨곤 했지요.

그는 가끔 우리 방에 들러 함께 차를 마시곤 했는데,

한번은 우리들에게 자신이 기사 시절 크리스마스 이브 새벽에 겪은 한 일화를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날 밤 당번이었는데 시내 어떤 주소로 가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늦게까지 파티를 한 사람이 집에 가기 위해 부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서 한참을 기다렸으나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경적을 한두 번 누르고 가버렸겠지만

그날 밤 그는 일부러 차에서 내려서 벨을 눌렀습니다.

 

‘잠깐만요.’ 라고 아주 작고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무엇인가 마룻바닥에 질질 끌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고도 한참 있다가 문이 열렸습니다.

거기에는 마치 1940년대 영화에서 막 걸어 나온 듯한 복장에

모자까지 단정히 쓴 아주 나이든 할머니가 서 있었다고 합니.

그 뒤로 보이는 방에는 가구가 다 흰색 천으로 덮여 있었고요.

 

‘이 가방 좀 들어주겠수?

할머니는 아주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방을 나오면서 할머니는

문간에는 사진틀과 앨범이 가득 담겨 있는 상자가 놓여 있었는데

그 앞에서 잠깐 망설이더랍니다.

‘할머니 그것도 가져가실 거예요? 라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냥 두고 갈 테야.’

차에 타자 할머니는 주소를 주면서 시내를 가로질러 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면 돌아서 가는 건데요, 할머니.’

‘괜찮아요. 나는 시간이 아주 많아. 지금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고 있는 중이거든.’

이 말에 순간 토니는 뒷좌석의 할머니를 쳐다보았다고 합니다.

어둠 속에서 할머니 눈의 이슬이 반짝이는 게 보였습니다.

‘식구가 하나도 없어서. 의사 선생님이 인제 갈 때가 얼마 안 남았다고 하우.’

순간 토니는 요금 미터기를 껐습니다.

‘어떤 길로 갈까요, 할머니?’

그로부터 두 시간 동안 토니와 할머니는

함께 조용한 크리스마스 새벽 거리를 드라이브했습니다.

그녀가 젊은 시절 엘리베이터걸로 일하던 빌딩,

지금은 가구공장이 되었지만 처음으로 댄스파티에 갔던 무도회장,

신혼 때 살던 동네 등을 천천히 지나쳤습니다.

때로는 어떤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그냥 오랫동안 어둠 속을 쳐다보기도 하더랍니다.

 

어슴푸레 날이 밝아오자 할머니는

‘이제 피곤해, 그만 갑시다.” 라고 말했습니다.

침묵 속에서 토니는 할머니가 준 주소로 차를 몰았지요.

간호사들이 할머니를 맞아 휠체어에 앉혔고,

토니는 자기도 모르게 할머니를 안아 작별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자네는 늙은이에게 마지막 행복을 줬어. 아주 행복했다우.’

이렇게 할머니가 쓸쓸하지만 행복감에 쌓여 말했다고 합니다.

할머니를 두고 토니는 건물을 나왔고,

뒤로 문이 ‘찰칵’ 하고 닫혔답니다.

 

‘그건 마치 삶과 죽음 사이의 문이 닫히는 것 같았어.”

그 당시를 회상하며 토니는 말했습니다.

‘나는 그때 집으로 가지 않고 한참 동안을 할머니를 생각하며 돌아다녔지.

그때 내가 그냥 경적만 몇 번 울리고 떠났다면?

그래서 크리스마스날 당번이 걸려 심술난 다른 기사가 가서

할머니에게 불친절하게 대했더라면….

난 내 일생에 그렇게 위대한 일을 해본 적이 없어.

내가 대통령이었다 해도

아마 그렇게 중요한 일은 하지 못했을 거야.‘

 

우리는 우리의 삶이 아주 위대한 순간들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나의 모든 재능을 발휘해 아주 획기적인 일을 성취하는,

그 위대한 순간의 날을 기다리며 살고 있지요.

만일 그런 기회가 오지 않으면

내게는 왜 그런 기회가 오지 않느냐고 안타까워하고 지치고 슬퍼합니다.

 

그렇지만 그 위대한 순간은 우리가 모르는 새 왔다 가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우리 스스로가 하찮게 생각하는 순간들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르기도 하고요.

무심히 건넨 한 마디 말,

별 생각 없이 내민 손,

스치듯 지은 작은 미소 속에 보석처럼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그런 순간은

대통령에게도,

종교인에게도,

선생님에게도,

모든 작업장의 근로자들에게도

모두 골고루 오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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