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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로즈파피(Rosepoppy) 다시보기(1회~3회)

by 허슬똑띠 2022.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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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베이(Rosebay)와 양귀비(Poppy)의 특성을 가진 여인의 이야기

 

H신문사 사옥 내부. 어느 사무실의 문이 열리자 한 남자가 사람의 왕래가 뜸한 복도로 나섰다. 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간 그는 사내 접견실로 들어섰다. 어제 전화로 약속했던 수사관과 면담하기 위해서이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의 얼굴표정에는 은근히 긴장감이 어리어있다. 수사관이 그를 직접 찾아오는 데에는 특별한 사유가 있기 때문은 아니란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통화 상으로는 그의 의중을 정확히 읽어낼 수 없어서 이다. 다만 며칠 전 에오스그룹회장의 피격사망사건과 관련하여 그 사건의 참고인으로 그를 지목했을 듯하기는 했다. 그 자체만으로도 대응태세를 철저하게 갖추어야 한다는 내면의 울림이 있었다.

약속한 시간보다 10분정도 빨리 도착하였기에 창가로 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마침 주차장에 막 주차한 차에서 정장차림의 한 남자가 내렸다. 그 모습이 수사관의 방문목적을 떠오르도록 했고 이어서 기억회로가 자동으로 그 날짜의 관련 신문기사에 가 닿았다.

‘금일 오후 4시경 에오스그룹 남민희 회장이 퇴근하던 중 저격을 받고 사망했다. 남회장이 사옥에서 나와 승용차에 다가가는 순간 한발의 총성이 울렸는데 그와 동시에 머리에 총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경찰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즉시 사옥 반경 1KM내의 모든 건물을 수색하여 조사하였으나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했다. 경찰은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계속 수사 중이다.’

그는 그날 휴가를 내고 부모님 위패를 모셔둔 봉안소에 갔었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두 달 전 위패를 안치했었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오랜 동안 부모님 모습을 떠올리지 못했다. 스스로가 부모 역할을 하면서 어려운 난관을 헤쳐 오느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이젠 부모님의 위패만이라도 모셔야겠다는 마음이 든 것이다. 예기치 못한 계기로 부모님 모습이 확연해지다 보니 그리움이 사무쳐와 자연스레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많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내린 결단에 대한 용서를 구했다. 당연히 부모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부모님과 마음의 대화를 나누었음에 위로를 삼고 홀가분하게 집으로 돌아왔었다.

생각을 멈추고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약속시간 2분전이었다. 동시에 문이 열리는 기척이 났다. 고개를 돌려 출입문 쪽을 바라보니 온화한 미소를 띈 중년의 남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저절로 긴장감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그에게 인사를 했다. 그가 손을 내밀자 악수를 하고 자리를 권하며 어떤 차를 마실 것인지 물었다. 수가관은 커피를 부탁했다. 그는 커피 두 잔을 만들어 와서 수사관을 마주보며 앉았다.

“바쁘실 텐데 시간을 내주어서 고맙습니다. 전화통화하면서 이미 통성명했던 마고도입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경제부 기자인 저는 제가람이라고 합니다.”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제가람은 어느새 포커페이스로 바뀌어 있었다.

“에오스그룹 남회장의 일은 익히 알고 있을 터이니 직접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합시다. 제기자를 찾은 이유는 짐작했겠지만 남회장과 관련한 단서를 추적하기 위해서입니다. 남회장은 대부분의 업무를 아들인 남정균사장에게 위임하였기 때문에 외부인을 잘 만나지 않은 성격이었어요. 만난다 해도 5분 이내의 짧은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특별 이벤트였기 때문인지 몰라도 상당한 시간을 냈더군요. 신문사에서 섭외를 잘 했기 때문이겠지요?”

마고도는 신문사를 치켜세웠다.

“저야 아직 경력이 짧아서 돌아가는 상황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하하 겸손의 말입니다. 능력이 특출하다고 편집장이 그러시던데요. 그건 그렇고... 남회장이 그 이후로는 외부인과의 약속이 없었던 것으로 그룹비서실에 확인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교롭게도 남회장이 세상을 뜨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외부인은 편집장과 제기자 두 분이 된 것이지요. 창립기념 이벤트로 그룹 전반에 대한 특집기사를 취재하기 위해서 대담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편집장과는 어제 이미 면담을 끝냈는데 특별한 것은 없었다고 하더군요. 제기자는 혹시 사건과 연계할 만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알아보려합니다. 더불어서 비서실 직원의 말로는 그 뒤로 제기자가 한 번 더 남회장을 방문하였다고 하는 데 무슨 사유가 있었는지도 듣고자 합니다.”

