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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서로에게 다가 가는 두 사람 (파이토레이드(PHYTORAID) (제29회))

by 허슬똑띠 2022.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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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고백 아닌 사랑고백

 

35. 연(戀)

 

번화한 도심의 중심에 자리한 거대한 쇼핑몰이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였다가 토해내고는 하고 있었다. 입구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아직 20살도 안된 남자와 여자애들이 화려하고 섹시한 복장을 하고 열심히 춤과 함께 노래를 열창하고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았어도 여리저기에서 토해 내는 갖가지 현란한 조명들은 밤이라는 것을 무색케 하고 있었다. 쇼핑몰 내부는 그보다 한술 더 떠 아예 밤을 잊은 듯 했다.

다솜이 모처럼 시간을 내어 친구와 함께 쇼핑몰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니고 있었다. 화장품 가게를 들러보면서 화장품 몇 가지를 사고 난 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다른 층으로 올라갔다. 이리저리 옷들을 들여다보다가 다솜이 친구를 끌고 남성 캐주얼 옷들이 진열되어 있는 곳으로 가서 상의와 바지 각 각 하나씩 샀다.

쇼핑백에 그것들을 넣는 모습을 보며 친구가 궁금한 듯 말을 하려다 그냥 쇼핑백을 들고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카페로 들어갔다. 주문한 커피를 챙겨들고 와 자리에 앉으면서 친구가 그제서 묻고 싶은 말을 꺼냈다.

 

"너 남자 옷을 사는 걸 보니 누가 생겼구나?"

"글쎄? 조금 있다 얘기할게."

그러자 친구가 눈을 살짝 흘기다 마지못해 화제를 돌렸다.

"얘는~~그래 요즘 일은 어떠니?"

다솜이 커피 잔을 들면서 대답했다.

"응! 많이 편해졌어."

"인원은 변동 없을 텐데 사건이 많이 줄었나 보네?"

"요 한 달 새에 잘 풀리지 않던 사건들이 많이 해결되어 그래."

친구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래? 다행이다야."

"복덩이가 굴러들어 왔어."

"복덩이?"

"혼자 공부했다는데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모르는 게 없어. 학교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것 같은데."

"야, 누군데 그렇게 대단하니? 아니 그것보다도 학벌도 없는데 어떻게 거기를 들어갈 수 있어?"

 

"좀 특별한 케이스야. 더 이상 묻지 마, 다쳐!"

"허허 이런, 수사관 버릇 나온다! 얘 그런데 학교를 다녔는지 안 다녔는지 그것도 모른다며?"

"본인의 학력이 무학이래. 그런데 도무지 모르겠단 말이야! 혼자 공부한 건지 어떤 건지는 몰라도 역사, 지리, 문학, 술, 음식 등등 모르는 게 없으니까! 게다가 영어, 일본어, 중국어는 원주민 뺨치더구만."

"그렇게 대단하면 외국에서 공부했다던 가 그러지 않았겠어?"

"흐이구! 우리는 뭐 핫바지니? 그런 배경도 모르게? 그런데 사실 외국어에 그렇게 능통한 것을 보니 그럴 만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들더라."

"뭔지는 몰라도 대단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고... 혹시 너 그 사람한테 빠진 것 같다? 말투를 보니."

"그런지도 몰라. 금상첨화랄까? 외모도 귀족풍으로 아주 준수해."

"웬만한 여자는 다 찜 쪄 먹게 생긴 모양이네."

"그 사람 옷걸이도 완벽해. 뭐를 걸쳐도 무조건 오케이야."

"이제 보니 네가 빠질 만도 하구나 뭐!"

"그런데 사실… 그 사람한테 점차 끌려들어 가는 마음을 확인할 때 마다 고민스러워."

그러면서 다솜이 잔을 들어 다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왜?"

"그 사람은 어릴 적에 자기가 지켜주겠다고 약속을 했던 소녀애가 있었다는데… 그 아이의 죽음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을 아직도 지니고 있어."

