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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몽풍삼매(夢風三梅) (제1회)

by 허슬똑띠 2022.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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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는 자와 쫓기는 자


고도엠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가온의 연락을 받은 제이슨은 그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달래주고 자신도 모처럼의 여유를 갖기 위해 함께 ‘칵테일 앤 와인’바를 찾았다. 두 사람은 스탠드에 앉아서 가온이 평상시 좋아하는 브랜디 벅(Brandy Buck)을 함께 주문했다. 칵테일을 마시면서 한동안 조용히 대화를 나누다가 제이슨이 가온에게 잔을 들어 건배하며 대충 마시고 들어가서 쉬라고 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확인해봐야 할 정보가 있다면서 일어섰다. 나가던 제이슨이 입구에서 누군가와 마주치는 바람에 도로 안으로 들어와 홀의 좌석에 앉았다. 그러나 가온에게는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가온은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곳은 바라보지 않고 모르는 척 칵테일을 음미하며 마침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굼베이 댄스 밴드(Goombay Dance Band)의 'Sun of Jamaica‘ 노랫말을 속으로 따라 불렀다. ’The dreams of Malaika. Our love is my sweet memory‘ 그러나 'One day I'll return and then I'll stay forever‘란 랩 가사에서 그는 목이 메어 더 이상 따라 할 수가 없었다. 그 노래가 갑자기 어릴 적 헤어졌던 아이의 생각이 떠오르도록 했지만 이제 영원히 만나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과 마주 앉아 잠시 얘기하던 제이슨이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갔다. 갑자기 우울해지고 불안해졌다. 그러나 밖으로 나간 제이슨으로부터 별다른 연락은 없었기 때문에 그가 사업상 아는 사람이었나 보다 치부하고 말았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어 이제 일어서자고 하며 마시던 잔을 그대로 들이키려 할 찰라 누군가 바로 옆에 앉았다. 가온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칵테일을 들이켰다.
“웬 감상에 그리도 젖어 있나? 자네는 그런 일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순수함은 잃지 않은 것 같구만.”
그와 똑 같은 칵테일을 시키고 난 그 사람은 마치 아는 사람을 대하듯 중얼거렸다. 괜히 뜨끔해져 그 신사를 곁눈으로 보았다. 자세하지는 않으나 중년의 중후한 멋을 풍기는 사람이었다. 어느 곳에서인가 본 듯도 했다. 그러나 확신은 없었다. 이내 평상심을 되찾고 모르쇠 했다.
“그런데 말이야,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별로 유쾌하지만은 않지. 당연한 거지. 아마 나 같아도 그럴 걸?”
다시 혼잣말처럼 나지막하게 뇌까렸다. 가온은 그 신사를 바라보지 않고 추가로 주문한 칵테일을 묵묵하게 들이켰다. 점차 마시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만큼 그 신사의 말이 알게 모르게 그의 마음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는 증거였다. 가온의 묵묵부답에 전혀 괘념치 않는다는 듯 신사는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일어났다. 오늘 자신이 할 일은 다 했다는 태도였다. 바텐더에게 돈을 지불하고 나가기 전 가온 앞에 명함을 놓았다. 그것에는 신경 쓰지 않고, 나가는 신사의 뒷모습을 흘낏 바라보던 그의 등골로 얼음장보다 더한 냉기가 스쳐지나가는 것 같아 순간 아찔해졌다. 마치 킬러를 추적하는 그림자 스타일의 추적자와도 같은 이미지가 스쳐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가온은 명함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탁자에 올려놓았다. 방안을 서성거리며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보다 명함을 보았다. 거기에는 미국 LA에 위치한 벤자민 상사의 제이슨이라고 적혀있었다.
‘아니 이게 뭐야? 제이슨아저씨 명함이잖아?’
다급하게 제이슨에게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자 두려움이 더욱 거세졌다. 바에서 나가다 만나 들어왔던 사람들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나 제대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모습은 아지랑이 속에서 흔들리는 것처럼 명확하지 않았다. 다만 스탠드 옆자리에 잠시 왔다 간 사람은 그 중 한 명임이 틀림없었다.
‘혹시 제이슨 아저씨도 당한 것인가?’
다시 싸늘한 칼바람이 낯을 스치고 지나는 듯 했다.
‘아니야! 그 아저씨가 그리 쉽게 당할 분은 아니잖아? 아니 어쩌면 상대를 놀리느라 그 명함을 주었는지도 모르지..’
혼잣말로 불안감을 털어버리며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12시가 다 되어서 그의 불안감을 증폭이나 시키듯 전화벨이 울렸다. 그러나 반갑게도 제이슨의 전화였다.
“아저씨가 나가시고 난 뒤 웬 신사가 아저씨 명함을 주고 갔어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이유를 모르니 불안하기 짝이 없더라고요.”
“그 양반은 마고도경감이야. 자네가 저번에 얘기 했잖아. 김의 보석함 사건 수사한다고 말이야. 오늘 친구와 간단히 한잔 하러 들렀다는 거야. 그 집이 단골이었다는 걸 전혀 몰랐어.”
제이슨은 웃으면서 아무 것도 아닌 듯 말했으나 가온은 놀라움을 급할 수 없었다.
“와~ 그래요? 그런데요, 그 사람인지 분명치는 않으나 아저씨가 나가고 난 뒤 저에게 왔던 사람이 바로 마경감이 아닌가 싶네요.”
가온은 불안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그가 했던 행동과 말에 대해 설명했다. 제이슨은 잠시 묵묵히 있더니 자기의 의견을 말했다.
“자네로부터 마경감이 김중훈 사건 수사를 시작했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 실수한 점은 없는 가 다시 점검해 보았네. 이에 대한 대처를 한다고는 했지만 워낙 명민한 수사관이기 때문에 말이지. 마경감이 김의 집 지하실을 보고나서 범행 방법에 대한 감은 잡았을 것이네. 그리고 내 명의로 빌렸었던 집 위치는 물론 범행에 가담한 인물이 두 사람이라는 것도 파악했을 테지. 그러나 우리가 빌렸던 집에 가서 막혔을 거야.”
“그런데 어떻게 저란 걸 알고 다가왔을까요?”
“자네에게 마경감이 갔던 건 말이지, 마경감이 바에 들어오기 직전 외부에서 내가 가온 자네와 함께 앉아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야. 그 때 범행에 가담했던 사람이 둘 이었다는 것을 떠올린 거지. 그래서 자네가 공범일 수도 있다고 보고 슬쩍 떠본 것에 지나지 않아. 그러니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다네. 다만 그의 눈에 띤 이상 각별히 조심하여야할 것이야.”
“아저씨가 마경감 일행하고 마주치고 인사하셨잖아요? 벌써부터 알고 계셨던 거 아니어요?”
“음 그럴 만한 인연이 좀 있어. 나중에 차차 알게 될 거야.”
이 말과 함께 제이슨은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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