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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로즈파피(Rosepoppy) 다시보기(7회~9회)

by 허슬똑띠 2022.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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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베이와 양귀비

로즈베이(Rosebay)와 양귀비(Poppy)의 특성을 가진 여인의 이야기

 

두 사람은 마고도에게 조용진조사에서 제가람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방문이 있었음을 보고했다. 마고도는 가람에게 실제 조용진을 방문했었는지 여부와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사무실로 오도록 했다.

“조용진이라는 사람 알고 있지요?”

마고도는 가람이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 주시하면서 물었다. 가람은 질문을 받았을 때 머뭇거림 없이 대답했다.

“그는 이제 저세상사람인데도 찾아내셨네요. 한 달 전쯤인가 남회장과 관련한 정보를 캐보려고 갔었습니다. 그런데 찾아간 날 아무런 소득이 없어 다음 날 다시 갔더니 식중독사했다고 하더라고요. 찜찜했지만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라고 여겨 그 사람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말을 하면서 가람은 조용진과 대면 당시를 떠올리고 있었다.

조용진이라는 존재를 알아내고는 그를 어떻게 설득해야 적확한 정보를 캘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렸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재산을 되찾으려는 사람으로부터 사건을 수임 받은 변호사를 사칭하기로 했다. 이번 소송 건에 제대로 도움을 주면 거금을 쥘 수 있다고 꼬드겨보기로 했다. 겨우 겨우 소재지를 파악한 뒤 그의 집을 방문했다. 산동네 한 구석에 자리 잡은 그의 집을 찾아냈다. 듬성듬성 구멍이 나있는 나무대문을 두드리자 삐거덕거리며 방문이 열렸다. 새치도 많고 나이도 꽤나 들어 보이는 꾀죄죄한 사내가 덥수룩한 머리를 내밀었다. ‘조용진씨 맞으시죠?’ 하자 누구냐고 되받았다. 재산반환소송 건을 맡은 변호사인데 알아볼 것이 있어 에오스팜의 전임 부회장 소개로 찾아왔다고 했다. 그는 갸웃하더니 잘못 찾아 왔다며 방문을 닫아버렸다.

냉큼 구멍가게로 달려가서 소주와 안주 등을 사들고 되돌아왔다. 대문 틈바구니로 손을 집어넣어 빗장을 풀고 들어가 방문 앞에 섰다.

“소주 좀 사왔습니다. 마시면서 얘기 좀 나누시죠. 요번 일이 잘만 되면 선생님에게도 한 몫 돌아갈 수 있어요.”

꾀어봤으나 묵묵부답이었다. 난감했지만 재촉하지 않았다. 봉투를 흔들어 병을 부딪치면서 현혹했다. 그의 몰골은 술에 찌들어 사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 약점을 건드리면 계속 참고 있기 힘들 것이리라. 그게 적중했다.

“허! 거 참 되게 귀찮은 사람 이고만. 낮잠도 못 자게 웬 난리야, 난리긴.”

투덜대면서도 마침내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오만가지 역겨운 잡냄새가 진동했다. 개의치 않고 태연히 입구에 덜퍼덕 주저앉아 봉투에서 소주와 안주를 내어놓았다. 작은 옷장 하나, 바닥에 깔린 요와 이불이 전 가산이었다. 구석에는 씻지도 않은 식기와 수저 나부랭이들이 아무렇게 널려 있었다. 가람은 소주병 마개를 따고 술을 잔에다 그득 부어 그에게 권했다. 그가 잔을 받자 다른 분들에게 듣기로는 큰 음식점을 운영한다고 들었었는데 웬일이냐며 거볍게 떠보았다. 그는 술 한 잔을 단번에 들이키고 나서 손으로 입을 쓰윽 훔치더니 씰룩댔다. 음식점이 잘 되어 돈이 쌓이니 주색잡기로 흥청망청하다가 고스란히 탕진했다. 그 뒤 집사람에게 이혼 당하여 빈털터리로 홀로 살고 있는 거 뻔히 보면서 괜한 소리를 한다고 핀잔을 주었다. 가람은 ‘그런 줄 미처 몰랐네요.’ 라며 공손히 대꾸했다. 최대한 그의 비위를 맞추어야 했다.

