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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그 와중에 운석의 여신은 그의 뺨을 갈긴 손이 아닌 다른 손을 내밀었다. (염빙 바이러스 (제23회))

by 허슬똑띠 2023.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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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곳을 ‘신세계’라 불렀다.

 

16. 외로운 싸움(계속)

 

W신문사의 기사를 확인한 각종 언론에서는 난리도 아니었다. 이렇게 중요한 정보를 어떻게 한 신문사에게만 단독적으로 제공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늦게까지 취조를 당하느라 집에도 가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잠시 눈을 붙였던 창곤은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사무실 전화에 그만 일어나야 했다. 그러나 일일이 전화에 대응할 수 없는 처지라 벨이 울려도 그대로 나두고 창밖을 내다보니 아직 완전히 어둠이 가시지 않은 건물주변에는 온갖 언론사 차량들과 기자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전투경찰이나 정보부요원들의 제지를 받고 한발자국도 건물에 들어서지 못하자 이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도 보였다.

 

이창곤이 연구팀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을 접한 한기자가 해당 기관에 부당한 처사라고 항의하였으나 보다 효율적이고 신속한 연구를 통한 해결안의 도출을 위하여 부득불 취할 수밖에 없었던 조치임을 강조하면서 항의를 가볍게 묵살하고 말았다. 더구나 모든 언론이 정부의 이러한 조치를 아주 타당한 것이라고 부추겼기 때문에 한기자는 자사 신문에 이에 대한 반박기사조차 실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당초 정부에서는 한국 단독적으로 연구하고자 했었으나 하루도 지나지 않아 방침을 180도 선회하였다. 해빙의 문제는 단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었고, 비록 단서가 되는 운석을 한국에서 발견하였다고 해서 단독적으로 외계바이러스를 분석하라는 법이 없다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결방안을 찾아내기까지 얼마의 시일이 걸릴지 알 수 없을뿐더러 해결방안을 찾아낼 가능성 역시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기 때문에 가장 우려되는 것은 자칫하면 실기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백지장도 맞들면 났다는 속담을 명분으로 내세워 삼 개국이 공동 연구하기로 결정하였다. 비록 일본의 폭력조직에서 비밀리에 수행한 작전에 대해서는 괘씸하기 짝이 없었지만 나중 해결하지 못하였을 때의 온갖 비난을 한국에서 다 받게 된다는 점도 고려하게 되었다. 정부에서는 곧바로 중국과 일본정부에 이러한 사실을 통지하고 이 바이러스를 연구하여 해빙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한 합동연구팀의 구성을 제안했다. 이에 따라 각국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미생물 전문가들로 편성된 연구팀을 구성하여 한국으로 파견하였다. 이들은 속속 입국하여 별도로 마련된 연구실로 안내되었고 쉴 틈도 없이 즉시 연구에 돌입했다.

 

R바이러스

 

허탈감에 빠진 창곤은 며칠 동안 술로 이를 달래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 왜 운석을 개인 소유물로 생각하였느냐는 정부요원의 말이 자꾸만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말도 되지 않는 억지였고 만일 자신의 행동이 크나큰 실수였다 손치더라도, 비록 동생이 최초로 찾아내긴 하였지만 자신이 행방불명되었던 운석을 발견해낸 것과 그리고 외계 바이러스를 찾아낸 공로 이 두 가지로 그걸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을 진데 과실만 부풀려 추궁해대는 것이 마땅치 않았다. 더 나아가서 병곤의 업적과 자신의 전문성이 깡그리 무시당했다는, 모욕보다 더한 처사를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도 속이 상했다.

 

그 와중에 운석의 여신은 그의 뺨을 갈긴 손이 아닌 다른 손을 내밀었다. 해빙이 일으키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낼 수 있는 기회가 그에게 또 다시 주어진 것이다. 운석 사건 때문에 창곤 못지않게 마음이 허탈해진 서린 역시 마음의 상처가 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남편에게 실의의 상처만 부각시킬 조사시험설비를 눈에 띠지 않은 곳에 보관하고자 했다. 텅 빈 것 같은 머릿속에는 눈에 보이는 것의 외형만 인식될 뿐이지 이게 무엇이고 저건 무엇인지 분간되지 않을 정도였다. 남편 일을 도울 때는 눈감고도 알아맞히던 것들이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맹한 사람처럼 아무 생각 없이 장비를 옮기던 그녀는 한손으로 아무렇게나 배양유리통을 들고 보관 장소로 가다가 멈칫했다. 오히려 정신 차려 보려 해도 쉽게 눈에 띠지 않을, 바닥에 나있는 아주 희미한 반점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급속히 클로즈업되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마음에 걸려 그대로 지나칠 수 없어 되돌아섰다.