제가람은 그가 말을 끝내자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람은 저자이 기자로 생활하게 된 경위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전자회사에 취업하여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회사에 취재차 방문했던 선배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는 지금의 신문사에서 상당한 경력을 쌓고 있었는데 얼마 후 기자모집이 있을 예정이니 한번 응시해보라고 권유했다. 자신의 전공과 거리가 있어 망설이자 들어오기만 하면 자기가 밀어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꼭 응시하라고 했다. 그래서 결국 이 신문사에 들어오게 되었다. 선배는 학창시절부터 가람의 뛰어난 능력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하면서 열심히 해보라고 했다. 가람이 느끼기에 아마도 그의 후계자로 키울 요량으로 적극 끌어들인 것 같았다. 가람은 성심껏 일에 임했지만 그 동안 가지고 있었던 이미지와 많이 달랐다. 그뿐만이 아니라 겉으로 보는 것과 사뭇 이율배반적인 언론미디어의 이면을 알고 실망감이 커져가고 있었다.

인터뷰 바로 직전 수출경쟁력을 떨어트리고 있는 원화 강세에 대한 원인과 이에 대한 대응책과 관련해서 모 대학 교수와의 인터뷰를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편집장의 호출이 있었다. 에오스그룹 창립기념 특집기사를 준비 중인데 이를 담당할 기자가 갑작스레 다른 신문사로 이직하는 바람에 대타가 필요하다고 했다. 경력이 다소 일천한 그가 선택된 것은 선배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편집장은 그런 점을 우려해서인지 단단히 준비할 것을 주문했다. 그래서 뜻하지 않게 인터뷰를 보좌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전반적인 취재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룹에 대한 세부적인 현황과 남회장의 신상에 대해 조사했다. 이것을 바탕으로 세부적인 대담의 진행방향을 정하기 위함이다.

사전 조사과정에서 남회장이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침착한 성격의 그였지만 자신도 모르게 꽤나 호기심이 일었다. 그래서 인터뷰 당일 약간 들 뜬 기분으로 사옥을 방문했다. 비서의 안내로 회장실 내부로 들어갔다.

사무실 안은 선입견과 다르게 과히 넓지 않았다. 책상에서 서류를 보고 있던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짓으로 응접탁자를 가리켰다. 다른 직원이 그 자리에 동석할 수도 있으리라 보았으나 비서가 원하는 차에 대한 주문을 받고 가벼운 목례와 함께 방에서 나가도록 별다른 말은 없었다. 사진에서 보았던 것보다, 소문으로 듣던 것 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미끈한 외모였다. 단정하게 뒤로 묶어 올린 흑단 같은 까만 머리는 외모와 잘 어울렸다. 특히 가늘고 초승달같이 길게 굽어진 아름다운 눈썹은 그녀의 매력을 있는 대로 내뿜고 있었다. 나이는 그녀와 아무 관계가 없는 듯 젊은 기운과 건강미가 넘쳤다. 가람은 그럴 만 하겠지 했다. 국내외에서 소문난 미인 뺨치는데다가 많은 돈을 들여 정성껏 치장했을 것이니 미모가 한층 돋보이는 것은 당연지사 이지 않겠는가? 게다가 보통 사람들은 어림없을 그런 명품으로 치장하였을 것이니 조그만 왕국의 왕비나 공주에 버금가는 느낌을 주는 것 역시 기이할 것 하나도 없을 터였다. 하나 그녀가 오느라고 수고했다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면서 그들과 마주앉을 때 자세히 보니 그의 생각은 아주 빗나갔다. 그녀는 그런 것 없이도 생김생김 자체만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아닙니다. 바쁘실 텐데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사람도 최대한 예우를 갖춰 인사하면서 편집장이 감탄의 말을 덧붙였다.

“그룹호칭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새벽의 여신 에오스를 의미하는 것 같은데, 회장님을 이렇게 가까이서 뵈니 그 의미가 더할 나위 없이 딱 들어맞는 것 같네요.”

