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꿎은 운명과의 가슴시린 사랑 이야기
경찰서 내부 복도
한기자와 함께 창가에 서더니 셔츠 앞주머니에서 담배 갑을 꺼내어 담배를 한대 꼬나무는 강형사.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길게 빨아 대더니 창밖으로 '후' 하고 내뱉는다. 강형사를 따라 한기자도 담배 한대를 꺼내 입에 물자 강형사가 불을 붙여 준다.
강형사가 창 밖으로 후 불어내는 담배 연기 위로 60년대의 미스코리아 모습이 영상처럼 나타난다. 그 위에 보이스오버로 들리는 강형사의 목소리.
강형사 한 시간째 ‘그 짐승을 내가 죽였어’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어……. 참나! 환장 하겠어.
속이 터지는 듯 오만 인상을 다 쓰고 있는 강형사의 모습이 다시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다.
한기자 짐승을 죽여요? 설마 짐승을 죽였는데 여기 와서 저러고 있을 리는 만무할 거고. 그러기는 한데 외관상 전혀 사람을 죽일 그럴 타입은 아닌 것 같네요.
강형사 세상에 겉만 보고 저 사람이 살인할 사람이다 아니다, 어떻게 알겠어? 저 여자, 남편을 식칼로 찔러 살해한 여자야.
한기자 잠자고 있는 사람을요?
강형사 아니. 화장실과 안방 사이에 엎어져 죽어 있었어. 그렇게 죽여 놓고 태연하게 경찰서에 연락한 거야. 이건 아주 계획적이야. 우발적으로 살인을 한 것이라면 무슨 경황이 있어 경찰서에 전화하여 자수하겠어?
한기자 자수요?
강형사 그래서 술술 불 줄 알았더니만 저 모양이네. 그렇다고 실성한 것은 아닌데 말이야.”
한기자 갑자기 남편을 죽이고 나서 정신적인 충격이 심해서 그런 건 아닌가요?
강형사 본인이 직접 살인했다고 자수한 것을 보면 꼭 그렇다고 단정 짓기도 어려워.
한기자 집에는 다른 사람은 없었나요?
강형사 딸이 하나 있다는 데 현장에 가보니 집에 없어. 그래서 학교에 갔나 해서 친구들에게 확인해보니 오지 않았다는 거야.
한기자가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낸다.
한기자 강형사님! 상황 꼬이게 만들지 않을 테니 저 여인에 대한 정보를 부탁할게요. 제가 개인적으로 무슨 일인지 좀 알아봐야겠습니다.
강형사 아, 한기자도 이젠 큰 건 올려서 기자경력에 보탬을 할 생각해야지, 또 엉뚱하게 쓸데 없는 개인 플레이 한다. 츠츠츠…….
그러면서 강형사는 시큰둥하게 한기자를 바라보다 이내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의 요청을 무시하는 듯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더니 안으로 들러가려 한다.
한기자는 그의 웃옷 끄트머리를 잡아 끌며 통사정을 한다.
강형사는 그러는 그의 손을 떼내며 '그래, 알았어' 라면서 안으로 들어 가더니 잠시 후 뭔가를 적어 가지고 나온다.
강형사 귀찮지만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게 되네, 이거 참.
한기자 상큐, 선배님! 언젠가는 분명 이 웬수를 갚고야 말겠소!
쪽지를 넘겨받고 고맙다는 표현을 장난스럽게 하며 떠나기 전 한기자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고 있는 그녀를 다시 바라본다.
다소 갸름한 얼굴에 전통적인 미인형이다. 머리는 곱게 빗어 올렸다. 옷은 수수해 보이나 나름대로의 기품을 지닌 모습이다.
얼굴은 나이에 비하여 주름 하나 없이 고운 자태를 보이고 있다.
한기자 (독백)완전 현모양처 그 자체이네. 절대 남을 죽일 수 있는 스타일은 아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저 모습은 뭐란 말인가? 전혀 엉뚱하지 않은가 말이야?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을까?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건물 출입구로 향하는 한기자.
마치 고무다리를 밟는 듯 어정쩡하게 계단을 내려온다.
경찰서 전경으로 화면이 바뀌고 건물을 나온 한기자의 걸음이 좀 전과 달리 빨라진다. 그가 정문을 막 나오는 데 안면이 있는 타 신문사 기자 몇 명이 바쁜 걸음으로 들어 온다.
'안녕하시오? 아 이거 오늘은 한기자에게 선수 뺏겼네' 라면서 서둘러 건물입구로 향한다.
유화의 집
어느 집 앞에서 정차하는 택시. 문이 열리며 급하게 내리는 한기자.
집 앞에는 외부인 출입을 금하는 줄이 쳐져 있고 정복 경찰 한 사람이 경비를 서고 있다.
한기자는 그 경찰관에게 사정사정하여 함께 안으로 들어 간다.
집안 내부.
거실, 주방, 목욕탕이 차례로 나타나고 한기자가 이것저것 살펴보면서 참고될 만한 것을 메모한다.
경찰관이 딸의 방이라고 가리키는 방.
화면이 방 내부로 바뀌면, 한기자가 방안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있다.
대학 서적들이 꽂혀 있는 책꽂이가 놓여 있는 책상. 책상 옆에 벽에 붙어 있는 침대. 침대는 베개나 이부자리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처녀 혼자의 잠자리라 그런가? 그런데 이건 왠지 자연스럽지 못한데?' 라고 중얼거리며 볼펜을 그의 입가에 톡톡 친다.
계속 머뭇거리며 '이건 아닌데' 라면서 얄궂은 표정을 짓는 한기자.
한기자가 방을 나서면, 안방으로 화면이 바뀐다.
안방으로 들어 오는 한기자의 시선으로 보이는, 장식장 위의 액자.
유화와 남편 이나운 그리고 한 소녀가 함께 찍은 사진이다.
남편의 얼굴도 신성일 못지 않은 매력적인 얼굴이다.
'딸이군' 이라고 중얼대면서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본다.
온화한 유화의 모습을 빼어 닮아 장난감인형처럼 예쁘다.
소녀의 웃음기 가득한 얼굴이 화면에 가득 확대되었다가 천천히 원위치 되는 가운데 재촉하는 경찰관의 성화에 방을 나서는 한기자.
바람이 심하게 부는 거리. 한기자가 움츠리며 걸어 가는 모습이 프레임에서 벗어나고 바람 부는 파란 하늘과 우수수 날리는 낙엽이 오버랩 되며 화면에 꽉 찬다.
무수히 날리는 낙엽들을 배경으로 떠오르는 메인 타이틀.
"아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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