 

서린은 제발 무의미한 것이 아니기를 기도하면서 제자리로 돌아왔다. 손을 소독하고 그것을 조심스럽게 채취하여 전자현미경의 관찰대에 올려놓았다. 의구심을 쫓아버릴 만큼의 기대감은 없었다. 대신 단 한 줄 실오라기 같은 희망에 모든 것을 걸고 현미경의 배율을 조정하면서 컴퓨터화면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두 사람 모두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배양유리통에 낙하하였던 것일까? 이유는 아무래도 좋았다. 정말 우연이란 게 이런가 싶었다. 허탈감으로 허우적대다가 참시 마음의 여유를 되찾기 위해 집에서 쉬고 있던 창곤에게 전화했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듣던 그도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을 것이었다.

 

부리나케 연구실로 달려온 창곤은 마치 수년간 떨어져 있던 연인을 만난 듯 아내를 뜨겁게 포옹하면서 키스를 퍼부었다. 미친 듯 남아있던 바이러스도 중요했지만 그것을 찾아낸 아내 서린이 더욱 소중히 여겨졌기 때문이다. 정열적인 키스를 나눈 두 사람은 실험 장비를 다시 원위치 시켜놓고 현미경을 조정하면서 이에 연결된 컴퓨터 화면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서린이 말한 그대로임을 직접 확인한 창곤은 다시 그녀의 볼에 키스를 하면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난 그는 먼저 두 개에 불과한 세포의 생존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염분을 투입했다. 즉각적인 반응이 왔다. 계속 염분을 주입하면서 세포분열을 조작하여 개체수를 증식시켜나갔다.

 

창곤은 서린의 도움을 받아가며 연구에 몰두했다. 그동안 친구와의 동업을 포함하여 자신의 BT기업을 운영하면서 습득한 박테리아의 변형기술을 최대한 활용해가면서 온갖 실험을 진행했다. 매번의 실망스러운 결과에도 굴하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계속 도전에 임하였는데 여기에는 아내 서린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그런 서린이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유기물질의 종류를 계속 바꾸어 투입해가며 반응을 보고 있는데 서린이 방금 건네준 액체를 투입하자마자 모두 난리를 치다가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급히 염분을 투입해 보았지만 역시 반응이 없었다. 하얗게 질려 그녀에게 어떤 종류인가를 물어보았더니 곰곰 기억을 더듬어 보던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전에 투입하였던 액체가 바닥에 엷게 남아있었는데 이를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다른 시험 성분을 혼합한 것 같다는 것이다. 남아 있던 액체는 바로 문제의 바꽃에서 추출한 독성물질을 변질시켜 만들었던 것이다.

 

일정 동안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투입했어야 하는데 마음이 초조해져서 그런 지 별다른 반응이 없는 경우 성급하게 즉각 다른 물질을 이리저리 계속 투입했던 것이다. 설상가상이라고나 할까? 그러는 바람에 본래 상태의 바이러스는 하나도 남아 있지를 않았다. 창곤은 마지막으로 투입한 용기 속에 계속 염분을 주입하였으나 별무신통이었다. 창곤은 눈앞이 캄캄하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칠흑보다 더 진한 암흑세계의 문턱에 서있는 것 이상이었다.

창곤은 옆에서 가슴을 졸이고 있는 서린 때문에 답답한 마음을 그대로 표출하지도 못하고 곧 되살아나겠지 하는 말만 되풀이 하였다. 눈물이 글썽하던 서린은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곁눈으로 보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문제해결의 물꼬를 트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볼 수밖에 없었지만 안 되는 이유가 있다면 반드시 되는 이유도 있을 것이었다. 현명함이란 바로 이를 찾아내는 능력이 아닐까 라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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