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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당신을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파이토레이(PHYTORAID) (제70회 마지막회))

by 허슬똑띠 2022.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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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회의감이 빚어낸 어둠의 빛은 그녀의 곁에 머물게 할 수 없었다.

 

76. 수색

 

승용차 두 대가 허름한 빌라 앞에 급하게 정차하더니 남자들이 좌우 문을 열어젖히고 나온다.

주위에는 거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한적하다.

'딩동'소리가 나자 가온이 현관문으로 가서 문을 연다.

형사 한 사람이 수색영장을 내밀자 가온은 아무 소리 없이 문을 활짝 열고 다 들어 올 때까지 문을 잡고 있다.

마지막으로 반장이 들어오며 자신이 문을 닫는다.

그러면서 다소 미안한 표정으로 말을 꺼낸다.

"요번 아주 힘든 일을 해냈던데 이렇게 기분 잡치게 찾아 와서 미안하오."

그러한 반장의 말에 가온은 무표정 하게 답변한다.

"아니 괜찮습니다.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걸 텐데요 뭐."

들어오자마자 형사들이 기온의 집구석 구석을 샅샅이 수색한다. 그 사이 반장은 한쪽에 앉아서 가온에게 알리바이를 묻고 있다.

"가온씨가 당일 무얼 했는지 얘기 해줄래요?"

"대사건이 일단락되어서 대장님께 며칠 휴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미뤄 두었던 일들을 하고 있었죠.

그런데 그 사건이 있자마자 수사대 형사가 집으로 전화를 했더라고요. 그건 반장님께서 더 잘 아시겠지요? 당연히 반장님이 시켜서 전화한 것 일 테니까요.

제가 제일 유력한 용의잔데 집에 없다면 그것이 확증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러셨겠죠.

이 부문에서는 추가 확인의 여지가 없겠지요?

그리고 10여분쯤 지나서는 인근 마트의 배달원이 '주문한 물건 가져왔습니다.'라고 하면서 딩동 거리더라고요.

때 마침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있었기 때문에 인터폰으로 물건을 놓고 가도록 했습니다.

이 부분은 마트의 그 배달원에게 확인해보시면 될 거구요."

 

집안을 조사하던 형사 한 사람이 장식장 위에 놓여 있는 부모와 형제2명으로 구성된 실제 사람과 같은 더미(Dummy)들을 가리키며 '내부를 확인해 봐도 되겠죠?' 라며 가온에게 동의를 구한다.

가온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은 가온의 가족을 상징하는 듯했는데 밀랍인형처럼 너무도 생생하다.

한참 동안 그 안을 조사해 보던 형사가 다소 너저분하게 돼버린 인형을 제 모습대로 하려고 애쓴다.

그것을 본 가온이 그냥 놔두라는 손짓을 한다.

그것을 보면서 가온의 머리에는 그의 모습을 한 더미의 활약상이 떠오른다.

 

조정균 등의 저격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가온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있던 수사대의 형사가 그의 집으로 전화를 했다.

그런데 가온의 모습을 한 더미가 전화기로 다가가더니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가온의 목소리로 답변하고 전화를 제자리에 놓는다.

이는 마치 FX의 영화에 나오는 인형형태의 로봇이 주인공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과 다름없다.

그 후로 10여분 뒤에는 인터폰이 울리자 더미가 인터폰을 받으면서 '지금 화장실에 있으니 그대로 문 앞에 두고 가세요!'라고 말하고 인터폰을 원위치 시킨다.

얼마 후 그의 집 근처에 나타난 노인 한 사람이 주변을 살펴보다가 아무도 눈치재지 못하게 가온의 집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한 더미 속을 다 분해하여 나머지 세 개의 더미를 장식하는 부품으로 넣어버린다.

 

같은 시각의 비대위 합동 수사대와 사이버 수사대에서도 가온이 자리 했던 곳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이 시행되고 있었다.

침통한 표정으로 다솜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모든 수색이 끝났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자 수사요원들이 허탈하게 돌아간다.

거의 비슷한 시각에 가온의 집에서도 철수하는 형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반장이 아쉬운 표정으로 가온에게 협조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차에 타고 가면서 수사요원들끼리 투덜대며 야기한다.

"제기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소총류 근처에 가는 것도 없더라.

하다못해 장난감 비슷한 것도 발견할 수 없더라니까."

"그 녀석이 완벽하게 폐기 처분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너무 깨끗해."

반장도 졌다는 투로 말을 맺는다.

"그 친구 얘기하는 알리바이도 부근 사람들에게 확인한 당일의 행적과 일치해! 너무 완벽해!"

 

형사들의 차들이 골목길을 빠져 나가는 모습을 창을 통해 바라보고 있는 가온이 중얼거린다.

'모두가 찾고 싶어 하는 귀중한 것은 누구에게라도 쉽게 눈에 띌 수 있는 곳에 감추라는 것이 루팡의 제일 법칙이지.'

형사들이 탄 차량들의 모습이 모두 사라지자 다양한 파이프로 구성된 장식물 쪽으로 가더니 구멍크기와 길이가 다양한 10개 정도의 은빛 파이프들을 스윽 어루만진다.

가온이 바닥의 두툼한 나무판 옆에 박혀 있는 넓적한 못 머리를 가볍게 툭툭 친다.

그런 다음 휴대폰을 조작하자 머리들이 툭 튀어 나온다. 그 중 하나를 빼어들자 빠르게 클로즈업 되어 보인다. 6~7센티미터 정도 길이의 두툼한 대못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앞부분은 뾰족하게 생겼는데 뒷부분의 2센티 정도는 앞부분과 달리 재질도 틀려 보이고 세로로 3개의 줄이 나있다.

가온이 그 부분을 조작하자 삼각 날개 3개가 튀어 나온다.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조작한 다음 그것을 현관문 쪽으로 힘차게 뿌려대자 공중에서 몇 바퀴 돌더니 되돌아와 방문 앞에 걸어놓은 표적판 정중앙에 그대로 꽂힌다.

 

77. 에필로그

 

다솜이 방범등이 켜져 있는 아파트 정원을 지나 출입구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자물쇠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며 현관 등이 켜지고 다솜이 들어오는데 그녀의 손에는 편지 한통이 들려 있다.

집안에서는 아무 반응도 없다. 다솜이 거실 등을 켜고 급하게 방으로 들어간다.

거실 등이 켜짐과 동시에 그녀 방안도 훤하게 밝아진다.

옷도 벗지 않은 상태에서 두 손으로 편지를 들고 잠시 서있는 그녀의 얼굴에는 반가움과 서러움이 교차한다.

편지를 뜯는 그녀의 손이 살며시 떨린다.

 

편지를 읽는 그녀의 눈에 나타나는 풍경.

낙엽이 이리 저리 흩날리는 어느 호숫가의 작은 펜션.

그 앞에 만들어진 잔디밭의 탁자에 앉아 호수를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낙조를 바라보고 있는 가온의 쓸쓸한 옆모습.

이 정경과 함께 그녀의 귀에 울리는 가온의 담담한 목소리.

 

'지독한 회의감들로 침전된 마음이 사악한 빛으로 물드는 순간,

용서라는 두 글자는 이미 발아래에 짓뭉개지고 있었지요.

……

나에게 그런 추악한 모습이 없었더라면,

있는 모습 그대로 당신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

다만 당신을 만나볼 수 있었다는 행운이 이러한 아쉬움을 조금은 씻어주는군요.

……

당신은 항상 메말라 있는 나의 마음을 출렁이도록 채워주었던 오직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소중합니다.

당신을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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