“호호호, 그래요? 그 말 칭찬으로 받아들이겠어요. 에오스에는 이외에도 다른 의미가 있답니다. 바로 Empire Of Sunrise 이지요.”

그녀의 말투는 외모답게 미려했으며 은은한 치자 꽃향기를 풍기는 듯 했다. 야릇한 표정도 그렸는데 마치 가람을 향한 듯해서 가람은 적지 않게 놀랐다.

“해 뜨는 새벽의 제국이라, 그것도 꽤 멋있네요. 새벽의 여신과도 기막히게 어울리고 말입니다.”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잡히자 편집장이 본격적인 대담을 시작하였다. 그룹 발전사와 겸사해서 그에 대한 비화, 무엇보다도 남고문의 개인적 것을 중심으로 해서 말해줄 것을 요청했다.

"시작은… 남편과의 결혼이었지요. 뜻하지 않은 사고로 돌아가셨지만…“

차분하게 한 마디하고 나서 잠시 뜸을 들이다가 아주 유려한 말투로 설명을 시작했다. 가람은 예상했던 것보다 상당히 이지적이라 느꼈다.

‘처녀가 나이든 이혼남과 결혼하니 말들이 많았다. 팔자 고치자고 그런 게 아니냐는 빈정댐이라고나 할까. 누가 뭐래도 신경 안 썼다. 둘이 합심해서 회사를 키워나가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쑤군거림이 쏙 들어갔다. 사람들이란 본인에게 이익이 돌아가면 헤헤거리게 마련이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성장에 따른 혜택이 돌아가니까.’

마침 정영길이 도마에 오른 김에 편집장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가 벌인 살인사건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녀는 한심한 듯 혀를 쯧쯧 차더니 신문기사에 나온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하면서 대충 넘어갔다. 내막에 대한 자세한 해명이 뒤따를 것 같지 같아 화제를 돌렸다. 모 연구원에서 알아보니 정사장 사후 사세가 한층 확장되었던데 특별한 요인이 있는지 물었다.

"제가 재주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운이 좋았던 거지요.“

그녀는 의외로 겸손해 했다. 자신만만하고 남에게 뒤지는 것을 절대 용인하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들었던 터이라 그녀답지 않게 느껴졌다. 가람은 열심히 녹취하고 참고 할만한 것은 별도로 기록하느라 그녀에게 거의 눈길을 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간간히 느껴지는 그녀의 눈길이 그의 감정을 자극했다.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그녀가 그에게 관심을 두는 것 같아 거북스러웠다. 하지만 그녀의 뛰어난 미모가 묘하게 만들어낸 망상이라 치부하고 더욱 자신의 임무에만 몰두했다.

“알고 계실지 모르겠는데, 알짜배기 공기업을 M&A했던 게 오늘날의 우리가 되게 해준 초석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게다가 현 연구소도 대박이었지요. 연이 닿아선지 운이 좋았던 건지 어째든 인수에 성공했어요. 각종 시험설비가 빵빵했고 우수한 연구 인력이 풍부하다는 강점 탓에 인수전이 말할 수 없이 치열했었습니다. 그걸 인수하고 나니까 갖은 흑색 풍문이 난무하데요."

가람은 이 말의 속뜻을 다른 각도로 반추해보고 색다르게 해석해보았다. 즉 그런 치열한 인수로비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데는 그녀의 관능미가 으뜸효자 아니었겠느냐. 그녀가 지금도 시들지 않은 아름다움을 간직한 점으로 볼 때

더 젊었을 적에는 더할 나위없지 않았겠는가. 누구라도 쉽게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그녀를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가람의 의중이 어떠하든 아랑곳없이 말은 계속되었다. 당초 회사설립 취지인 종묘사업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했었는데 파이토엔지니어링으로 명칭을 바꾼 연구소가 많은 기여를 했다고 했다.

“그런 중요한 일은 경영자의 자세에 크게 좌우된다고 생각됩니다. 회장님의 경영철학에 대해 한 말씀해주시지요.”

남회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편집장이 부탁을 했다.

“경영자는 실무자가 할 일까지 해가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 즉 경영자는 자신이 해야 할 할 일을 명확히 알고 그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죠.”

