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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누군가에 쫓기듯 달려가는 기묘한 차림의 소녀 (아찌<제1회>)

by 허슬똑띠 2022.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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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꿎은 운명과의 가슴시린 사랑 이야기

 

S#1. 프로로그

단독주택가 / 날 밝기 전

 

중형의 기와집과 슬라브집들이 밀집해 있는 주택가.

희미한 어둠 속에 안개가 엷게 뒤덮고 있어 모든 것들이 유령들처럼 윤곽만 흐릿하게 보인다.

가끔 회오리처럼 휘돌면서 스스로 흩어지는 안개로 인하여 윤곽들이 출렁거리는 듯 보인다.

누르스름하게 변색된 등갓을 쓴 백열전구의 가로등들이 듬성듬성 서 있다. 그다지 밝지 않은 빛으로 어둑한 골목길을 비추고 있으나 안개 때문에 그나마 별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카메라가 천천히 골목길을 따라 가다가 가로등 불빛이 비켜가서 잘 눈에 띄지 않는 한 주택의 철 대문 앞에 멈춘다.

안개가 잠시 흐트러지는 사이 대문 오른 쪽 기둥에 붙어있는 명패가 나타나고 화면에 빠르게 확대되면, 이나운(李羅運)이라는 은색 글씨가 겨우겨우 보인다.

카메라가 철문 상단에 설치되어 있는, 얇은 쇠파이프 창살들의 틈을 빠져 나가듯이 통과해 들어간다.

나무로 되어 있는 투박한 모습의 현관문이 나타난다.

문 상단 부분에 설치된 유리 안쪽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까만색의 연속이며 고요한 정적 속에 싸여 있다.

이 때 주방 쪽으로 보이는 창문부근에서 조심스럽게 바닥을 밟는 아주 희미한 소리. (E)

카메라가 유리문을 통과하듯 들어간다.

집 내부의 몽타주

희미한 빛이 어려 있는 듯하지만 쉽게 분간할 수 없는 내부.

어디에선가 들릴 듯 말 듯 서랍을 여닫는 소리.

벽에 척 달라붙은 여인의 모습이 실루엣처럼 보인다.

(플래시 컷) 얼핏 스치는 날카로운 금속성 물질의 번득임.

방문이 여닫히는 작은 소리.

입고 있는 옷의 흰빛으로 들어나는 사람의 윤곽.

문 앞에서 잠시 주춤거리는 하더니 조용히 앞으로 나아간다.

숨소리, 발소리 죽이고 곧바로 그에게 다가가는 또 하나의 그림자.

(플래시 컷) 번득이며 허공을 가르는 칼날 빛.

(슬로 모션) 어둠을 배경으로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기는 모습.

(Dis.)

바르르 떨고 있는, 피 묻은 칼을 잡은 희게 빛나는 손.

'끙'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지는 육중한 소리. (E)

피범벅이 되 채로 꼼지락거리는 손이 클로즈업 된다.

(O.L) 그 손 위에 서서히 바닥을 적시는 검붉은 핏물.

방문이 급박하게 열리는 소리.

(플래시 컷) 하얀 속옷과 희멀건 허벅지가 유령처럼 흔들리는 모습.

갑자기 집안에 울려 퍼지는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

뒤이어 쿵쾅거리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현관문으로 날아가는 듯한 하얀 속옷과 희미한 허벅지.

우당탕 현관문이 급하게 여닫히는 소리가 난 후 다시 정적 속에 잠기는 집 내부.

길거리 / 새벽

아직 밝지 않은 거리. 안개가 모든 모습을 차갑게 가두고 있다.

흩날리는 낙엽 속을 뛰어 가는 한 소녀. 속옷과 엉덩이 정도 내려오는 얇은 잠옷을 걸친 상태다. 차가운 공기로 인해 피부가 대리석처럼 반들거린다. 거리에 행인들은 거의 없으나 간혹 지나치는 사람들은 그녀의 모습을 갸우뚱하며 바라본다. 그러다가 누구에게 쫓기고 있는가를 확인하려는 듯 그녀의 뒤편을 바라보기도 한다.

반라의 처녀를 보는 게 희한한 듯 야릇한 미소를 짓거나 정신병자가 아니냐는 손 제스처를 쓰기도 하면서도 바쁘게 제갈 길을 재촉한다.

그런 주위의 시선은 볼 겨를도 없이 엉엉 울며 내키는 대로 뛰어 간다.

카메라가 천천히 아래로 향하면서, 뒹구는 낙엽을 튕기며 쉼 없이 교차되는 여린 소녀의 미끈한 다리와 흙으로 뒤범벅되어 가는 가녀린 맨발에 화면이 머문다.

(Dis.)

도로 / 낮

(Dis.)

햇빛이 비치는 회색의 보도 위를 걷고 있는 검은 바지와 검은색 남자의 구두. 구두는 광이 나게 닦은 것 같기는 하나 먼지가 많이 쌓여 있는 모습이다.

낙엽이 계속 주변에 흩날리는 가운데 그다지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가고 있다.

