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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로즈파피(Rosepoppy) (제 18회)

by 허슬똑띠 2022.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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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람기자의 알리바이

 

자원식물학은 생명과학, 특히 식물학분야의 응용영역에 해당한다. 예전에는 생물학분야보다도 농학 분야에 전문화되었었으나 최근에는 기초와 응용영역을 서로 통합하여 다루는 경향으로 변해왔다. 이와 같은 추세에 초점을 맞추어 농학부문에 한정하지 않고 훨씬 폭을 넓혀 새로운 자원을 개발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프로젝터에서 뿜어대는 화상과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연구소소장은 차분히 운을 뗐다. 소장이 그런 개념을 최대한 적용시켜 기획했다고 하자 화면은 양귀비가 흔들거리는 동영상으로 변했다. 그는 포인터로 화면을 가리켰다.

“첫 번째 것은 여기 보시는 바와 같이 아편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양귀비입니다. 양귀비라 해서 모두 이 성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관상용이나 씨앗을 식용유로 사용하는 개양귀비에는 폐질환이나 류머티즘을 치료하는 약효는 있어도 아편성분은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 금번 연구에는 그걸 대상으로 하는 건가요?” 남회장이 갸우뚱하며 물었다. “아닙니다. 우리가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은 개양귀비가 아닌 진성 품종입니다. 양귀비꽃이 열매를 맺은 후 익지 않은 껍질에 흠집을 내면 액이 흘러나옵니다. 그 속에는 모르핀 · 코데인 · 데바인 등 약 25종의 알칼로이드가 함유되어 있습니다. 이 성분들은 진정이나 진통 · 마취 등의 기능성이 있으므로 약용으로 유용하게 쓸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역에서 자라나는데 흔히 마약류인 아편으로 제조되다 보니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법으로 재배를 금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꽃이기도 하고 의약품으로 요긴하게 쓸 수도 있는 데 그런 근거로 재배가 불가능하다는 게 안타깝군요.” 남회장은 그제야 신품종의 개발을 주문하게 된 속내를 우회적으로 밝혔다. “그 점을 참작하여 저희들은 일차적인 연구목표를 양귀비가 함유하고 있는 모르핀 성분, 소위 아편의 기본 구성인자에 극적인 변환을 주는데 두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근본 물질효과는 변함이 없는 변형된 모르핀이 생성될 뿐만 아니라 열매가 본디 것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성분을 갖게 됩니다. 재배를 금지하고 있는 현행 법망을 피할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그는 남회장의 진지한 시선을 읽으면서 의기양양해졌다. “나아가 완벽성을 기하기 위하여, 양귀비의 주성분을 아예 다른 식물에서 발현되도록 하고자 합니다. 저희들은 그 대상으로서 올랜더(Oleander)종을 선정했습니다.” 

바뀐 화면에는 화려한 올랜더 꽃들로 가득 찼다. “호~ 환상적인 계획이군요!” 남회장의 탄성으로 성소장의 목소리가 한결 고조됐다. 그는 이것을 선택한 연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첫째로 양귀비 못지않게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동시에 매혹적인 향을 소유하고 있어 관상용으로도 써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 이것의 주성분 배당체인 올랜드린(Oleandrin)과 글리코시드(Glycosides)라는 성분이 중독 증상을 초래하는데 소화기관에 구토, 현기증, 복통이나 설사 등을 일으킨다. 더욱이나 심장에 불규칙한 심장박동을 일으켜 의식불명에 빠지게 하고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이런 위험성은 있습니다만, 도리어 심장병이나 위장카타르, 신장염 등을 치료하는 데 쓰입니다. 바로 이점에 착안하여 그런 치료제의 원료로서 사용할 수 있게끔 한다는 점입니다. 요컨대 이것이 주 포인트입니다. 치명적인 식중독을 일으키는 보툴리눅스라는 독으로 보톡스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

“보툴리눅스로 보톡스를 만들어요?” 남회장이 재미있다는 듯 되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복통이나 설사뿐만 아니라 신체마비나 호흡장애를 일으키는 균으로 클로스트리듐 보툴리늄(Clostridium Botulinum)이라는 게 있는데 각기 다른 7개의 독소를 분비합니다. 엄청나게 치명적이죠. 이 중 A형이란 놈이 운동신경 말단에서 아세틸콜린의 분비를 방해하여 근육을 마비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를 정제하여 보툴리늄 톡신이라는 의약품 원료를, 최종적으로는 보톡스를 만듭니다.”

제대로 찾았다. 바로 보튤리늄이다. 그녀는 연구소에 전화를 걸어 은밀하게 이것을 입수했다. 소주 안주로 잘 이용되는 생선 통조림을 구입한 후 급속히 부패시켜 독을 배양시켰다. 그 다음 보튤리늄을 추가로 주입했다. 이것과 함께 소주를 사가지고 그를 방문하여 건네주었다. 그러면서 그에게 이런 가난에서 벗게 해줄 테니 전화 짓거리 하지 말고 며칠 만 기다리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진 그는 그녀가 전해주고 간 강한 독이 든 통조림을 안주삼아 술을 마시다가 식중독사한 것이다. 또한 그의 부탁을 받고 함께 사고사에 가담했던 그의 친구까지 가스누출을 가장하여 폭사시켰다.

제가람이 조용진을 방문하고 나오는 그날 저녁 보았던 남자는 다름 아닌 남민희였던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가람의 추리가 대부분 매우 적확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남민희의 행동거지를 나름 꿰뚫어 보았다는 점이다. 일기에 쓴 자발적인 고백 덕분에 제갈사장의 죽음에 대한 의문도 풀렸다. 제갈사장 죽음에 대한 복수를 위한 근거가 확실해졌고 복수의 대상은 남민희이다. 주연은 바로 제가람이다. 다만 심증은 가지만 이를 뒷받침할 물적 증거가 전혀 없다는 약점이 발목을 잡는다. 그래도 마고도는 지금까지의 수사 자료와 남민희 일기를 근거로 영장을 발부받아 제가람의 집안 수색에 들어갔다. 무기로 사용했을 만한 것이나 활용할 만한 것을 찾아보았으나 특이한 것은 없었다. 용의주도하기 이를 데 없는 제가람인지라 이미 완벽하게 처리했을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다음 일단 그를 용의자로 연행하여 취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첫째 저격 당일 그의 알리바이를 조사했으나 아무런 하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아침 일찍 부모님의 위패를 모신 봉안소에 갔던 것이 사실로 밝혀졌다. 정오쯤 집에 돌아온 것도, 그 이후 외출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주변 CCTV로 입증되었다. 더구나 남회장이 저격당한 바로 그 시각에도 집안에 있었다는 것이 간접적으로 증명이 되었다. 마트에 주문한 물품이 도착했는데 인터폰으로 샤워 중이니 문 앞에 두고 가라는 통화를 했음이 마트 배달원의 증언으로 확인되었다. 본인 역시 조용히 그렇다면서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으니 벽에 부딪칠 수밖에... 거짓말 탐지기로도 속수무책이었다. 마고도는 속으로 가람의 용의주도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그가 진짜 범인일까라는 의구심도 일었다.

다만 현재로서는 입증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 하나있었다. 가람이 저격시각을 전후해서 집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가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에는 어떤 식이든 작위가 개입되었을 개연성을 무시하지 못한다. 하필이면 마트직원이 방문할 즈음 샤워 중이었다는 것이 다소 부자연스러운 점이다. 이를 어떤 식으로 풀어야 할지 마고도는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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