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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당돌했던 섀도우 가리은의 어린 시절 (파이토레이드(PHYTORAID) (제28회))

by 허슬똑띠 2022.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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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유괴수와의 싸움 (3)

 

33. 솜털 차단 작업 (계속)

 

한 시간 가량 달려온 이들 차량들이 불유괴수 주변의 철판벽채용 철제빔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나란히 정차했다.

크레인 차량이 트럭에서 직경이 매우 큰 쇠파이프를 내리자 작업자들이 그것을 괴수 방향으로 약간 경사지게 세웠다. 거대한 해머를 장착한 차량이 쇠파이프를 박기 시작했다. 길이가 5미터 정도 되는 파이프를 연달아 여러 개를 박아넣은 다음 표면에 '중화제'라고 적혀 있는 유조탱크에서 파이프를 그 곳으로 연결했다. 물이 흐르는 소리가 한동안 들렸다.

 

그 작업과정에도 불유괴수는 아는지 모른지 솜털을 계속 날리고 있었다. 한 탱크의 계량기에 빈 상태가 표시되면 다른 탱크로 연결하여 계속 중화제를 파이프에 연결하여 흘려보냈다. 그런데 갑자기 진동이 시작되면서 파이프가 박혀 있는 곳의 땅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점차 세어진 진동으로 땅이 꺼지고 파이프도 휘어지더니 집어넣은 중화제가 땅위로 스며들어 올라오다가 결국에는 샘처럼 솟아올랐다. 처음에는 약하게 솟구치다가 점차 높게 뿜어져 올라오자 사람들은 모두 차량에 타고 급히 뒤쪽으로 대피했다. 진동은 멈추었지만 터져 오르는 중화제로 인하여 괴수주변은 온통 물바다를 이루다가 경사면을 타고 이리저리 흘러갔다.

 

대책위원회 위원장실에 몇 몇 위원들이 말을 잊은 채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장시간의 침묵을 깨고 위원장이 분석통지서를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어 보이며 말을 꺼냈다.

"그 괴수가 중화제를 토해내듯 해서 큰 기대는 걸지 않았는데 역시 솜털은 전혀 변화가 없다고 합니다. 중화제를 다 토해냈으니 효과가 없었던 겁니다."

그러자 백신담당 위원이 보고했다.

"백신연구소에서 겨우 개발한 백신 역시 이를 접종한 사람들의 상태를 검진해본 결과 효과가 없다고 합니다."

잠시 위원장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혹시 있을지 모를 모든 가능성에 대한 조사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누군가가 불유괴수를 조정할 수도 있고 혹은 이를 악이용하는 불순세력들의 예상치 못한 방해공작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위원 중 한명이 맞장구를 쳤다.

"그런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순 없겠네요."

"그래서 전 분야에 걸친 수사전문가들로 구성된 합동수사대의 설치를 건의해 보고자 합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에 동의했다. 그리고 다시 침묵이 흐르는데 위원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다.

"그런데 위원장님! 젬트리 괴물 때에도 그런 의견이 나왔었지요? 만일 이것저것 다 무용지물이라면 핵폭탄을 사용해야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글쎄요? 저 불유괴수가 젬트리 괴물보다 더 무서운 건 사실입니다. 일단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정 피치 못할 상황에는 그 의견을 개진하도록 하지요."

그말을 하는 위원장이나 듣고 있는 위원들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34. 가리은의 회상

 

수사대 사무실 휴게실 안에는 드문드문 둥근 탁자가 놓여있고 여기저기사람들이 앉아서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창 밖 멀리 태양이 빌딩 한 편으로 침몰하면서 그 주변으로 스러져 가는 빛이 아롱거리고 있었다. 초저녁의 여문 노을 빛을 받으며 윤경위가 가리은과 마주앉아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리고 있었다.

가리은이 커피 잔을 들여다보다가 윤경위을 바라보는 데 마치 꿈속을 헤매고 있는 표정이었다.

"내겐 가슴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사연 하나가 있어요. 그런데 윤경위님을 본 이후로는 자꾸 풀어버리라 채근하네요."

"누가요? 사실 나도 궁금하긴 했어요. 유독 나에게만 사건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털어놓은 것이 이상했거든요. 내가 단지 여자 요원이라서? 글쎄? 그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녀는 얘기 도중에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자백하게 만들었다고 실장님이 '우리 윤경위 대단한데!' 하면서 추켜세우니까 멋쩍어서 혼났네요."

