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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이제 저는 얼마 되지 않은 생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아찌<제37회>)

by 허슬똑띠 2022.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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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꿎은 운명과의 가슴시린 사랑 이야기

 

S#85. 공원 / 낮

 

공원의 산책길에서 조깅하던 이반이 갑자기 널브러지면서 파란 아스콘 바닥에 나뒹군다.

신록이 짙어가는, 이파리들이 제법 우거져 있는 나무들 사이사이에는 붉은 빛 그리고 흰 빛의 철쭉과 빨간 영산홍이 피어있다.

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한가롭게 뛰어가거나 빠른 걸음으로 지나치지만 그를 그냥 힐끗 보고 만다.

개를 끌고 뛰어가던 사람이 그 개가 이반에게 다가와서 킁킁대나, 그 사람은 개를 훽 잡아채더니 그냥 가버린다.

카메라가 주변을 팬 하면, 공원 한편에서 나무를 붙잡고 쉬고 있는 노인이 보인다.

쓰러진 이반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반이 금방 일어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급하게 다가온다. 그의 동정을 살피더니 휴대폰으로 연락한다.

 

S#86. 병원 / 낮

 

진찰실 내부.

의사로부터 검사 결과를 듣고 있는 이반.

 

의사 (벽 전광판에 붙인 뇌 사진의 일부를 가리키며) 이 부분에 퍼져있는 말기 뇌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반 (놀라) 말기 뇌종양이라고요?

의사 아주 특이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치료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이반 (다시 놀라)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의사 (가라앉은 목소리) 앞으로 6개월을 넘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반 (기가 찬 듯) 6개월이요?

의사 (참착하게)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자각증세는 없었습니까?

이반 (약간 목이 잠겨) 네. 가끔 두통이 나는 데 금방 사라지곤 해서 크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별로 아프지도 않았고요.

의사 어렸을 때부터 이 종양이 자라고 있었는데 이것 때문에 남들과는 다른 특징을 보였을 겁니다.

이반 네 저도 스스로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의사 놀랍게도 이 종양이 그러한 영향을 미치면서 아주 느리게 진전되어 온 것입니다. 의학 상식으로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그 동안 별다른 자각증상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은데…… 오히려 그게 이반씨에게는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겁니다.

이반 (침울한 표정)…….

의사 지금까지는 통증이 별로 없다고 해도 이삼 개월이 지나면서는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단계이지만 가능한 방법을 다 동원해서 치료는 해봐야 되지 않을까 하는데요.

이반 …….

의사 망설일 때가 아닙니다.

이반 일단 집에 가서 상의한 후에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병원 건물 밖. 운동복 차림 그대로인 이반이 들락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터덜거리며 병원문을 나서고 있다. 갈 곳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정원 부근에서 서성이다가 벤치로 가서 앉는다.

휴대폰을 꺼내어 물끄러미 바라보다 도로 집어넣고는 정원의 꽃들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러다가 결심한 듯 입술을 꽉 물고 일어서서 천천히 택시승강장으로 향한다.

잠시 후 이반이 탄 택시가 복잡한 거리로 나섰다가 차량들 틈으로 사라진다.

 

S#87. 성당 / 오후

 

멀리 롱숏으로 보이는 명동 성당 전경.

언덕길에는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으나 그리 많지는 않다.

그 사람들 사이에 이반의 모습도 보인다.

점차 그의 모습이 확대되어 화면 전체에 찬다.

그의 이마에는 땀이 살짝 번져 있고 지친 표정이 역력하다.

 

성당의 내부. 높고 넓은 홀에 놓여 있는 의자에는 군데군데 사람들이 앉아서 나름대로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이반은 뒤편의 의자에 앉아 멍하게 앞을 바라본다.

카메라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그의 눈에 조금씩 차오르는 눈물이 보인다. 참을 수 없는 설움이 몰려드는지 앞 의자에 손을 올려놓으며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인다. 세차게 복받쳐 오르는 서러움으로 어깨가 마구 들썩인다.

(교차 화면) 고개를 숙인 모습 안쪽이 나타나면, 살짝 번지던 눈물이 하염없이 얼굴을 타고 내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바닥에 톡톡 떨어진다.

이 화면에 보이스 오버로 들리는 이반의 독백.

 

이반 (독백) 하나님! 이제 저는 얼마 되지 않은 생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운영적인 내 사랑 소다미와도 영원히 헤어져야 합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저에게 내려주신 저의 운명인지 정말 알고 싶습니다.

 

(플래시 백)

성당에서의 신부의 설교.

 

신부 하나님께서 천지창조 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손이 태어나자 그들은 자손을 계속 번성시키기 위해 그 자손들은 서로 결혼해서 자식들을 낳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허용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소돔을 탈출한 롯과 그 두 딸이 자손을 번성시키기 위해 두 딸이 아버지의 아이를 갖게 됩니다.

이 역시 자손의 번성이라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신 것 입니다.

 

다시 성당 내부. 전체 모습이 나타나다가 고개를 숙인 이반의 모습이 확대되어 화면에 들어찬다.

 

이반 (독백) 아무리 옛날이라지만 저와 같은 존재들이 많았던 것, 사실이잖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저주 없이 살아가며 번성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면 안 되는 것인 가요?

 

(플래시 백)

신부 노아의 셋 째 아들이 친모와의 상간으로 난 족속이 가나안인데 하나님은 가나안의 후손들에게 저주를 내렸습니다. 그 후 성경은 근친상간을 강력히 경고 하고 있습니다.

 

옆면에서 보이는 이반의 고개 숙인 얼굴. 비탄에 젖어 있는 그의 얼굴은 그야말로 눈물범벅이다.

 

이반 (독백) 그렇다면 저는 만약 살아서 결혼을 한다고 해도 제 후손들은 영원한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단 말입니까?

이것은 너무 불공평 한 것은 아닌가요?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닌데 왜 나는 태어날 때부터 저주를 받아야 하는 가요?

하나님! 제발 저에게 길을 알려주세요.

 

이때 실내에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어메이징 그레이스.

시간이 지나면서 심하게 들먹이던 이반의 어깨가 점차 수그러진다.

음악이 끝나갈 때쯤 이반은 고개를 숙인 채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는다.

그리고는 손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앞 쪽을 바라본다.

 

이반 (독백)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두 번 다시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운명을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저의 모든 것을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우리 소다미, 행복할 수 있도록 지켜주세요.

(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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