그는 맨 손으로 안주를 한 움큼 쥐어 입에 털어 넣고 우물거리며 웬일로 찾아왔느냐고 물었다. 가람은 정영길씨를 아느냐고 되물었다. 저승에 가있는 사람은 왜 들 먹이냐고 퇴박을 주었다. 가람은 그 사람이 제갈명사장의 재산을 넘겨받기 위해 사기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 밝혀졌다. 제갈명씨 먼 친척이 그 재산을 반환받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고 꾸며댔다. 말미에 당신이 적당한 역할을 해주면 적잖은 돈을 벌 수 있는 호재임을 강조했다. 그는 구미가 당기는 듯 했다. 뭐를 도와주면 되겠는지 물었다가 다음 말에 움칠하더니 그냥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제갈사장이 사망한 것은 정영길이 사고를 유도해서 그랬다고 증언만 해주면 된다고 했는데 이게 화근이었던 같았다. 가람은 그 낌새를 놓치지 않았다. 방금 전 어벌쩡했던 태도는 그에게 제갈명사장의 사고와 관련하여 꺼림칙한 그 무언가가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었다. 헌데 지나치게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낸 것은 아닌가? 다소 후회는 됐지만 끈덕지게 설득해나갔다. 게다가 한술 더 떠 남민희까지 끌어들였다. 정사장 부인이었던 남민희가 정영길을 종용했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말이다.

그는 방구들이 꺼지라 한숨을 내리 쉬더니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그 여잔 말도 못할 독종이야. 그래서 그만큼 승승장구하게 된 게지.”

“그래요? 지독스런 독종이라 한다면 그런 일을 벌일 만하지 않을까요?”

가람이 엇비슷하게 맞장구를 쳤으나 그는 대꾸 없이 혼잣말처럼 뇌까렸다.

“큰 보험회사에서 근무했었다고 해서 새파란 게 대리로 들어와 시끄러웠는데 말이야, 반년도 안 돼 과장으로 승진하더라고. 하긴 머리도 좋았고 일도 잘 한다는 소문이 자자하기는 했지. 헌데 그런 것 다 제쳐두고 빽이 든든하다는 것이 정평이었어.”

“빽이라니요?”

“나중에 그 여자가 남편으로 데리고 살았던 정영길이라는 멍충이었지.”

“멍충이라니요?”

“내가 보건 데 정영길이는 그 여자의 치마폭에서 놀아나는 좀생이에 불과했어. 그러니 멍충이 아니겠냐고?”

“네 그랬군요. 남자를 갖고 노는 여자라면 남민희가 웬만한 일은 다 처리할 수 있었겠네요?”

가람은 그녀와 모종의 거래가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우회해서 물어보았다. 망설이는듯해서 마른 침을 삼키며 기다렸다. 뜸 들이는가 싶더니 빗물에 덕지덕지 얼룩진 천정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답답하지만 기다려보았다. 재촉하려다 노파심이 그를 말렸다. 잘못하면 철저히 입을 닫치게 할 수도 있다. 이쯤에서 물러서기로 했다.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언행은 그와 남민희와의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음을 암시한다고 보았다. 여유를 갖고 끈질기게 설복시키다보면 변심하여 내막을 털어놓을 수 있으리라. 자작으로 술을 들이켜고 있는 그에게 모래 올 테니 그때까지 제의 수락여부를 결심하라고 하면서 그 집을 나섰다.

밖은 서서히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뿌연 빛 백열전구의 보안 등이 하나 둘 켜지고 있는 골목 언덕길을 내려와 도로변에 이르렀을 즈음이었다. 저 멀리서 호리호리한 체격의 사내가 쇼핑봉투를 들고 그 골목길로 향해오는 것이 보였다. 가벼운 등산복차림에 길쭉한 차양이 달린 모자를 푹 눌러썼다. 짙은 빛이 감도는 큰 안경을 쓰고 있는데다가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있어 가냘픈 톤의 어둠에서도 인상이 또렷하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관심을 거두고 그가 온 길 반대방향으로 가려는데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갸우뚱하며 돌아가서 다름없이 고개를 숙인 채 털레털레 언덕길을 오르고 있는 사내를 쳐다보았다. 그에게 가람이란 존재는 관심 밖인 듯 했다. 특별히 관심을 가질 만한 인물도 아닌데 괜한 짓을 했다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그 친구를 알아내 찾아가게 된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

마고도의 질문에 가람은 퍼뜩 현실로 돌아왔다.

“남민희 회장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다보니 제가 직접 나서서라도 찾아보자고 한 거죠. 그저 취재목적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굳이 덧붙인다면 남회장을 마지막으로 대면했던 사람으로서의 예의에서 이고요.”

“기자의 근성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조용진을 알아냈나요?”

