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유괴수
30. 현장 조사(계속)
사람들의 왕래가 뜸한 평일의 오전 시간대에 P시의 시민의 숲 입구 주차장에 승합차 세 대가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시민들이 트레킹을 하도록 조성한 산을 바라보는 이들은 비대위 위원들과 조사원들이었다. 대부분 등산복차림을 하고 있고 일부 조사원들은 배낭을 메고 있었다. 이 들은 숲 속의 낮은 언덕길을 오르면서 각자 나름대로 주위를 살펴보곤 했다.
“저기 보이는 것이 좀 이상하네요!”
얼마간 오르던 중 한 위원이 큰 소리로 말하자 모두 그가 가리키는 곳 주위로 모였다. 꽤 큰 나무들에는 마치 꽃가루 뭉치가 여기 저기 피어난 것처럼 붙어있는데 크기가 일반 풍매화의 꽃가루 솜털보다는 비교도 안 되게 매우 컸다. 그들이 주변을 둘러보자 대부분의 나무들에게서 발견되었다. 어느 나무는 아예 꽃이 만개한 것처럼 솜털로 뒤덮여 있기조차 했다. 위원들과 조사원들이 깊숙히 들어가자 거의 모든 나무들에 솜털이 붙어 있었다. 두들 어안이 벙벙하고 있는데 위원 한사람이 운을 떼었다.
"저 솜털들은 마치 풍매화에서 날리는 꽃가루솜털처럼 생겼는데 그것들보다 휠씬 큰 것 같네요. 꽃가루가 날릴 시기는 지난 것 같은데 어쩐 일일까요?"
궁금한 듯 다른 위원도 한 마디 했다.
"그것도 그렇고 무슨 향기가 풍기는 것 같지 않습니까?"
"아카시아 향 같이 향긋한 냄새 같은데요. 지금 아카시아 꽃이 한창 필 때이기는 하지만, 여기 주변에는 그와 비슷한 나무조차 볼 수 없는데……."
"그런데 아카시아 꽃향기보다 묵직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마치 인공 방향제처럼요."
그러면서 위원 중 한 사람이 지시하자 조사원들이 그것을 여러 개 채집해서 유리병들에 나누어 담았다. 그들은 다시 산책로로 나와서 계속 숲을 오르며 주변을 살펴보는데 대부분 지역에서 솜털로 뒤덮여 있는 나무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일부 조사원이 산책로에서 벗어난 오솔길로 가다가 바위가 약간 튀어나온 곳에서 그 주변을 보던 중 다른 곳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지역에 온통 솜털들로 휩싸인 나무군락을 보고는 아연실색했다. 오싹한 기분이 들 정도인 이 풍경을 보다가 이내 사진기로 이들의 사진을 찍고 동영상으로 담았다. 다시 위원들과 합류한 이들은 그다지 높지 않은 정상에서 그 사진을 위원들에게 보여주었다. 위원들은 심상치 않은 이런 모습을 확인하고는 묘한 표정들을 지었다. 그 정상에서 볼 때는 그런 정도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으니 사람들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 같았다.
힘차게 빛을 뿜어대던 태양이 산 중턱에 걸릴 무렵, 차량들이 속속 비대위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연구실로 직행하여 솜털뭉치가 들어 있는 큰 병들을 실험대 위에 내어 놓았다. 그리고 출처별로 각 병위에 '황무지', 'P시 숲' 등의 표찰을 붙였다. 잠시 휴식을 취한 위원들과 조사원들이 위원장과 함께 그 연구실로 모였다. 조사원 한 명이 유리병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왼쪽 병들이 황무지 괴 나무에서 채집한 것이고 오른 쪽은 P시 숲에서 채집한 것입니다."
그것들을 자세히 바라보며 위원장이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모두 수고들 하셨습니다. 일단 오늘 의심스러운 지역에서 단서 비슷한 것을 확인하는 성과를 올린 셈이군요. 한 눈에도 두개의 것이 똑 같은 걸 알 수 있겠습니다."
그러자 각 위원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했다.
"이번의 조사를 통하여 숲속의 나무에 기생하는 저 놈이 젬트리 괴물나무로부터 날아 온 것이 분명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정확하게는 그 후손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이 솜털 뭉치가 진짜 불임에 영향을 미치는 걸까요?"
그러자 위원장이 방향을 제시했다.
"여기서도 나름대로 시험을 해보고 과학연구소 그리고 국과수에도 보내서 성분을 분석해보도록 합시다. 현재 조사했던 지역 말고 불임이 심한 타 지역의 숲이나 풀밭 등도 세밀히 조사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위원 한 사람이 요청했다.
"그러면 조사원들이 추가로 필요할 것 같습니다."
위원장이 즉각 답변했다.
"즉시 충원되도록 하겠습니다. 충원이 되는 대로 이들과 위원님들이 분담하여 이외의 지역들도 철저히 조사해서 이 솜털들이 어느 정도까지 분포되어 있는지도 확인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조사원들에게 솜털 성분 분석의 의뢰를 지시하자 조사원 두 명이 각자 다른 지역의 병들을 가지고 연구실을 나갔다.
31. 불유괴수
자신의 집무실에서 위원장이 다소 멍한 표정으로 자료에 눈길을 계속 보내고 있었다. 그 앞에는 남자직원이 그런 위원장의 모습을 곁눈질하면서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다. 집무실 밖에는 긴급 연락을 받은 위원들이 계속 회의실로 들어가고 있는데 몇 위원들은 위원장실로 들어 왔다. 그들이 들어오자 얼굴을 펴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이들과 잠시 담소하던 위원장의 안내로 회의장으로 들어섰다.
"오늘 급하게 회의를 소집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과학연구원에 의뢰한 솜털성분에 대한 분석결과 때문입니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자료를 들어 보이며 얘기를 계속했다.
"대단히 놀라운 내용입니다. 잠정적이기는 하지만, 꽃가루솜털과 향기 속의 물질이 사람의 정자와 난자의 수정을 방해하는 것 같다는 의견입니다."
그러자 위원 모두 놀라는 표정으로 잠시 웅성거렸다.
'혹시나 했지만 그래도 설마하니 이정도까지 일줄은 전혀 몰랐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는가' 하는 등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한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한 위원이 질을 던졌다.
"그러면 그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성분도 밝혀졌나요?"
"일차적인 기본 검사에 대한 결과를 통지받은 것입니다. 현재 계속해서 세밀한 검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의 분석결과가 어느 정도의 신뢰성이 있는가에 대한 추가 결과도 곧 나올 겁니다."
다른 위원이 걱정스러운 듯 이 말에 토를 달았다.
"정확한 성분이 밝혀져야만 이에 대한 백신의 제조도 가능할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답답하기는 하지만 정확한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 때까지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계속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괴물나무를 계속 관찰한 결과 확인된 사실을 김위원께서 말씀해주시겠습니다."
김위원 역시 현재 벌어지고 잇는 상황에 대해 답답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나타내면서 자신이 위원장이 지시로 조사원들과 별도 조사해온 내용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지난 3일간 조사원들과 그 괴물나무를 지켜보았습니다. 본원괴수가 있는 곳은 일종의 본부기지와 같습니다. 여기에서 불임인자가 함유된 솜털을 계속 생산해서 날려 보냅니다. 이 솜털로 감염된 지역은 1차 전진기지가 되는데 본부기지에서 날아온 솜털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그러자 질문이 나왔다.
(참고) 불유괴수는 '불임을 유발하는 괴물나무'라는 의미로 지어낸 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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