"얘는? 그런 건 파피러브잖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소녀에 대한 사랑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는 게 문제지."

"그걸 어떻게 알아?"

"처음 나를 봤을 때 무척 놀라더라고. 그래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냥 '너무 닮았어요!' 그러더라고. 그래서 예전에 알고 있던 여자와 내가 닮아서 그랬겠거니 했지.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소녀 애와 내가 너무 똑 같다고 그러는 거야."

"에이! 그런 게 뭐가 문제야?"

"아냐 그 소녀 애를 통해 나를 투영해 보는 거 같아 꺼림직 해! 그건 진정으로 나를 좋아한다고 볼 수 없지 않아?"

"글쎄다?"

 

경찰청 건물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데 창에서 비치는 불빛이 어둠을 밝히고 있는 출입문으로 가리은과 다솜이 나오고 있었다. 이 때 두 사람이 2층의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가 이들을 발견하고는 한 마디씩 했다.

"요새 두 사람이 급속도로 아주 가까워지는 것 같아."

"그럴 밖에 더 있겠어? 인물 수려하지, 아는 것 많지, 게다가 총각이지, 뭐 하나라도 빠지는 게 있어야지."

"윤경위도 한 미모 하지만 저 정도 사내자식이라면 나라도 빠질 만하겠다!

"두 사람이 '오뉴월 풋고추에 가을 피조개'처럼 잘 어울리는 거 같아!"

 

비교적 밝은 2층 카페의 창가에서 다솜과 가온 두 사람이 마주앉아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인도에는 많은 사람들이 가지각색의 불빛을 받으며 오가고 있는데 개중 몇몇 남녀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지나갔다. 가리은이 이들을 내다보며 씁쓰레한 미소를 지었다.

"가끔 저렇게 웃고 떠들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이들 모두가 보이는 것처럼 정말 자신만만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곤 하죠."

"그들이 자신만만하게 보이는 건 누군가와 함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건 군중심리에 의한 일시적인 것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혼자일 때는 그런 자신감은 잘 발휘가 안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가리은씨의 경우는… 뭐랄까 혼자서 자신감을 키워 왔기 때문에… 흠, 어떠한 경우라도 크게 다르지 않겠죠. 그렇죠?"

가리은이 다솜을 뻔히 바라보았다.

"정말 그럴까요? 진짜 그렇게 되도록 도와주실래요, 윤경위님?"

"어떻게요?"

그 질문에 가리은이 머뭇거리다 겨우 말을 꺼냈다. 다솜이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멋진 외모와는 달리 꽤 순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내가 윤경위님을 좋아한다면 무례하게 여기시겠어요?"

이 말을 듣고 약간 상기되는 다솜. 사실 그 말을 기대했던 건지도 몰랐다.

"오늘 당장 대답 안 해도 돼요. 모순되는 얘기일 런지는 몰라도 나는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항상 외로움을 기다려 왔어요. 그러면서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림이란 것과 친숙하게 지내왔기 때문에 아무리 기다린다 해도 상관없어요. 아니~~ 무례하다 여기시면 아무 대답 없어도 돼요."

"무례하다는 표현은 안 맞는 것 같아요. 아무튼 가리은씨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 표현으로 알아듣겠어요."

"나는 일단, 무례하게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대답만으로 만족합니다."

그러면서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러나 다솜이 다소 정색을 하며 다짐을 했다.

"그러나 먼저 약속할 게 하나 있어요."

"무슨 약속을요?"

"가리은씨 마음속에 묻어 둔 소다미라는 여자애 있죠? 앞으론 절대 그 아이 모습으로 나를 투영하지 않겠다고요."

그 말을 듣고는 가리은이 환하게 웃었다.

"그건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되요. 윤경위님을 만나고 난 뒤로 소다미는 안심하고 천국으로 가서 천사가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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