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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몽풍삼매(夢風三梅) (제2회)

by 허슬똑띠 2022.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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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의  회상

 

다음 날 아침 마고도 경감은 서린경위를 불러서 휴대폰으로 몰래 찍어온 유가온의 사진을 그녀의 휴대폰에 전송해주었다. 속으로 역시 고도엠이구나라고 감탄하며 사진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마경감은 그를 철저하게 감시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는 이미 가온의 거처까지 파악해놓은 상태였다. 심증은 가나 직접적인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게다가 그를 슬쩍 떠본 결과 찜찜한 표정을 짓는 것으로 보아 확신이 들었다. 또한 그가 유이든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은 한신과 유이든과도 연계가 되는데 이것으로 세 개의 매화문양 펜더트의 주인공들은 다 밝혀진 셈이었다. 단 하나의 주인공은 심증은 가지만 아직 확증을 잡지는 못했지만. 마경감은 가온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보았겠지만 도피하리라고 보지는 않았다. 제이슨이 아직 서울에 있고 또한 자기가 그를 부처님 손바닥 안 들여다보듯 하리라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신사를 만나고 난 뒤부터 가온은 불안한 마음이 갈수록 증폭되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제이슨이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미 그는 마경감의 손바닥에서 노는 신세가 되었음에 틀림없었다. 예전에는 이와 같은 경고음으로 고통 받은 적은 없었는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무진 애를 써보았지만 편치 않은 마음과 초조함은 쉽게 누그러뜨려지지 않았다. 제이슨 아저씨는 비즈니스로 바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기 때문에 자주 대면하지 못하였으므로 헌트가 곁에 없다는 사실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문득 그의 말이 떠올랐다. 안전한 항해를 위해서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으니 바로 항상 마음속의 경고등을 켜놓고 지내라는 것이었다. 그 말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번쩍 떴다. 입구 한편에 설치한 경보장치의 흐릿한 불빛이 보이자 다소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러자 헌트에 대한 그리움으로 어둠 속에서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성장기 사건이 뉴스에 나오는 바람에 가람은 성장기가 고의로 아버지를 죽인 사실과 할머니를 죽인 범인이 그가 유착하고 있던 마약조직원이었던 것을 알게 되고 분노했다. 그는 할머니의 집을 떠나온 뒤로 나름대로 지적 섭렵을 해가며 다양한 세상경험을 해왔다. 이를 통하여 어두운 세계의 실상을 웬만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세계에서 친분을 쌓아온 사람들을 통하여 어렵사리 조직원들의 신분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당시 겨우 16세였지만 그 또래보다 성숙해보였고 체격도 꽤 컸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배웠던 무술을 계속 연마해 왔기 때문에 웬만한 성인 남자는 자신 있게 해치울 수 있었다. 그는 할머니의 원수를 갚기로 결심했다. 수소문 끝에 당사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들도 뉴스에서 경찰들이 곧바로 자신들을 옭죄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각자 도피하느라 정신없었다. 가람은 그에게 슬며시 접근하여 외진 곳으로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이 때 헌트와 제임스도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나가는 조직원들을 차단하기 위해 이들을 쫓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직 청소년 티를 벗지 못한 청년 하나가 나타나더니 이 중 한명과 함께 으슥한 곳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청년도 그와 한패로 생각했었으나 그들을 쫓아가보니 청년과 조직원이 격투를 벌이고 있었다. 서로 만만치 않은 대결이었다. 시간이 가도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조직원이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녀석이 안 되겠다 싶었는지 단도를 빼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으나 무기방어에는 허점을 보여 몇 군데 부상을 입었다. 그 때 찢어진 셔츠 사이로 반짝거리는 게 슬쩍 보였다. 그것을 본 순간 깜짝 놀란 두 사람은 안 되겠다 싶었다. 즉시 그들 앞에 나타나서 권총을 각각에게 겨누고 무릎을 꿇도록 했다. 두 사람은 엉뚱하게 나타난 그들을 보고 놀랐다. 조직원은 경찰로 알고 체념한 듯 시키는 대로 했다.

