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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뒤엉킨 시간에 비 되어 내리는 고독은 냇물과 더불어 흘러간다. (아찌<제15회>)

by 허슬똑띠 2022.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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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꿎은 운명과의 가슴시린 사랑 이야기

 

S#29. 용문산 / 낮

서서히 밝아지면서 부감화면으로 잡히는 산 능선과 등산로 입구에 늘어선 많은 가게들. 그 주변에서 등산복 차림의 많은 사람들이 쓴 우산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다.

숲 위로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와 그 빗물들이 한꺼번에 흘러내리는 소리가 온 천지를 뒤엎고 있다.(E)

카메라가 숲 속 길로 가까이 가면, 빗줄기 속에서도 꽤 많은 사람들이 비옷이나 우산을 쓰고 오르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그들 사이로 나타나는, 우산을 쓰고 하산하는 이반과 소다미.

 

이 화면 위로 퍼지는 게오르그 잠피르(Gheorghe Zamfir) 의 '여름비(Pluie Dete)' 팬 플릇 연주곡

 

S#30. 서울, 칵테일 바 / 밤

창밖으로는 줄기차게 비가 내리고 있어 그런지 손님들이 별로 없는 바의 내부. 옛날 팝송이 이러한 분위기에 맞게 흘러나오고 있다.

빗줄기가 연신 두드려 대는 창가에 앉아 있는 이반과 소다미 앞에는 여러 개의 맥주병들과 함께 칵테일 잔이 놓여 있다. 약간 취기가 어린 것 같은 이반은 소다미와 창밖의 빗줄기를 번갈아 바라보며 은근한 미소를 짓고 있다.

이 때 에프 알 데이비드 '워즈' 라는 노래가 나온다. 이반이 따라서 작게 흥얼거린다. 노래가 끝나면서 용기가 난 듯한 이반.

이반 방금 나왔던 곡은 워즈라는 노래인데 처음 가사가… (흥얼거리며) Words~~ don’t come easy to me. How can I find a way to make you see I love you야. 후후 나도 지금 그런 상태야.

소다미 난 그런 노래 모르는데.

이반 아주 오래된 팝송이니 잘 모를 거야.

소다미 무슨 의미인데요?

이반 내가 소다미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소다미에게 말해야겠는데 어떻게 표현하면 좋은 지 잘 생각이 안 난다고~~~

소다미 (과장되게) 어머! 어이구 취하셨나 봐요! 어린 애한테 무신 말씀을 그리 하시와요~~~

소다미는 농담조로 대꾸하면서 살그머니 말문을 닫아버린다.

그러면서 화제를 돌려 엉뚱한 질문을 한다.

소다미 참! 아찌는 혹시 노블레스 노마드족 아니세요?

이반 노블레스 노마드족?

갑자기 분위기가 깨지는 바람에 맥이 빠진 이반. 그러면서도 계속 소다미를 바라보고 있다.

소다미는 그의 눈빛을 피하며 대답한다.

소다미 자발적 만혼자라고 하죠. 결혼이란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삼으면서 취미 활동에 매진하며 즐거움을 찾는 사람을 빗대어 말하는 거래요.

이반 그래? 쏘냐는 별거를 다 알고 있네.

그러자 다시 소다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잇는다.

소다미 그래서 장가 안 가시는 거예요?

순간 움찔하는 이반.

이반(독백)

소다미가 내 존재성을 양파처럼 벗겨 나가다 양파와도 같은 매운 냄새를 확인한다면 과연 개의치 않고 나를 받아줄까?

이반은 힘없이 웅얼거리듯 말한다.

이반 아니, 쏘냐가 내 사람으로 와준다면 혼자 살지는 않을 거야.

소다미 아찌는 여자 많지 않아요? 아찌 주변엔 아찌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이반 호기심에 가득 찬 사람들뿐이지. 쏘냐만큼 진지한 사람 보았어?

소다미 에이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이제 그만 가시지요! 아찌도 취한 것 같은데 저도 좀 취했나 보네요.

소다미는 그의 팔을 붙잡고 자리에 일어선다.

 

S#31. 소다미 집 앞 공원

소다미 집 근처에서 택시를 내린 두 사람.

소다미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이반에게 손을 흔들며 집으로 뛰어 간다. 이반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가 사라지고 택시도 빗속으로 사라지자 이반은 어둑해진 밤길을 걸어 소다미 집 근처의 공원으로 걸어간다.

공원의 가로등 아래에 서서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는데 그의 눈앞에 펼쳐지는 환상.

(Cut in)

내리는 빗줄기가 옅은 황색의 불빛을 받아 수백 마리의 노랑나비로 변해 주변의 공간으로 마구 퍼져나간다.

그 중에서 한 마리의 나비가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커다란 빗방울에 맞아 바닥에 추락한다.

흐르는 빗물에 쓸려 내려가지 않으려 한참 동안 날개를 파닥거리면서 애를 쓰다가 결국 움직임을 멈추어 버린다.

다시 한차례 세차게 비가 쏟아지면서 많은 빗물이 그 나비를 덮치고 한 순간 휩쓸고 가버린다.

둥둥 떠내려가는 나비. 그 나비가 서서히 이반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다시 공원 안.

순간 이반은 우산을 휙 내던지고 더욱 거칠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공원 밖으로 걸어간다.

빗속을 걷는 이반의 모습 위로 들리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보이스 오버)

고독은 비처럼

바다로부터 저녁을 향해 올라온다.

멀리 외딴 벌판으로부터 고독은

언제나 외로운 하늘로 올라가서는

처음 그 하늘에서 도시 위로 떨어져 내린다.

모든 골목길마다 아침을 향해 뒤척일 때,

아무것도 찾지 못한 육신들은

실망과 슬픔에 젖어 서로를 떠나 갈 때,

그리고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한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그 뒤엉킨 시간에 비 되어 내리는

고독은 냇물과 더불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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