이 화면 위로 들리는 노래 소리.

(보이스 오버) 나뭇잎이 떨어져서 가을바람에 굴러 가네~~

잠시 느릿하게 걷는 발길을 보이던 화면이 확대되면, 펼쳐지는 주변 전경.

이차선 도로 위에는 자동차가 가끔 오가고 있고 가로수가 줄줄이 심어져 있는 보도 위엔 종종 걸음으로 지나치는 행인의 몇몇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이 지나가는 틈으로 흥얼거리면서 덜렁대며 걸어오고 있는 한가람기자.

그의 손에는 검정색 서류 가방이 들려 있다.

카메라가 그의 주변을 훑고 지나가면, 그의 오른 편 앞쪽에 세워져 있는 '성북경찰서'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한기자가 쓸쓸히 흥얼거리는 노랫가락에 장단을 맞추듯, 낙엽들이 마치 파도를 타는 것처럼 바람을 타고 공중제비를 돈다.

움츠러들었던 한기자가 자신을 스치는 낙엽을 마치 칼로 자르는 시늉을 하는 등 어린 아이처럼 장난치며 기분을 푼다.

그러는 그의 모습 위로, 숲을 어슬렁거리며 먹잇감을 찾아 드넓은 열대 초원을 헤매는 하이에나의 모습이 희미하게 오버랩 되어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다시 멀고 먼 길을 달려 집을 찾아오는 진돗개의 모습도 스틸사진처럼 스쳐 지나간다.

한기자 (중얼) 쳇! 오늘도 내 발길은 본능적으로 여전히 이곳이군.

 

경찰서 정문이 보이자 혼잣말로 구시렁거리며 들어선다.

정문에 서있는 의무경찰이 아는 체하며 거수경례를 하자 덩달아 경례하는 흉내를 낸 다음 인사치례로 한번 씩 웃어준다.

그러나 건물 내로 들어서는 한기자의 발걸음은 마치 이곳이 처음인 것처럼 주저거리는 모습이다.

'제기 여기 올 때마다 왜 맨 날 이런 기분이냐?'라고 쩝쩝거리며 강력계 사무실을 어정쩡하게 들어선다.

경찰서 사무실 안

넓은 사무실 안에는 책상들과 의자들이 다닥다닥 붙어 들어서 있는데 반쯤은 비어있다.

카메라가 팬 하면서 사무실 전체를 천천히 훑으며 지나가다가 벽 위의 달력에 잠시 멈춘다.

달력의 날짜, 1978년 11월 2일.

군데군데 형사들과 피의자들이 마주 앉아서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간간히 짜증이 잔뜩 묻어있는 높은 톤의 목소리 들리기도 한다.

한 책상 앞에 망연자실하게 앉아서 취조를 받고 있는 어느 중년의 아주머니에게 잠시 고정되는 화면.

그 아주머니를 중심으로 화면이 서서히 확대되면서 책상에 마주 앉아 있는 강명구 형사의 모습이 잡힌다.

피의자인 아주머니와 입씨름하기 지쳤는지 입맛을 쩍쩍 다시며 피곤이 잔뜩 묻어있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강형사.

그제야 프레임 안쪽으로 들어오면서 한기자가 아는 체를 하자 강형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일어선다. 옆자리에서 서류를 작성하고 있는 다른 형사에게 그 아주머니를 살펴보라고 퉁명스럽게 내던지면서 그의 팔을 끌고 복도로 나선다.

(참고) 시나리오 용어

E(Effect) : 말 그대로 효과음이다. 대목에서 효과음이 필요할 때 E 하나 써주면 된다. 그런데 자세히 쓰고 싶다 하면 '문 닫는 소리'같이 설명을 써주어도 된다.

플래시 컷(flash cut) : 화면과 화면 사이에 인서트(insert)로 삽입한 빠르게 움직이는 화면을 말한다. 영상자체는 큰 의미가 없는 깜빡이는 수준 정도이다.

슬로 모션 : 스틸화면을 천천히 감거나 멈추게 하는 방법이다. 반대는 패스트 모션이다. 애매모호한 환영이나, 꿈 장면 (현실이 아니라는 걸 부각하기 위해)에 주로 쓰였으나, 요즘에는 슬로우 모션이 갖는 원초적인 특성 즉, 엄청난 집중의 효과를 가져 온다는 점에서 패스트 모션보다 더 자 주쓰인다.

O.L(over lab/오버랩) : 두 장면이 겹쳐지면서 다른 장면으로 부드럽게 화면이 전환하는 방법이다. 약칭 은 O.L.이다.

Dis.(디졸브) : 디졸브는 오버랩의 작은 개념으로써, 물체에서 일련의 화면상 비슷한 느낌을 주는 물체로 변하면서 장면이 전환되는, 나름대로 좀 굴려야 하는 장면이기에 널리 애용되는 장면이다.

보이스 오버(voice-over) : 연기자 등이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 상태에서 대사 등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말하며 VO라고 줄여 표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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