"사실 우리 경위님의 그 모습 때문이었어요. 모든 것을 털어 놓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더라고요. 그러지 않으면 그 애가 나를 다시는 안 보겠다고 하는 것만 같아서요."

"그 애가 누군데요? 저 번에도 누구와 닮았다고 했던 거 같은데……."

"저는 그 애가 커서 내 앞에 나타난 듯한 착각이 들어서 경위님을 한참 동안 바라볼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면서 그는 이에 얽힌 사연과 함께 아직 털어내지 않은 과거를 조심스럽게 꺼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 고아원에 오게 된 건지는 전혀 알 수가 없어요. 다만 분명한 건, 나 혼자 그곳으로 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기억해요. 그리고 내 곁에는 항상 나를 돌보아 주던 한 존재가 있었던 것도요. 그러나 어느 순간 홀로된 나는 어쩌면 내 스스로가 베이비시터였는지 몰라요.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형이 사라진 순간부터 혼자 스스로 강해져야만 했던 거죠.

그런데 7살 되던 때였을 겁니다. 한 여자애가 고아원으로 왔어요. 올 때부터 많이 아팠던 거 같은데, 그래서 그 애를 돌봐주면서 내가 그 아이를 지켜 주겠다고 맹서했어요. 내가 생각하기에도 어린 주제에 어떻게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전혀 모르겠어요.

아무튼 내가 끝까지 지켜주겠다던 그 애가 나의 손을 잡은 채 저 세상으로 떠나버리자 어린 나이였지만 가슴에 못이 박혔지요. 형이 떠난 뒤 그나마 유일한 희망이 가버리자 더 이상 거기에 있을 이유가 없어진 거죠.

나는 그 때부터 형을 찾아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형이 나중에 나를 찾아왔을 때가 걱정되기는 했지요. 그래도 내가 어디에 있든 형은 그곳으로 나를 찾아올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 차있었기 때문에 그 걱정은 떨쳐 버릴 수 있었습니다.

 

계속 고아원의 상황을 살펴보다가 정기적으로 고아원에 물건을 배달하기 위해 트럭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았지요.

기회를 엿보다가 하루는 남자가 짐을 내리는 사이에 트럭 뒤에 재빨리 올라타고 남아 있는 물건 뒤에 숨었습니다.

트럭 기사는 눈치 채지 못하고 그대로 고아원을 출발하였는데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지 한참을 심하게 덜컹거리며 달려가데요.

그런데 길이 좋아졌는지 덜컹거림이 없어지고 얼마 후 트럭의 포장 사이에 난 구멍으로 내다보니 시내의 시장에 도착하는 것 같았어요. 차가 서자마자 기사가 내리기 전에 후다닥 트럭에서 뛰쳐나왔지요.

근처를 배회하다가 문득 살펴보니 시외버스정류장인 거예요. 그래서 혹시나 해서 주머니를 뒤져 보는데 뭐라도 나올 리가 없었지요. 이 때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무조건 버스회사 사무실로 들어가 누군가를 찾는 척하면서 배차 게시판에 적혀 있는 기사들의 이름을 확인한 다음 비번인 기사 한 사람을 선택했지요. 버스 기사나 회사직원 가족은 공짜로 차를 탈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간단한 인적 사항을 경리를 보고 있던 한 여직원에게 물었지요. 정말 내 또래의 아들이 있는지 확인한 거죠. 다행이 그게 맞아 떨어졌지요. 그 다음에는 무조건 출발하는 차에 타고 정보를 알아낸 그 기사의 아들이라고 하여 공짜로 서울까지 오게 되었지요.‘

 

실내는 어느새 불이 켜져 있고 밖은 해가 완전히 떨어져 어둠이 깔려 있었다. 윤경위가 흥미롭게 얘기를 듣고는 무척 감명을 받은 것 같았다.

"어린 마음에 정말 많이 힘들었겠네요. 그리고 어디서 그런 꾀가 나왔어요? 참 어려서도 오달진 데가 있었군요. 처음부터 다른 사람과 무척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애초부터 보통 아이와는 많이 달랐었더랬네요."

그러자 가리은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마 서울로 가야만 한다는 생각만으로 꽉 차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이 나온 것 같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나를 생각하면 그 때부터 나의 삶의 방향이 결정된 건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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