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이곳을 ‘신세계’라 불렀다.
15. 실마리를 찾다.(계속)
위기일발
한기자는 창곤으로부터 동생이 강원도 산악지대를 등산하다가 발을 헛딛는 바람에 추락 사망하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자주 등산을 했던 동생이 방학을 이용하여 장기 등반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진정한 의도에 대해 의문이 들더라고 했다. 그 때는 해빙의 발견 소식이 세상이 알려지기 전이었고 창곤이 친구와 동업을 청산하고 자신의 사업체를 새로이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동생의 뜬금없는 행동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가 접어두고 말았었다. 그러다 문제의 해빙이 극도의 공포감을 안겨줄 정도로 커져가고 있을 무렵 그 의문이 풀렸고 결국 동생이 찾아내었던 운석을 발견하였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그는 그것으로부터 해빙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쇄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었다.
이날은 한기자가 두 달마다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 날이었다.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결국 모든 주제는 해빙에 집중되었다. 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느냐며 목소리 높여 정부를 성토하다가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당하고 말 것이란 불안한 감정들이 알게 모르게 한 숨을 표출하게 만들었다. 그러다가도 종국에 가서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말들이 오가며 주제는 다양하게 변화되었다. 마침 한기자의 옆자리에 앉았던 친구가 슬며시 자신이 보았던 것에 대한 판단을 요청했다.
강원도 산악지대에 회원들과 함께 등산을 갔었다는 그는 험한 산을 오르다가 중간쯤 되는 곳에서 잠시 휴식하기 위해 바위에 걸터앉아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사람이 별사람들도 다 있다면서 눈짓으로 산을 오르고 있는 남자 두 사람을 가리켰다. 살펴보니 그 뒤로 몇 사람이 지나고 나서 그와 비슷한 스타일의 사람 세 명이 또 나타나더라는 것이다.
한기자는 일반 등산객들일 텐데 뭐가 이상하다는 것일까 하고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그러다 친구가 그의 관심 없는 표정을 바라보더니 재미없다는 듯 말을 멈춘 순간 이게 생각보다 단순한 사안이 아닐 수도 있다는 느낌이 언뜻 들었다. 그동안 자신도 모르게 경험적으로 쌓여온 기자로서의 동물적 감각이었을까? 그래서 무엇이 이상하더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다시 신이 난 그는 자신이 보고 느꼈던 점을 세세히 얘기하기 시작했다. 우선 남자들의 체격이 아주 다부진 게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외관이었고 몇 사람은 일본사람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었다. 지나치는 그들을 보니 두 세 사람씩 한 팀을 이룬 것처럼 보였는데 그가 확인한 것만도 네 팀이나 되었다. 다른 한 가지는 그들이 입고 있던 등산복이며 배낭 등의 등산 장비가 유명 메이커로서 아주 값비싼 것이었는데 한결같게도 새 옷이었다. 그러나 단체로 일시에 준비했다가 같은 날 산행을 하면서 입게 되었을 수도 있다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들이 휴대전화 비슷한 소형 무전기를 소지하고 있으면서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평범한 등산객은 아닌 것으로 판단되었다.
좋은 정보였다면서 친구의 관찰력을 칭찬하는 것으로 이상한 등산객에 대한 얘기는 끝났지만 한기자는 필경 그들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라는 개연성을 지울 수 없었다. 왜냐하면 친구가 갔었던 곳이 창곤의 동생이 운석을 발견했던 지점에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모임이 끝나고 친구들과 헤어진 후 그는 정보부에 있는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일본인 조직폭력배가 대거 한국으로 들어왔다는 풍문이 들리는데 사실인가 여부와 사실이라면 그들이 무슨 목적으로 입국한 것인지 거꾸로 슬그머니 운을 떠보았다.
선배는 그런 건 어디에서 주어 들었냐면서 쓸데없는 유언비어 때문에 시간낭비 하지 말고 기자 본연의 임무에나 더 신경 쓰라면서 핀잔을 해대었다. 한기자가 그럴 리 없는데 하면서 말꼬리를 흐리자 그제야 문득 생각난 듯 김포공항에 파견되어 있는 요원 한사람이 지나치듯 보고했던 일을 꺼냈다. 그는 입국하는 단체 관광객에 섞여 있는 남자들에게서 정보기관 사람 특유의 감각으로 평범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고 이들에 대한 신원을 자세히 파악해 본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신원에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고 모두가 단체관광객의 일원으로서 관광일정이나 숙소도 모두 동일하였다. 그래서 그저 일반관광객인 것을 너무 민감하게 보았다고 생각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기자는 이들이 바로 그들일 수도 있다는 직감이 팍 꽂혀왔다.
다그치듯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 얼마 전이었나를 물어보았다. 거의 일주일이 되어가고 있었는데 만일 그들과 친구가 보았다는 사람들이 동일하다면 단순한 관광객이 아님이 명백했다. 많은 시간을 들여 험한 강원도 산을 등산한다는 것은 단체 관광객들의 행태와는 너무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들은 등산을 빙자해서 병곤이 발견해냈다는 운석을 찾으러 온 무리들에 틀림없었다. 만일 창곤이 그곳에 다녀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운석 또한 찾지 못한다면 분명 창곤을 찾아 나설 것이었다. 목적은 당연지사 단 하나, 운석을 빼앗아 가는 일이다.
한기자는 선배에게 그 요원의 연락처를 알아내고 급하게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비번이라 쉬고 있었는데 급한 사안이라며 양해를 구했다. 그에게 선배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보았던 관광객들의 숙소로 함께 가서 과연 그들이 모두 그곳에 머물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줄 수 있겠느냐 물어보았다. 내키지 않는 듯 우물쭈물하다가 보통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는지 그들의 숙소인 호텔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와 만나 호텔에 확인해보니 당시 일본관광객들은 모두 이곳에 투숙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미심쩍었던 그들의 객실을 확인한 결과 그들이 계속 그곳에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아직 100%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목적이 무언지는 이제 거의 밝혀진 셈이었다. 상황을 파악한 요원은 본부에 연락하여 요원들을 급히 창곤의 사무실로 보내줄 것과 그곳을 경비할 전투경찰의 지원도 요청하였다. 신속히 조치를 끝낸 그들은 부랴부랴 창곤에게 달려갔다. 그때 창곤은 아내 서린과 함께 운석에서 외계 생물체의 존재를 막 발견해낸 참이었다. 자초지종을 몰랐기 때문에 때마침 헐레벌떡 한기자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들은 깜짝 놀랐다. 서린이 한기자에게 반갑게 인사하면서 ‘역시 한기자님은 다르시네요.’라고 그의 출현을 환영했다. 창곤도 마찬가지로 ‘어딜 가나 기자라는 것을 속이지는 못하는 구나’ 라는 생각에 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별다른 사단이 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한숨을 돌린 한기자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의아해하는 그들에게 위급했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 사이 뒤를 이어 정보부 요원들이 도착해서 건물 요소요소에 배치되었고 곧 이어 도착한 전투경찰들은 건물외곽은 물론 주변 건물들을 에워싸고 물셀 틈 없는 경비에 돌입하였다. 완전하게 안전이 확보되자 운석에서 발견된 괴생물체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었고 모두들 희대의 발견을 축하하였다. 이렇게 한기자 덕분으로 창곤은 위험을 모면할 수 있었고 이와 함께 염빙바이러스라는 외계 생물체의 발견도 발표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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