“아무래도 회사사람들에게 확인해보면 작은 소스라도 건질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룹의 근간이 되었던 신명자원, 지금은 에오스팜이라는 사명으로 바뀌었지만, 그곳에서 초창기부터 오랜 동안 근무했던 사람들을 찾았죠. 대부분 퇴직한지 오래되어 소재를 알 수 없었는데 마침 최근에 임원으로 퇴직한 사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말을 하면서 가람은 그 당시를 회상했다. 사무실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에오스그룹 기사를 쓴 제가람 기자입니까?”

“네 그런데요, 실례지만 누구시죠?”

전혀 생소한 목소리에 경계심을 품고 물었다.

“난 에오스팜을 퇴직하고 나서 수목원을 운영하는 박원국이라고 합니다. 에오스그룹의 창립기념 특집기사를 보다가 기자의 이름이 제가람이란 것이 낯이 익어서 확인차 전화한 겁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그 사람으로부터 남민희와 관련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만나보고 싶다고 하자 상대방도 쾌히 승낙했다. 그래서 만날 약속을 했다. 카페에서 박원국이라는 사람과 대면했지만 가람은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는 잠시 가람을 뚜렷이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아버님을 똑 닮은 걸 보니 제가람군이 맞는 거 같네 그려!”

“이버님과요?”

“아주 어릴 때라 아버님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 것 같군. 그 당시에도 자네 는 아버님과 판박이로 닳았다고 했지.”

“네에 그렇군요. 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그런데 자네 이렇게 성장한 걸 보니 외삼촌댁에서 잘 지냈나 보네그려.”

이 말은 또 다른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고아원에 내팽개쳐졌던 날의 광경이 신기루처럼 펼쳐졌다. 엄마 아빠가 멀리 떠나가셔서 당분간 친구 분 댁에서 지내야 한다고 해서 당황스러웠지만 그대로 따랐다. 그런데 어느 날 외삼촌이라는 사람이 찾아오더니 이제부터 자기 집에서 살게 되었다고 했다. 집에 삼촌이라든가 이모라든가 하는 사람들이 찾아 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리둥절했다. 가기 싫어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아빠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말대로 따르라고 채근해서 짐을 꾸렸다. 그 사람이 재촉하는 대로 차에 타고 얼빠진 채 실려 갔는데 최종 도착지는 가정집이 아니었다. 생판 모르는 고아원이라는 데였다. 겁이 덜컥 나서 울며불며 버텨보았으나 구원의 손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곳에 끌려들어가서 보니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군대의 막사와 같은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올망졸망하게 모여 있던 아이들이 누군가하고 쳐다보았던 것 같다. 고아원 사람들이 끌고 다니며 이런저런 말을 해주었으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하는 어른들에게 집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울며불며 하소연해보았다.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아무도 그의 호소를 귀담아 들으려하지 않았을뿐더러 졸지에 고아가 되어버린 곤혹스러움에 그러는 것쯤으로 받아들이고는 했다. 깨달음 뒤에는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혈혈단신이라는 두려움만 넘실대었다. 그것은 지독한 괴로움과 외로움을 수반했었다. 시간이 흐르자 체념으로 변하면서 그곳에서의 일상에 적응하도록 해주었었다. 짜증스럽게 일그러져 보이긴 했으나 이곳이 내 운명이라면 순응하기로 했다.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은 너무나도 당찬 기개였다. 낮도깨비 같은 사람에 의해 창졸간에 삶의 터전이 뒤바뀌면서 어쩌면 알게 모르게 스스로 베이비시터가 되었는지 모른다.

“네... 외삼촌 덕분에 공부도 할 수 있었고 이렇게 기자까지 될 수 있었지요.”

가람은 박원국씨가 사실을 전혀 모르는데 구태여 아니라고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이렇게 대답했다.

“그나마 다행이네. 자네 부모님이 그렇게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었을 텐데...”

“저는 그저 부모님이 안 돌아오신다는 말만 들어서 그런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혹시 그 때 상황에 대해 아시는 것이 있으시나요?”

박원국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을 말해주었다. 부모님이 아버지 친구의 부친상 조문을 다녀오던 길이었다는 것. 길이 다소 험한데다 밤이었기 때문이라는 것. 굉장히 열정적이고 머리가 비상했는데 매우 안타깝기 이를 데 없었다는 것 등. 대부분은 남민희회장을 조사하면서 관련 기사를 찾아보았던 내용과 엇비슷한지라 다소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희망회로를 돌렸다.

“뜻밖에 아버님 지인을 만나 몰랐던 기억을 떠올려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부모님 교통사고와 관련해서 떠도는 소문은 없었나요. 직원들의 뒷담화라도요.”