그녀는 거침없이 답변했다. 기술적인 문제나 영업 등은 담당자에게 맡겨야한다는 것이다. 실제 그렇게 명확히 알고 있었으며 이런 마인드가 직원들에게 강하게 어필하여 그룹성장의 동력되었다고 인터뷰 후에 만난 기획실장이 증언했다.

경영학을 전공하였다고 해도 학교에서는 이와 같은 것을 가르친다는 말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그녀의 안목이 매우 뛰어나고 훌륭했음을 알 수 있었다. 천부적인 감각을 지닌 그녀가 직접 경영을 하면서 체득한 것이리라. 그녀는 공기업인수와 같은 중요한 일에는 직접 나섰는데 그녀의 방법이 특이했다. 인수관련 핵심인물을 알아 오도록 한 다음 직접 그 사람을 만났다. 모두들 그녀가 그를 설득하거나 비자금을 건넬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나는 당사자도 의례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단독으로 그를 특급호텔 레스토랑에서 만나 쉽게 접하지 못할 고급술을 대접하면서도 업무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하면서 상대방의 긴장을 풀게 하고 그녀와의 대화를 즐기게끔 했다. 그러면서 그녀의 무기인 외모와 야릇한 체향으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 이상으로 발전했는지는 일 수 없는 노릇이다. 나아가 그녀는 집으로 초대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가람은 인터뷰가 끝난 후에 당시의 담당자를 만나 진위여부를 확인했다. 그에 따르면 꼭 그녀가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라서기보다 진정한 사업가라고 느꼈다는 말만 했다. 남회장을 진정한 사업가라고 평하는 그의 말투로 봐서 그는 남회장의 독특한 행동에서 깊은 감명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상사를 설득하여 남회장측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리도록 했을 듯싶다. 편집장이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 다른 질문을 던졌다.

“말씀하신대로 그 기업을 인수함으로써 그룹의 성장동력이 한층 강화되었으리라 판단됩니다. 그러한 것 외에 달리 염두에 두신 점은 또 없으셨는지요?”

“기업이나 연구소를 인수 합병하는 것은 시간을 절약하면서 기술과 인재를 키우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인수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녀의 말에는 소신이 또렷했다. 달리 표현한다면 기업경영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전혀 예상치 못하게 놀랍게도 그녀는 아름다움 못지않게 기업가 정신도 투철했다.

그 뒤로는 그녀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하면서 전혀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신화에서 에오스는 아프로디테로부터 끊임없이 사랑에 목마르게 되는 저주를 받았다. 영원히 사랑을 갈구할 수밖에 없었던 에오스는 여러 명의 인간남자들을 사랑했는데, 대체로 에오스의 일방적인 납치로 비롯되어 늘 불행하게 끝났다고 한다.’

자신이 에오스와도 같은 아름다움을 지녔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에오스처럼 항상 사랑에 실패했음을 한탄하는 것이지 모를 말이었다. 그녀의 개인 사생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알려진 것으로만 판단한다면 정영길사장이 사망한 이후 여태껏 독신으로 지내오고 있으리라는 점이다. 그녀가 이러한 말을 한 심적 배경을 생각해보다가 가람은 인터뷰를 위한 준비를 하면서 받았던 묘한 느낌을 떠올렸다.

그녀가 그룹성장의 주역이었음에도 그녀 프로필은 지나칠 정도로 간단했다. 정사장과 결혼했던 것, 그의 사망이후 회사를 직접 경영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공기업인수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이야기 정도였다. 출생 및 가족과 관련한 것이라든가 학력이나 취미 같은 것에 대한 내용은 전무했다. 인터뷰할 때 그녀는 얼버무렸으나 남편이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서 자살했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다. 묘한 점은 어머니의 성씨를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재 사장으로 있는 남정균은 정사장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아니었다. 이는 후에 회사의 임원으로부터 들은 증언인데 그는 남회장의 외삼촌으로부터 입양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입양시기가 공교롭게도 정사장이 사망한 이후였다. 현재 그녀는 아들인 남정균사장에게 거의 모든 업무를 위임하기는 하였으나 실제는 계속 결정권한을 쥐고 있다. 그룹 발전의 주요 원동력도 아직은 그녀 자체라고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성장 동력 또한 그녀였던 것처럼. 어쨌든 남편의 사망으로 그녀가 회사의 경영권을 이어받게 되었고 그 이후 회사는 무섭게 사세확장을 하게 되었다. 더구나 경쟁이 매우 치열했던 알짜배기 공기업 인수 경쟁에서 승리하고 나서는 지금의 그룹규모를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 회사 임원들은 다들 무모하다고 반대했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그녀의 권한은 더욱 공고해졌으며 그룹은 지금도 순항을 거듭하고 있다. 요정도의 이야기는 그녀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전혀 다를 바 없었다.