제이슨이 그에게 수갑을 채웠다. 그러나 청년은 조직원을 노려보며 계속 씩씩댔다. 희미하게나마 그의 눈은 분노로 충혈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자네의 마음은 잘 아네. 하지만 이 친구를 죽인다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살아오시겠나? 이만큼 했으면 할 만큼 한 것이고 죄 값은 감옥에 들어가서 받도록 하는 게 어떻겠나?” 헌트가 조용히 설득했다. 조직원과 청년 모두 이 말에 놀란 듯 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이 일은 나 개인적인 일이니 상관하지 마쇼! 그동안 기다려왔던 복수의 기회를 맞았는데 훼방꾼이 나타나다니.. 이.. 이건 말도 안 돼!” 외침과 함께 청년은 흥분을 참지 못하고 조직원에게 달려들었다. 헌트가 그를 잡고 손목을 세게 누르자 당황한 청년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도대체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당신들은 누구야?” 그러면서도 그는 진정하지 못하고 외쳐댔다. “이 놈은 저 길가 쪽 가로등 기둥에 매어달고 자네는 우리와 함께 가지. 가면서 모든 걸 얘기 함세.” 헌트가 청년에게 다가가 아까 만 졌던 손목을 다시 누르자 그는 한숨을 크게 쉬며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헌트 말에 수긍하면서 진정했다.

헌트의 거처로 들어와 자리에 앉아 잠시 두 사람은 지긋이 가람의 모습과 그가 목에 걸고 있는 펜던트를 바라보았다. 영문을 몰라 그들을 번갈아 보던 가람에게 헌트가 떠보듯 물었다. “우리는 흔히 선하다, 악하다 이런 표현을 자주 쓰지. 자네는 이런 이분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갑작스러운 엉뚱한 질문에 잠시 당혹하던 가온은 담담하게 자기의 주장을 폈다. “선과 악이라는 개념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잣대에 따른 것이지 않나요? 그 잣대라는 건, 바로 판단의 기준일 거고요. 이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선과 악이라는 의미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을 겁니다. 바로 위선과 위악이지요. 예를 든다면 성장기 같은 사람은 선의 부류에 속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지요. 위선을 가장하여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던 거거든요. 이런 예를 본다면 단지 외견적으로 보이는 상황만으로 간단히 판단하는, 편협하고 아전인수적인 이분법은 오히려 사람에게 죄책감이나 핍박감만 가져오기만 한다고 봅니다.” 두 사람은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가온이 당당하게 펼치는 뜻밖의 논리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래, 선과 악은 항상 상대적으로 평가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악(絶對惡)이란 없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도 있지. 하지만 우리는 이런 것을 절대악이라 인식한다네. 즉, 위선을 가장하여 아무런 죄책감 없이 당당하게 죄악을 저지르면서 금권과 평안함을 추구하는 것, 더 나아가 막판에 악행이 드러나면 뉘우침 없이 뻔뻔스럽게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는 그런 행태를 말이지. 이런 절대악은 반드시 단죄되어만 선과 악을 구분하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네.”

 제이슨의 이 말을 헌트가 이어받았다. “사회정의로 교묘하게 포장된 특정집단의 이익을 절대선이라 내세우기도 하는데.. 그러나 이것은 상당부분 의도적인 위선을 가장하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절대선으로 느껴지지 못할 때가 많아. 그러다 보니 이에 저항하는 것이 과연 악인가라는 의문부호는 항상 따라다니지.” “이런 모순들을 타파하고자 하는 게 자네 아버지를 포함한 우리 세 사람의 생각이었지. 비록 우리의 힘이 미약하지만 말이지. 또 사람들의 의식이 우리와 동떨어져 있고 이런 우리의 사고가 매우 불순하다고 단정 짓는다 해도 말이야.” “맞아! 그렇게 때문에 우리의 사고방식을 불순하게 받아들이려는 자들의 위협은 간과할 수 없는 필연적인 위험이지. 그렇다고 히트맨이라든가 자칼 같은 킬러친구들을 닮을 수는 없지 않겠나? 다만 우리가 지향하는 삶을 위해서 그건 반드시 극복할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반면에 - 표현이 적절한 건지 모르겠지만 - 짜릿한 긴장감을 주는 청량제로 작용한다고 여기면 그뿐이라네. 바다는 잔잔한 평온함도 있지만 가끔 폭풍우가 거칠게 몰아치는데.. 이런 것이 있어야 오히려 제 맛 아니겠나?” “글쎄요? 저는 그동안 그런 것까지 느낄 겨를이 없었거든요. 아직 어리기도 했지만 정신없이 부닥치며 살아야 했기 때문에요.” 이 말과 함께 가온이 한숨을 쉬었다. “괜찮아! 이제부터는 차차 살려나갈 수 있어.. 어쨌거나 무엇보다도 우리 가람의 의식이 의외로 상당히 깨어있다는 게 무척이나 고무적인데? 참 그건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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