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창작스토리

이건 완전히 지옥의 마귀 목소리였어! (파이토레이드(PHYTORAID) (제51회))

by 허슬똑띠 2022. 9. 10.
반응형

 

두 친구의 오랜 만남이 죽음으로 끝날 줄이야.

 

59. 폭사

 

불이 훤하게 켜져 있는 Y읍 철도역사 안에는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거나 개찰구 앞 편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 때 웅성거림을 잠재우듯 열차의 도착을 알리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얼마 후 육중한 기관차 소리가 나면서 열차가 플랫폼에 정차하는 모습이 보이자 개찰구로 사람들이 몰려섰다. 한 두 사람씩 나오다가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들 중 50대 후반의 남자가 섞여 있었는데 앞머리는 머리 중간까지 벗겨졌고 옆머리만 약간 덥수룩했다. 개찰구 쪽으로 나오면서 앞쪽을 유심히 보고 있다가 누군가에게 손을 들어 흔들었다.

역 구내 뒤편의 유리창가에서 반소매 점퍼를 입고 있는 사내가 그의 손짓에 따라 손을 흔들었다. 두 사람은 오랜 만의 해후인지 반갑게 악수를 하고는 그대로 손울 잡은 채 역을 빠져 나갔다.

작은 역 광장 앞 편의 택시 승강장에는 열차 도착에 맞춰 도열해 있는 택시들이 몰려 있었는데 일부 택시만 손님을 태우고 역을 빠져 나갔다.

그들은 터덜터덜 걸어서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횟집으로 향했다.

얼마 안 되어 횟집의 작은 방안에 들어선 이들은 대머리가 안쪽 벽으로 기대어 앉고 점퍼는 입구 방향에 앉았다. 종업원이 물통과 잔을 가지고 들어와 주문을 받고 나가자 대머리가 잔에 물을 따르며 오면서 하던 얘기를 다시 시작했다.

 

"나 참! 이제 보니 너한테도 그런 전화가 왔었구나.

난 아침에 그 전화 받고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니까."

그러면서 전화의 주인공 목소리를 흉내 내어 음산하게 지껄여 댔다.

"'너는 남민철이 왜 죽었는지 알지?' 나 참! 이건 완전히 지옥의 마귀 목소리였어."

"도대체 무슨 꿍꿍이 속셈인지 모르겠어. 남민철이는 분명 식중독사 했다고 그랬는데 말이야, 왜 그 자식 죽은 걸 우리한테 끌어들이는 거야?"

"우리가 '남'가 녀석 말을 들어 준건 사실이지만 그것을 아는 놈은 '남'가와 우리뿐이란 말이야!"

 

이 때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여종업원이 음식을 가지고 들어와 상을 차렸다. 그 사이 잠시 침묵이 흘렀다.

종업원이 나가자 대머리가 소주병 뚜껑을 따더니 서로 잔에 따랐다. 그리고 같이 단번에 들이키며 크게 '캬'소리를 냈다.

점퍼가 대머리 잔에 다시 소주를 부으며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그것도 그렇지만 말이야~~ 이미 까마득히 다 지난 일인데 그걸 가지고 우리를 협박한다고 뭔 국물이나 나올 일이냐고."

"야! 그런데 나는 그 새끼 말투가 너무 오싹하더라니까.

그래서 너하고 상의하려고 그대로 부산에서 달려 온 거 아니냐."

"사실 나도 찝찝하기는 마찬가지야."

대머리가 소주를 단번에 들이 키고 나서 물었다.

"그런데 '남'가 그 자식 식중독으로 절로 죽어 버린 거 맞지?"

"신문에 난 기사를 액면 그대로 본다면 타살은 분명 아니지!"

그러면서 점퍼도 단번에 들이 키고 나서 서로의 잔에다 술을 따르자 대머리가 회 한 점을 씹으며 웅얼대듯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그 새끼 말하는 싸가지로 봐서는 꼭 그 새끼가 죽인 것 같단 말이야."

"그렇담 내둥 가만있던 놈을 왜 갑자기 죽여 놓고 생난릴 치냐 이 말이지."

그러자 대머리가 퍼뜩 무슨 생각이 난 듯이 상대방을 멀뚱 쳐다보며 잠시 뜸을 들였다.

 

"혹시? 남가 그 자식 살기 지쳐서 조용흰가 뭔가 하는 계집애한테 돈 뜯어내려고 지랄 친 거 아닐까?"

"뭐?"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가능성이 많은 거 같아. 그렇지 않고서는 여태껏 가만있던 놈을 건드릴 필요가 뭐 있겠냐구!"

그 말을 듣고 점퍼가 맞장구를 쳤다.

"네 말을 들으니 정말 그런 거 같구만.

