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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사드의 소설 속에 나오는 줄리엣이라는 악녀에 대한 얘기가 생각나요 (파이토레이드(PHYTORAID) (제66회))

by 허슬똑띠 2022.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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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기억을 흩뿌리며 사라져가는 불유괴수 인공지능

 

71. 불유괴수 퇴치 작전(계속)

 

이것을 지켜보던 가온은 한 순간 정지시키더니 여러 가지 기호들을 정신없이 입력시킨다.

그리고 엔터를 누르면 다시 온갖 기호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흘러내린다.

한 순간 다시 정지시키고 또 입력한다.

종전보다 진동이 커진다.

그러나 가온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이러한 동작을 대 여섯 번 연속적으로 실행한다.

대형 스크린에 보이던 괴수의 인공지능 반응이 이상해지더니 혼란스럽게 흔들린다.

이와 동시에 차량이 몹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갈수록 심해지는 진동.

흔들리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그래도 스위치와 자판을 움켜지고 안간 힘을 쓰고 있는 가온과 그 옆에서 그의 몸을 붙잡고 흔들리지 않도록 지지하고 있는 다솜.

몇 몇 기기들이 바닥에 떨어져 나뒹군다.

 

괴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면서 흩어지고 있고 기기를 싣고 있는 중장비 차량이 무너지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하늘은 폭설이 내리듯 온통 꽃가루솜털들로 채워져 있고 바닥에도 수북하게 쌓여있다. 괴수 몸체에서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솜털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괴수 주변의 땅이 지진이 난 것처럼 마구 흔들리고 있고 차량들이 덩달아 춤추듯 요동을 치고 있는 가운데 사람들이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있다.

차량으로 들어갔던 사람들이 차량에 심하게 흔들리자 도로 뛰쳐나온다.

아예 멀리 외부로 뛰어 나가는 사람들이 엄청난 폭설 속에서 춤추는 듯 보인다.

일부 지역의 땅이 꺼지면서 중장비 여러 대가 땅 속으로 반 정도 파묻힌다.

 

컨테이너 내부가 요동을 치면서 기기들이 이리 저리 떨어져 내려 바닥에 뒹굴고 있지만 가온과 다솜은 서로를 의지하며 자신들 앞에 있는 조종기기를 단단히 붙잡고 모니터의 흐름을 주시하고 있다.

모니터에는 괴수의 인공지능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신경세포 모양으로 된 총천연색의 줄기들이 어둑한 공간으로 끝없이 이어져 있다.

하얀 빛의 섬광들이 이것들을 타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타고 가고 있다.

갑자기 그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붉은 빛 파동들이 그 섬광 위에 나타나더니 같이 흘러가며 불꽃을 튀긴다.

때로는 그 빛이 섬광에 튕겨져 나가면서 사라지곤 한다.

그래도 붉은 빛 파동은 끊임없이 나타나며 섬광을 조금씩 잠식해 간다.

갑자기 끈적끈적한 액체가 인공지능 전체에서 엷게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스러져 가는 섬광 위로 할로윈데이의 귀신 가면과도 같은 얼굴이 사방으로 당겨지고 일그러지면서 분노의 울부짖음과 신음을 내고 있는 모습이 오버랩 되어 나타난다.

그러더니 섬광들이 점차 사라지며 붉은 빛의 파동만이 주변에 가득 넘실거린다.

순간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며 모니터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순간적으로 스치듯 나타났다 사라지는 영상들.

 

본래의 젬트리 나무 위로 각 종 지상 및 수생식물들의 모습, 야생 꽃들이 피어 있는 푸른 벌판 그리고 하늘 높이 솟아 있는 거대한 상록수,

마지막으로 식물들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라온의 모습이 나타났다가 서서히 사라진다.

 

이미 밖에는 어둠이 내려 쌓여 있는데 그 사이 지진은 멎었고 사람들이 도로 모이기 시작한다.

가온과 다솜도 밖으로 나온다.

그러자 한가람기자가 어느 틈에 도착했는지 그들에게 다가온다.

괴수의 온 몸에서 온갖 총천연색의 빛이 검은 공간으로 날아가듯 솟구치면서 주변을 훤하게 밝힌다.

하늘을 메우고 있던 솜털들이 마치 불꽃놀이의 불꽃송이처럼 총천연색으로 불타다가 서서히 날려 떨어진다.

그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가온이 윤경위, 한기자와 함께 그보다 떨어진 곳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가온은 이와 같은 벅찬 광경과는 아주 거리가 먼 표정으로 말한다.

"저는 조용희라는 여인이 떠오를 때면 사드의 소설 속에 나오는 줄리엣이라는 악녀에 대한 얘기가 생각나요.

그녀는 독약이 든 사탕을 들고 다니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지요.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가리지 않고서.

그리고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확인까지 하지요.

전날 잔혹한 올가미를 씌웠던 사람의 집 앞에 놓여있는 관을 보면서 그녀는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그 관을 보고 있노라면 환희의 불길이 내 혈관을 타고 춤을 추었어. 분명, 자연이 나의 필요를 위해 이처럼 형언할 수 없는 희열을 부여해준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는걸!'"

가온이 지금의 상황과는 다소 동떨어진 말을 하자 그의 기분을 이해한다는 듯이 한기자가 조용히 말을 꺼낸다.

"우리 가온씨 기분 알만하네. 일단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성공적으로 일을 마쳤으니 나머지는 그들에게 맡겨두자고."

다솜도 한마다 거든다.

"그래요!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은 그 부분에 대한 최선을 다 하는 거죠."

가온은 간단히 말을 정리한다.

"아무튼 한기자님의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가온의 표정은 무심했지만 이를 바라보는 한기자의 표정이 굳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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