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나무, 젬트리의 망령인가
29. 비상대책위원회(계속)
제법 넓은 회의장에는 모서리가 둥근 장방형의 회의탁자가 들어서 있고 편안한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그 앞쪽으로는 스크린이 내려져 있고 천정에는 프로젝터가 보였다.
새로 설치한 것인지 사람의 얼굴도 선명하게 비출 정도로 모두 반짝반짝 윤기 흘렀다. 위원장을 비롯하여 10여명의 위원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사무직원들이 그들 앞에 서류 봉투를 갖다 놓았다.
모두 자리에 앉자 위원장이 일어서서 자기소개와 함께 회의를 시작했다.
"최근 들어 정부에 몇 몇 지역에서 일어난 특이한 현상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고 합니다. 뜻하지 않게 유산이 급증하고 신생아 출생이 급감했다는 내용인데 현재 주요 이슈화 되어 있는 저출산문제와 맞물려 사안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원인을 조사하고 그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그러자 참석한 위원들이 연속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렇지 않아도 향후 10여년 내에 인구가 격감할 정도 수준으로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 더 심각한 문제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문제가 발생한 지역이 젬트리라는 괴물 때문에 황무지가 되어버린 곳 부근이라고 하던데요?"
"우연의 일치일 런지는 앞으로 조사해보면 알겠지만, 제 생각에는 그 황무지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위원장이 이들의 발언을 잠시 중단시키고 회의 목적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지금 말씀하신대로 그럴 개연성이 제일 큽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선적으로 착수할 일은 지금 제시해 드리는 두 가지 사항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홍위원께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위원장의 말과 동시에 홍위원이 스크린 옆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앉아있는 남자직원에게 신호를 보냈다.
곧바로 스크린에 젬트리 괴물의 모습과 이를 파괴하는 공격 장면이 연이어 비추더니 마지막에는 황량한 회색빛의 황무지가 나타났다. 그 모습에서 화면이 정지하자 홍위원이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 보신대로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우리 사회를 들썩거려 놓았던 젬트리 사건에서부터 저와 같은 참혹한 모습이 출현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까 몇 몇 위원님들께서도 그러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만, 우연하게도 저 황무지 주변 8개 지역에서 알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료를 집어 들었다.
"그러면 배포해 드린 자료를 봐주십시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문제가 발생한 이들 지역과 젬트리 괴물이 파괴된 지역과의 연관성 조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원회인원을 세 부문으로 나누어서 임무를 수행하기로 합니다. 한 파트는 황무지 지역 내를 조사하고 이의 정확한 상황을 확인하는 임무고, 한 파트는 현재 불임이 심각한 지역의 생태상황을 점검하여 특이점이 있는 지를 확인하는 임무입니다. 그리고 셋째 파트는 각 병원과 보건소 등으로부터 자료를 다시 받아 이를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는 임무입니다. 각 파트별 위원편성은 그 밑에 적혀 있으니 참고하십시오."
위원장이 보충설명에 들어갔다.
"무엇보다도 이번 기초조사가 제일 중요합니다. 만약 이들 지역에서의 불임원인이 밝혀진다면, 보다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겁니다."
홍위원이 그 말을 이었다.
"그와 함께 불임을 치유하거나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의 개발도 조속히 추진되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위원장이 마무리 발언을 했다.
"물론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우리 대책위원회의 책무가 외견상 크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상당히 어렵고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이 점을 가슴 깊이 새기시고 일에 임해주십시오."
30. 현장 조사
푸르른 숲과 농작물 등이 자라고 있는 들판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사이에 좁은 포장도로가 나있는데 멀리 코란도 세 대가 나타나며 점차 가까워졌다. 차들은 포장도로를 지나 계속 전진하고 있었는데 얼마 후 푸른 녹색지대가 끝나면서 짙은 회색빛의 황무지가 나타나더니 철조망이 도로를 차단하고 있는 곳이 나타났다. 차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는 철조망 앞에 차례로 정차했다. 차 옆에는 '비상대책위원회'라는 표지가 붙어있었다.
각 차에서 탐험대 같은 복장을 한 사람들이 내려 그것을 묵묵히 바라보는 가은데 동행한 조사원 한 사람이 출입구가 있는 곳으로 가서 자물쇠를 열고 문을 열어젖히자 모두들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위원 한사람이 오싹한 듯이 한 마디 했다.
"엄청 썰렁하네요. TV 같은 데서 보기는 했지만 직접 와 보니 실제가 더 험악한 것 같습니다."
그러자 다른 위원이 두꺼운 고무장갑을 끼며 거들었다.
"그렇네요. 그런데 왜 이런 상태로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걸까요?"
다른 차로 온 함께 온 조사원 한 사람이 설명했다.
"아 예, 정밀 조사결과 이 지역의 토양이 중금속으로 엄청나게 오염되었답니다.
그래서 중화제를 뿌려 놓고도 2년 내지 3년 이상은 기다려야 나무를 심거나 농작물 재배를 할 수 있다고 하네요."
고무장갑을 낀 위원이 땅에서 흙 한줌을 들어 올려 자세히 관찰하다가 그의 말에 동의하듯 말했다.
"보기에도 마치 화산재 같습니다. 사막에서 사는 식물조차도 여기에서는 자라날 수 없겠는데요?"
그러자 조사원이 다시 거들었다.
"당장 농사도 지을 수 없고 거주할 수도 없기 때문에, 엠그룹에서 이 지역에 살던 주민들에게 계속 피해보상을 해주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모두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팀의 리더로 보이는 위원의 말에 따라 도로 차에 타고 황무지 안으로 전진해 들어갔다. 차들이 달리자 뒤로 피어오르는 엄청난 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평탄한 지역은 물론이고 꽤 놓은 구릉도 지나쳐 가면서 그렇게 먼지 속을 이리저리 다니던 그들 앞에 이상한 나무가 나타났다.
나무모양을 하고 있지만 표면은 온통 철 비늘 같은 것으로 뒤덮여 있었다. 모든 차량이 엄청난 먼지를 몰고 나무 앞에 정차했다.
먼지가 갈아 앉자 모두 마스크를 쓰고 차에서 내려 주위에 둘러싸고 나무를 관찰하는데 이건 보통 괴이한 게 아니었다.
나무 곳곳에는 꽃가루 같은 솜털들이 달려있는 데 일반 꽃가루 솜털보다 훨씬 크게 보였다. 마침 바람이 불어오자 그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모두들 그 나무를 바라보다가 일부는 사진을 찍고 일부는 나무 주변을 돌면서 자세하게 동영상촬영을 했다.
팀장이 조사원들에게 채집 장비를 가져와서 솜털을 채집하라고 지시를 내리자 몇 명이 조심스럽게 그것을 채집하여 유리병에 담았다. 한 위원이 솜털 하나를 핀셋으로 잡고 입으로 후 불자 그대로 둥실 떠오르더니 바람이 약하게 부는데도 점점 높이 솟구쳐 올라갔다. 모두들 신기한 듯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그 사람이 '엄청 가벼운 것 같은데'라며 중얼거렸다.
다른 조사원이 그 나무의 이파리를 채집하기 위하여 떼어내려 하나 철판에 용접을 해서 붙인 조각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절단할 기구가 없어 포기하고 말았다. 잠시 후 먼지를 일으키며 그곳을 떠나는 차량 행렬이 먼지 속에 가물가물 사라져 가는데 기다렸다는 듯 괴물 나무에서 솜털들이 무수히 날리기 시작했다.
(참고) 젬트리관련 장면
https://andami.tistory.com/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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