가람의 표정에서 반가움이 식어가는 것을 느꼈던지라 고심하는 것 같던 그는 목소리를 낮추더니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운수반에 조용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제갈사장 사망 직후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는 술만 마시면 주사를 부렸고 항상 돈에 쪼들려 지내면서 직원들에게 손을 벌리기 일쑤여서 모두들 싫어했다. 그러던 그가 거액의 돈이 드는 큰 음식점을 차렸다는 소식이 퍼지자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가 로또에 맞았다는 소문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러다보니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라고 할 수는 있겠으나 그가 제갈사장교통사고와 관련이 있었다는 말이 돌았다고 했다.

박원국으로부터 주요한 정보를 들은 가람은 취재로 해서 안면이 있는 비서실 사람을 통해 조용진에 대한 이야기를 추가로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가끔 전화로 남회장을 찾았다고 한다. 그가 회사에서 근무했었다고는 하나 강산이 바뀌어도 한참이나 되었는데 세상물정을 너무 모른다고 생각했다. 무척 곤궁하기 짝이 없이 산다는 말은 들었지만. 다만 그가 남긴 말이 단순히 절박감의 표시만은 아닌 듯해서 남사장을 통해 회장에게 그런 사실이 있었음을 보고했다고 한다. 무슨 말이었는가 묻자 그는 웃으면서 남회장이 전화를 안 받으면 자기도 방법이 있다고 전하라는 뜻 모를 소리였다고 했다. 그는 이 말을 회사로 찾아와 깽판을 부리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자세한 정보를 입수한 가람은 그의 소재를 추적했다.

회상에서 벗어나 가람은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분을 만나 도움을 줄만한 것이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거기서 조용진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왠지 수상쩍게 여겨져 그를 추적해 보았던 거죠.”

“그 직원이 누구인가요?”

“죄송합니다만 정보제공자의 신상은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밝힐 수 없는 점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덤덤하게 말하는 제가람을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마고도는 면담을 끝냈다. 아쉬운 것은 이 경위와 오 경사가 수사한 내용이 제가람이 말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도 가람이 조용진과 나눈 대화내용이 구체화되었다는 점이 소득이라면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마고도는 남민희회장의 가족사항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세상에 드러난 것으로는 그녀의 의붓아버지가 집안 화재사고로 사망했다는 것뿐이었고 그녀의 어머니나 형제 존재여부 및 친인척 등에 대해서는 얼려진 바가 없었다. 그녀의 가족사항을 법적서류로 확인해본 결과 친부와 친모 역시 모두 사망하였고 형제자매 등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친부의 형제자매가 있는지 여부까지 조사했다. 소득이 있었다. 친모의 남동생 즉 그녀의 외삼촌이 생존하고 있었다. 이름은 공봉춘이었고 나이는 그녀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가 남회장을 방문했을 가능성이 있어 비서실 직원에게 물어보니 가끔 궁할 때면 찾아온다고 했다.

인적사항을 알아내어 그를 찾아갔다. 모 회사의 공장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는 수사관이 다녀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찾아왔다고 투덜댔다. 그를 찾아간 이 경위와 오 경사는 황당해서 인적사항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더니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인상착의를 물어보고 두 사람은 한방 맞은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제가람이 어느새 다녀간 것으로 보였다. 조용진 때는 변호사 행세를 하더니만 이번에는 수사관을 사칭했다.

“그 사람은 수사관이 아닙니다. 왜 그가 왔었는지 대강은 짐작합니다. 수고스럽지만 그에게 해준 대로 말해주십시오. 추가로 해줄 것이 있으면 더 좋겠구요.”

이 경위가 달래고 나서 재촉했다.

“나 원참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여하튼 조카 죽음 수사에 보탬이 된다고 하니 얘기 드리죠. 어느 날 저녁 일찍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남민희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평소엔 그다지 왕래가 없었는데 말이죠.“

이렇게 시작된 그의 이야기는 술술 이어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천지개벽하겠다. 이렇게 다 찾아오고. 웬일이냐?”

그녀는 누굴 만나러 가는데 차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핀잔을 주었다. 너는 주식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면서 차도 안 사냐고. 그러니 깜찍한 대답이 돌아왔다. 얼굴도 예뿐데 차까지 있는 걸 알면 뭇 사내들이 성가시게 달려 들까봐 그런다고 그럴싸한 이유를 댔다. 별 수 없이 차를 빌려주었는데 자정이 다 되도록 돌아오지 않아 사고를 일으켰을까봐 걱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웬 두 살배기 애를 데려와 당분간 맡아 달라고 하더란다. 생활비는 줄 테니...

