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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인류리셋음모에 관한 보고서(제13회)

by 허슬똑띠 2022.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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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누보(idée nouveau)

 

아이들의 배필

 

어느새 겨울이 지나고 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따뜻한 봄기운을 맞이하며 정원을 걷던 중 폴라가 애들 배필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라온은 웃으면서 이제 두 살배기인 아이들 배필이라니 너무 빠른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폴라는 정색을 하면서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을 위해 사전에 배필을 정해서 교육을 시켜야 하지 않겠느냐 반문했다. 그녀는 이어서 그 배필들의 신상을 설명해주었다. 언제 그런 걸 조사했는지 놀랍기만 했다.

첫 번째 아이는 어느 개척교회 목사님의 외손녀였다. 그에게는 수양딸이 있었는데 이곳에 그림을 그리려 우연히 왔다가 그녀를 처음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진 한 젊은 화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라고 했다. 1년 전 목사의 딸이 임신 중일 때 폴라가 직접 찾아가 만나보고 설득했다고 했다. 이제 1살 쯤 되었고 매우 총명하며 이름은 운서라고 했다.

두 번째 아이는 영국의 여성과학자 딸로서 태어난 지 일년 가까이 되었다고 한다. 폴라는 그녀와 텔레파시를 통해 설득을 했으며 미래의 배필로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운서만큼 총명하며 이름은 소피아 이다.

세 번째는 남미의 원주민 딸이었다. 아주 특이한 아이였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우리아이들만큼이나 지능이 발달했다. 이미 말과 글을 다 익혀 책을 읽을 줄 알며 수리능력도 뛰어나다고 했다. 역시 아이의 부모와 이미 텔레파시로 교감을 했다. 그들의 삶이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에 딸아이를 잘 키우도록 그들에게 충분한 물질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다고 했다. 이름은 벨리아 이다.

 

설명을 다 듣고도 라온이 별 말이 없자 사전에 미리 얘기하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다소 남감한 표정을 지었다. 라온은 웃으면서 혼자만 고생하도록 한 것이 미안하기 때문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했지만 분위기는 다소 서먹해졌다.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 날 폴라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곳으로 드라이브가자고 제안했다. 차안에서 폴라는 라온에게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변치 않았느냐, 자기를 믿느냐,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느냐 등등 질문을 퍼부었다. 라온이 빙긋 웃으며 걱정 매어두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자기가 신이 되고 싶다고 했을 때 헤라와 같은 여신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 역시 지키겠느냐고도 물었다. 라온은 그것도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세 명의 딸아이들에 관해 말씀드렸을 때 어림짐작하셨을 지도 몰라요. 이젠 라온님께 말씀드릴 시기가 된 것 같아요.”

라온의 다짐을 받은 폴라는 안심하면서 이렇게 운을 뗐다.

"라온님 이건 완전 창조해낸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데누보’랍니다."

폴라가 새삼스레 완벽한 저는 이라는 뜻으로 쓴 '완전'이라는 용어는 새로운 감회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뉴 아이디어라는 용어를 프랑스어로 말한 것 또한 그녀의 용어 사용에 대한 감각이 뛰어남을 새삼 느끼게 했다.

"이데누보?"

라온은 이 말을 따라했다. 음미하면서 그녀가 이 용어를 쓴 이유를 헤아려 보기 위함이었다. 홀로그램영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속마음을 슬쩍 보여주면서도 계속 미루어두었던 것은 그녀 자신도 고민이 많았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녀 말대로 그 때가 와서 바야흐로 그것을 말하려고 이렇게 운을 뗐을 것이다. 나아가 이데 즉 이데아는 발상이라든가 계획이라는 뜻 이외에도 '신념'이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음을 감안한다면 그녀는 의도적으로 복합적 의미를 갖고 있는 이 용어를 선택했을 터이다. 이를 감안해보면 이미 그녀는 자신이 그리고 있는 어떤 계획에 대한 의지가 엄청나게 견고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예상한 바와 유사한 본론으로 접근해 가는 그녀의 말이 그의 복잡한 의식을 헤집고 들어왔다.

(참고)

‘이데누보(idée nouveau)는 ‘new idea’라는 의미의 프랑스어임

 

먼저 그녀가 처음 만나 3일을 보낸 후 떠나고 난 뒤 그녀가 보낸 편지의 내용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라온님이 제게 아주 소중한 희망 두 가지를 주셨다는 거예요. 하나는 새로운 세계를 위한 방향이고 또 하나는 그러한 세상에서 꽃피울 배우자와 후손들이랍니다. 이것은 우주의 신께서 라온님과 저에게 주신 선물이라 여겨집니다. 이런 선물이 진정한 우리의 희망이 되도록 하기위해서 많은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당분간 라온님을 떠나있을 수밖에 없어요. 이런 연유를 이해해 주시고 나무라도 좋으니 저에 대한 사랑만은 버리지 말아주세요.’

이것을 읽을 당시에는 마지막 문구인 자기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말아달라는 폴라의 애원조 얘기에 필이 꽂혀 나머지는 크게 다가오지 않았었다. 하지만 당시 폴라는 분명 라온이 새로운 세계를 위한 방향을 주었고 그런 세상을 꽃피울 후손들을 주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더구나 후에 폴라는 그 아이들이 두 사람사이에서 태어났음을 계속 강조하지 않았던가? 어떻게 아이를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계속 함구하면서 말이다.

 

“제가 여신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했던 것은 표현상의 오류랍니다. 진정한 뜻은 이브누보를 가리키는 거예요.”

“이브누보? 이브는 신께서 만드신 최초의 여인인데 새로운 이브란 무엇을 뜻하는 건가요?”

라온이 잇달아 생소한 용어가 튀어 나오자 헷갈려 물었다.

“신세계를 이루려면 그것에 걸 맞는 새로운 이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이 이브누보가 되면서 또한 이브누보를 위해 신과 같은 역할도 필요하지요. 그런데요, 저 혼자서는 이런 일을 할 순 없답니다. 여기에는 라온님만이 해주실 수 있는 게 있어요. 저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필요한 라온님 영혼의 기를 불어넣어 주셔야 하거든요."

“이미 폴라님에게는 영혼의 기가 존재할 텐데 제 영혼의 기도 필요하다는 말씀인가요?”

라온은 이해가 가지 않아 물었다.

“네, 우리 두 사람의 기가 합쳐져야 제가 제대로 된 힘을 얻게 되기 때문이랍니다. 앞으로 라온님이 입맞춤으로 그것을 나누어주시면 된답니다.”

“아이들한테는요?"

“지금껏 해주셨던 것처럼 스킨십을 계속 해주시면 되어요. 그리고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라온님이 당연히 제 곁에 그리고 아이들 곁에 영원히 있어주시는 거예요.”

말을 마친 폴라는 운전대를 잡고 있는 라온의 한 손을 잡았다. 그 손을 통해 그의 심장박동을 느끼는 듯 잠시 그렇게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두 사람이 만났던 곳에 도착했다. 차를 길 한편에 새우고 강가에 내려가 봄기운을 받아 힘찬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이브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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