한데 이상과 같은 내용을 감안한다면 그녀가 죽음을 당할 정도의 원한을 살만한 점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살인사건에 연루되었다가 자살한 남편의 전 부인이 앙심을 품었을 가능성은 있다. 비록 정영길이 바람둥이였다고 해도 탈 없이 가정을 꾸리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한데 그녀의 등장 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로 전 부인과 이혼하고 지금의 남회장과 결혼했으니 앙금이 쌓여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 또 하나 있다. 당초 이 회사는 남회장의 남편이었던 정영길이 제갈명이라는 사람과 동업했었다. 그녀가 회사로 오고 나서 일 년이 채 안되었을 때 동업자인 제갈명사장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점이다. 오비이락이겠지만 남회장 등장이후에 벌이진 일들에서 완전히 독립적인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전 조사를 하면서 이상하게 느꼈던 점이 몇 가지 더 있었다. 하지만 전 남편에 대한 것이라든지 동업자의 사망 등을 포함하여 그녀와 관련된 아리송한 일들은 대담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아 그대로 폐기하고 말았다.

남회장과의 인터뷰내용에 대한 설명에 이어 가람은 마고도가 궁금해 할 사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만일 남회장에게 원한을 가질 만한 사람이 있다면 조금 전에 말씀 드렸던 남편의 전부인일 수도 있겠으나 그 사람이 이번 일을 꾸밀 능력이나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다만 남회장이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란 점, 비록 60대가 코앞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그 매력은 엄청난 빛을 발하고 있다는 점으로 추측해본다면 남회장의 미모에 반하여 간절하게 구애를 하였으나 매몰차게 구애를 거절당해 한을 품었던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듭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뭐 중요한 단서가 될 그런 느낌은 아닙니다.”

“그것도 중요한 단서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그 뒤로 한 번 더 남회장을 취재하였다고 하는데 기사를 편집하는데 보완할 사항이 있어서였나요?”

“뭐 특별한 것은 아니었고요, 남사장과 관련한 내용을 보충하기 위해 그를 만나러 갔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남사장과의 대담이 끝난 뒤

남회장이 잠간 보자고 해서입니다.“

“무슨 얘기를 주고받았나요?”

“저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더니 저의 개인적인 신상에 대해 질문을 하더라고요. 어리둥절했지만 저는 고아출신이고 어렵게 공부하여 운 좋게 이런 자리에 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린 것이 끝이었습니다.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지만 입술의 움직임을 가지고 그냥 추측한 건데 ‘참 묘하네. 어쩜 그리도 그 분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지고 있을까?’ 이런 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좀 황당했지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남회장이 질문할 때 그리고 혼잣말을 할 때 강하게 느껴지는 체취였습니다. 처음 대담할 당시에는 전혀 느끼지 못한 것이었거든요. 마치 사람을 거세게 끌어들이는 느낌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우스운 얘기지만 그냥 품에 안기고 싶어지더군요. 혹시 남화장이 저를 유혹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조차 들 정도였습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그대로 넘어갈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렇지만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남회장 같은 사람이 뭐가 아쉬워 저 같은 사람에게 관심을 두겠느냐 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만에 하나 그게 사실이라 할지라도 저의 의지도 만만치 않습니다. 오랜 기간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단련해 왔기 때문이지요. 특이한 느낌이라면 이런 것 정도일 수 있겠네요.”

“하하, 같은 남자인 내가 봐도 제기자는 여자들로부터 엄청난 호감을 살 정도로 상당히 매력적이니 남회장이 거기에 반하지 않았을까요?”

“그럴 리가요...”

제가람은 마고도의가 추겨 세우자 씁쓰레한 미소로 말끝을 흐렸다.

“좋은 의견 잘 들었습니다. 헌데 그런 점 외엔 제기자도 생전의 남회장으로부터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니 이 사건이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별 도움을 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정사장 전 부인에 대한 건은 가능성이 없다고 해도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남회장의 주변 인물을 좀 더 조사해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협조해주어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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