차를 가지고 간 이유가 애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남자친구사이에서 태어난 애인데 남자가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데려온 것 같았다. 그녀는 그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 생활비는 꼬박꼬박 보내왔고 가끔 애를 데리고 놀이터를 가거나 밥을 사주거나 했는데 그런 날 애한테 물어보니 호텔같은 비싼 곳이었다고 한다.

“아이를 데려온 날을 기억하십니까?‘

이 경위가 제갈사장의 교통사고를 염두에 두고 물었다.

“뭐~ 기념일과 같은 특별한 날도 아니고 매일 쳇바퀴처럼 지내는 생활이다 보니 그날이 그날 같아 꼭 집어서 말을 못하겠네요. 늦은 봄날이었던 같기는 한테...”

“그 뒤로 아이를 어떻게 했나요?”

이 경위는 남회장이 남정균 사장을 입양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부러 물었다.

“아시다시피 지금 사장으로 있는 그 친구지요. 민희가 보험회사에서 작은 기업으로 옮겼다는 말을 듣고 기가 막혔죠. 혹시나 보험회사에서 일을 저지른 것 아닐까도 생각했었는데 그건 아니더라고요.”

“애를 데려가서 남회장 자신의 호적에 올린 것 같은데 혹시 그게 언젠지 기억나시나요?”

“민희가 그 회사로 간지 10년 가까이 지나서였어요. 그 회사 사장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애는 안 데려가느냐고 물었더니 당장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대화는 여기서 끝났다. 공봉춘을 만나고 돌아온 두 사람은 마고도에게 보고했다.

“이번에도 제가람이 다녀간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수사관을 사칭했더라고요. 좀 수상한 냄새를 풍깁니다. 단순히 취재목적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혹시 제갈사장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닌 가 싶은데요?”

이 경위가 갸웃거렸다.

“이 경위도 감이 잡히는 모양이군. 그런데 문제는 제가람이 그런 것을 캐내서 어떤 이득이 있겠는가 하는 점이지.”

마고도는 다시 가람을 불렀다.

"제기자는 사람을 잘도 찾아내더군요. 남회장 외삼촌인 공봉춘도 만난 것으로 아는데...“

“네 그렇습니다. 남회장이 외삼촌 애를 입양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보다 자세한 내용을 캐보기 위해 찾아갔었습니다.”

가람은 서슴없이 대답하고 공봉춘과의 사이에서 있었던 것을 죽 털어놓았다.

뜬금없이 기자가 찾아왔다면 공봉춘이 순순히 털어놓지 않을 것이라 판단해서 술수를 쓰기로 했다. 그가 다니는 직장과 타고 다니는 승용차의 번호를 알아냈다. 서울 근교에 소재하고 있는 공작기계업체의 공장장인 그는 승용차로 출퇴근하면서 항상 회사 부근 공터에 차를 세워두었다. 그를 족치기로 한 날 그가 출근하기 전 그곳에 가서 기다렸다. 주차한 차에서 내린 공봉춘은 잘 생긴 스타일이기는 했으나 볼 살이 빠진데다가 이마에 주름살이 깊게 패여 있어 나이보다 더 늙은 티가 났다. 그가 공장으로 들어가자 차를 살펴보았다. 승용차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트렁크를 열고 슬쩍 마약과 유사하게 보이는 가루가 든 비닐봉투를 집어넣었다. 그에게 쓸 각본을 점검하며 예행연습을 하다가 퇴근시간에 맞추어 돌아왔다.

모사를 꾸밀 곳 인근에 들어서자 재빨리 그의 차를 추월하여 가로 막고 불심검문하는 척 했다. 마약사범을 쫓는 수사관을 가장했다. 위조신분증을 들이밀어 보이고 나서 어리둥절한 그가 멍하니 지켜보는 가운데 차안을 주섬주섬 들추어보았다. 막판에 트렁크를 열고 아침에 집어넣었던 가짜 마약봉지를 들어냈다. 그것을 그의 코끝에 들이밀면서 마약소지 혐의로 체포하겠다고 했다. 말도 안 된다고 하면서도 가람이 시키는 대로 차를 길가에 주차시켰다. 가람은 안가 흉내를 내기 위해 미리 보아둔 인근의 폐 공장사무실로 그를 데려갔다. 가람이 ‘공봉춘씨가 맞지요?’하고 묻자 그는 ‘네, 제가 공봉춘인데요?’라고 떠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날벼락을 맞은 듯 했다. 평생 마약이란 걸 접해본 일도 없는데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고 사정사정했다. 가람은 측은지심이 일었으나 원하는 것을 얻기까지 외면하기로 했다. 말없이 지켜보다가 그가 차분해지자 심문에 들어갔다. 협조만 해준다면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 있다면서 운을 뗐다.

로즈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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