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줄위에 춤추는 무서운 악연의 끝은?
활략
윤다솜은 그 후로 선배와 함께 자주 단우공을 찾아가 자신이 수련하면서 부족하게 느꼈던 점, 그리고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느낀 것에 대한 조언을 청하기도 하고 새로운 내용을 전수받기도 했다. 다솜의 전수속도는 무척 빨랐다. 먼저 수양을 시작한 한선휘선배가 멍할 정도였다. 그는 단우공의 지도를 받는 사람들의 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다솜과 같이 고속 질주하는 인물은 없었을 거라고 했다. 따라서 단우공과의 교감능력도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다솜이 후에 안 것이지만 높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은 상당 수 된다고 했다. 이들은 단우공의 뜻에 따라 자신의 능력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으며 묵묵히 우리 사회가 바로 나아가는데 힘을 쏟고 있다고 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다솜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지난 날 의미도 모르는 채 단순히 심리적으로 부족하게 느껴졌던 그것이 해소되면서 마음도 정신도 투명한 코발트 빛 가을 하늘과도 같은 맑고 신선함을 언제나 유지할 수 있었다. 단우공은 점차 다솜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 잡게 되었고 그녀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단우공과 일종의 텔레파시를 주고받으면서 그의 암시를 해석하여 이를 헤쳐 나갈 수 있었다.
다솜은 대학졸업 후 경찰청 수사과에 부임하면서 본격적인 경찰업무에 임하게 되었다. 그 후 1년 남짓 기간 동안 그녀는 선배 수사관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수사에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유아 유괴사건은 그녀가 처음 맡아 해결한 일례였다. 유괴사건이 접수되자 윤경위는 대원 몇 사람과 함께 비밀리에 수사를 시작하였다. 수차례에 걸쳐 범인이 요구하는 시각과 장소에 출동하였지만 이를 눈치 챈 범인이 나타나지 않아 수사가 답보상태에 빠졌다. 윤경위는 범인과의 통화내역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다가 변조된 범인의 음성때문에 명확하게 들리지 않지만 특이한 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소음은 범인이 가족에게 전화할 적마다 들렸다. 분석팀은 이것이 하수구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라는 것을 확인해냈다.
순간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의사인 아이 아버지에게 원한을 품은 사람이 있는지를 조사하다가 그 의사가 치료하던 노인이 최근 사망한 일이 있었고 그의 아들은 의료사고라고 주장했었다는 것을 밝혀냈었다. 그래서 그 아들을 찾아가 조사한 일이 있었는데 그의 알리바이가 너무 완벽 했었다. 다시 가서 그의 집 주변을 조사하다가 그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공중전화가 있고 그로부터 20여 미터 떨어진 곳에 하수구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집으로 돌아오던 그를 체포하여 계속 추궁하자 공범도 밝혀졌다. 바로 그의 고향후배였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의 행방이었다. 후배가 아이를 목 졸라 숨지게 한 뒤 가방에 넣 어 해변에 버렸다고 진술함에 따라 해당 지역 주위를 샅샅이 수색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윤경위는 실체를 분간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 떠오르는 환영으로 해서 아이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후배 주변을 조사해보다가 그의 누나가 1년 전 아이를 유산시키고 나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후배는 누나의 상태를 호전시키고자 그 아이를 누나에게 줘버렸던 것이다.
예상치 못한 결과
비싼 그림과 골동품이 드문드문 장식되어 있고 고급스럽게 보이는 탁자와 의자들이 깔끔하게 배치되어 있는 접견실에 유라온과 김창준이 나란히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대형 유리창 밖으로는 수많은 빌딩들이 다양한 형태로 자리하고 있는 부유한 동네의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무리 빌딩들이 다른 모양새와 색깔들로 치장했다고는 하지만 도시의 이미지는 대체로 회색의 질감과 매캐한 매연을 뿜어대는 자동차로 대변된다. 이는 답답하고 무거운 느낌을 갖게 하지 않던가. 그것을 바라보던 유라온은 자기가 앉아 있는 이곳이 아무리 깔끔한 정돈과 화려함이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지만 창밖에서 흘러오는 그 느낌을 그대로 받고 있었다. 완벽한 정돈이 주는 질곡과 지나친 화려함이 주는 거부감이 무척 이질적으로 다가 왔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는 일종의 예고이기도 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으로 전이되고 있었다.
유라온은 마음의 준비가 되자 창준에게 부탁하여 투자 상담을 할 창업투자회사를 물색해달라고 했었다. 창준은 학교선배의 친구가 대표로 있는 B창투사를 소개받았고 오늘 사업계획 설명에 필요한 자료 등을 챙겨가지고 함께 방문한 것이다. 유라온이 자신 앞에 놓인 자료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데 직원이 들어와서 그들을 회의실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사장과 직원 3명이 앉아있었다. 간단한 인사교환과 함께 사업계획 설명이 시작되었다. 유라온은 준비해간 프레젠테이션 자료로 한 시간정도 사업계획을 설명하였다. 그는 설명 중간 중간에 사장의 표정을 살펴보았으나 처음에 보았을 때보다 더 젊어 보이는 그는 미심적은 표정을 감추지 않고 있었다.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창준의 표정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불안한 느낌이 적중하고 있다는 실망이 그를 휘둘러 싸기 시작했으나 전혀 변함이 없는 창준의 표정에 다소 힘을 얻어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그가 직접 시험도중 촬영한 두 가지 영상이었다. 하나는 단 한 시간 만에 2m정도 자라는 식물의 성장장면인데 물론 랩타임이 삽입되어 있었다. 또 하나는 그 식물에서 인공석유를 추출해 내는 영상물이었다. 모든 설명이 끝나고 화면이 다시 밝아졌을 때 창투사 사장의 얼굴에 어리던 난감 한 표정은 포커페이스처럼 감추어져 있었다. 비교적 간단한 질문과 답변이 오가고 난 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자체적으로 검토할 시간을 달라면서 그날의 상담을 마무리 했다. 물론 그 뒤로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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