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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인류리셋음모에 관한 보고서(제25회)

by 허슬똑띠 2022.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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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온의 최후 진술

 

 

여기까지 진술한 라온은 요 며칠 사이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가슴에 맺힌 것들을 다 뱉어버리고 싶다고 했다. 마고도의 승낙을 받은 라온은 덤덤하게 털어놓았다.

나는 가끔 디지털기기의 소프트웨어 내용을 프로그래밍언어로 나타낸 설계도인 소스코드라는 개념에 평형우주의 이론을 혼합한 '소스코드'라는 영화의 장면들을 그리고는 했다. 이는 그냥 폴라의 계획이 마치 소스코드라는 설계도인 것처럼 여겨진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녀가 그리는 새로운 세계가 어느 정도 머릿속에 녹아내린 탓도 있겠다.

사고로 죽음에 이르렀다가 겨우 의식만 남아있던 콜터 대위는 그의 의식을 컴퓨터로 변환시킨 사람들로부터 임부를 부여받는다. 얼마 전 열차를 폭파한 범인을 찾아내는 일이다. 1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동안 열차 내에 있었을 범인을 찾기 위해 반복적으로 과거시간에 회귀한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임무를 완수한 그는 컴퓨터세계에서 완벽한 인간으로 재탄생되어 열차에서 만난 크리스티나라는 여인과 함께 폭파위기를 넘긴 열차를 타고 무사히 목적지인 시카고에 내리게 된다. 그 시카고는 아마도 원래의 시카고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새로이 열린 세계의 시카고일 지도 모른다. 이것은 우리 아이들 후손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 지구를 연상시켰다. 여기에서 가슴 찡한 대사 한 마디가 떠올랐는데 폴라가 내가 제기한 여러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어떠한 문제도 전혀 걱정할 것 없다면서 언급한 바로 그 말 "Everything is gonna be okay."이었다.

이와 함께 내가 말했던 자유의지에 대해 폴라가 이를 자신의 계획에 덧붙여 한 말도 떠오르고는 했다.

“성경에서 언급된, 신께서 아담과 이브에게 행한 시험과 그 결과를 두고 많은 격론이 있었는데 신학자들이 이렇게 결론지었노라 라온님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으셨죠? 신께서는 자신 스스로가 결정하는 자유의지를 시험한 것이고 아담과 이브는 그 시험에서 불합격했기 때문에 에덴에서 쫓겨난 것이라고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새로운 아담과 이브로서 새 천지창조를 직접 시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자유의지를 시험받을 필요 없이 우리의 본능적인 자유의지를 구사하면 되지 않겠어요?”

이렇게 말하는 아름답고 귀여운 폴라를 생각하면 정말로 그리워 어찌할 줄 모르겠다. 그녀가 인조인간이라는 것은 나에게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현재 우리는 인공지능을 개발하면서 머지않은 시일 내에 인간과 거의 닮은 인조인간의 출현도 예상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뜻하지 않게 지구상에 출현할 인조인간보다 수백 배나 진화한 인조인간을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인조인간이라고는 하지만 그녀는 완벽한 인간이었다.

그런데 잊고 있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인간과 완벽하게 닮은 피조물체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흥미진진하게 거론되어 왔다. 심지어 인조인간과 진짜 인간과의 구분이 쉽지 않음으로 해서 상대방이 진성인간인줄을 모른 채 사랑하게 되고 심지어 아이까지 갖게 된다는 상상을 뛰어넘는 이런 스타일의 소설도 있었다. 이런 픽션에서 등장하는 인간의 피조물은 완전 인간이나 진배없다. 인간과 거의 동등한 수준의 사고력을 지녔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물론 인간만이 소유하고 있던 일체의 감정들까지 가지고 있으니 사랑의 감정이야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들이 사랑을 느끼고 사랑의 바다에 빠지게 되면 아예 그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런 불상사도 발생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는가 보다. 그러다보니 진짜 인간과의 사랑에 실패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조차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존재의 등장이 머지않은 시대에 가능할 것인가? 우리보다 문명의 진화정도가 수백 배 이상인 그런 행성에서의 존재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외계인을 묘사하면서 좋은 존재보다, 또는 인간과 별도 닮지 않은 그런 형태가 주류를 이루어왔는데 이것이 온전히 합리적이라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엄청나게 진화했다한들 반드시 그들이 모습이 우리 인간과 엄청난 차이를 보일 까닭은 없지 않을까? 우리가 진화로 인하여 원숭이에서 지금의 호모사피엔스로 변화하는 데 불과 몇 백만년에 불과하였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보다 훨씬 더 오랜 세월이 흐르면 당연히 완전 다른 모습으로 변화해야한다는 논리는 전혀 합당하지 않는 듯하다. 정 진화론을 적용한다면 이상한 모습을 했던 존재들이 거꾸로 우리와 비슷한 형태로 진화할 수도 있지 아니할까? 그래서 그들이 만들어낸 피조물도 당연히 그들의 모습 즉 우리와 닮은 모습이지 않을까?

몰론 완벽한 인간복제의 형태라면 당연히 사랑의 감정은 물론 육체관계와 임신까지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이런 상황을 가정해 볼 때 어쩌면 우리인간도 먼 옛날 지구 생명체와 외계인의 발달된 안드로이드와 사이에서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너무도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신의 심술에 의해서 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혼혈일 가능성 역시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본다. 또 한 가지 지금까지 수많은 UFO 목격담과 외계인과 접촉했다는 가십과도 같은 기사들은 많이 있지만 정작 확실하게 외계인과 접촉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는 아직 없다. 따라서 내가 경험한 일들은 한낱 환상에 불과하다고 여길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 그들은 가끔 지구를 방문했을지도 모른다. 폴라가 직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들의 행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유를 누군가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들의 문명은 우리보다 최소한 말 그대로 최소한으로, 수천 년 이상 앞서 있을 수 있다. 당연히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술들을 갖추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미 미리감치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먼저 접근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엄청난 문명의 격차 때문이다. 즉 그들의 문명수순으로 볼 때 그들은 우리가 원숭이를 애완동물 여기듯 하는 것보다도 더 심하게 우리를 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어쩌다 영리한 침팬지를 사람처럼 길들여보지만 결국은 그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만약 그 격차가 인간과 개미차이라면 당연히 그들은 우리를 아주 하등한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접근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당장은 우리가 그들을 만날 수 없을 것이지만 여하튼 그들은 존재한다고 확신하며 따라서 폴라와 같은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말을 한 다음 라온은 조그만 소리로 황동규시인의 ‘즐거운 편지’라는 시를 읊조렸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지고 바람이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다.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너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언제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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