그렇담 우리에겐 단순하게 입막음을 하기 위해 그런 거 아닐까?"

"좋게 본다면 그럴 것 두 같긴 한데."

"야! 좋게좋게 생각하구 말자. 씨발~~ 조용허게 살구 있는 사람 그만큼 겁줬다면 됐다구 생각할 지도 몰라.

더군다나 네가 부산에서 여기까지 단숨에 올라온 걸 안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럴까?"

"자! 이제 기분 좀 풀고 한잔하자. 그리고 모처럼 여기까지 먼 길 왔는데 노래방 가서 애들 불러 신나게 놀아보자고!”

 

잠시 후 두 사람은 노래방에서 도우미들을 부둥켜안고 정신없이 노래를 불러대고 있었다. 벽에 붙어 있는 여러 개의 모니터에서는 갖가지 영상과 함께 노래 가사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탁자에는 조그만 맥주병 열댓 병과 마른안주 접시 몇 개가 어질러져 있고 노래 책자들이 여기 저기 널려 있었다. 천장에서는 구멍이 숭숭 뚫린 둥근 등이 빙글빙글 돌면서 노래방내에 파랗고 빨간 점들을 수 없이 아로 새겨놓고 있었다.

 

입구에 있는 보안등이 어둑한 골목을 밝히고 있는 주택가의 좁은 길로 두 남자가 비척대며 들어가고 있었다. 두 사람이 골목 안쪽의 한 집으로 향해 오더니 점퍼가 대문을 열었다. 누군가의 핸드폰에서 '12시'라는 소리가 들렸다. 점퍼가 취기 섞인 목소리로 대머리에게 들어가자고 하면서 그의 팔을 끌었다.

"애들 다 시집장가 가고 마누라는 여행가서 집에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편안하게 자고 가라고!"

"알았네 그려!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는데 말년에 젠장 이게 무슨 일이야 지랄같이."

"허허! 더 이상 걱정할 필요 없다니까."

집안의 모든 불이 꺼져 있지만 밖의 빛들이 어리어 두 사람 모습은 뚜렷이 보였다. 어두운 방문을 열고 두 사람이 들어서는데 점퍼가 '이게 뭔 냄새지?'라고 하면서 전등 스위치를 켜는 순간 '꽝'하는 소리와 함께 대 폭발이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창문으로 세차게 화염이 뿜어져 나오고 순식간에 그 집은 불길에 휩싸였다. 주변집 사람들이 놀라서 잠옷 차림에 뛰쳐나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해 하며 허둥댔고, 개중에는 집으로 뛰어 들어가 가재도구를 들고 나오는 사람들도 보였다. 화염이 솟구치면서 연기와 함께 여기저기 열기에 터지는 소리가 사방을 삼켰다. 멀리서 여러 대의 소방차가 '앵앵'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다음 날 오후 경광등을 번득이며 승용차 한대가 그 지역의 경찰서로 들어갔다. 정차한 차에서 형사 두 사람이 내리더니 곧바로 수사과로 향했다. 사무실에는 많은 자리가 비어 있고 몇 사람이 앉아서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나이가 꽤 먹어 보이는 반장이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옆 탁자에 가서 앉았다. 형사 한 사람이 어제 있었던 가스폭발사고에 대해 보고했다.

"화재 감식반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가스누출에 의한 폭발 외에는 다른 특별한 원인은 없다고 합니다."

"어떻게 가스가 폭발된 거지?"

"가스레인지로 연결되는 배관의 개폐장치 부분이 상당히 헐겁더랍니다."

"평소부터 그런지는 부인이 와봐야 알겠지만 대부분 별 탈 있을까 하며 지내기 일쑤죠. 그리고 폭발로 인한 화재로 인하여 더 팽창되었을 수도 있겠구요."

"가스 부주의에 의한 원인 말고는 다른 게 없다는 거지?"

"예 그렇습니다."

"이번 폭발로 죽은 사람 중 한사람은 집주인 일 텐데 그 사람 말고 다른 남자의 신원은 밝혀졌나?"

"예, 시신이 너무 불에 타서 감식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답니다. 그의 소지품도 다 타버려 당장은 신원확인이 어렵습니다."

"탐문을 해보니까 어제 밤에 주인 남자하고 그 사람하고 둘이서 역 앞 횟집하고 그 옆 노래방을 들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 때 다투거나 그러지는 않았데?"

"횟집에서는 처음엔 좀 심각한 분위기인 것 같더니만 곧 웃음소리가 났고 나갈 때도 기분이 좋았답니다."

"노래방에서는 여자 도우미까지 불러 놀았다는 데요!"

 

동일한 시간. 자신의 집무실에서 조용희가 살그머니 전화를 내려놓으면서 묘한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