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이곳을 ‘신세계’라 불렀다.
11. 고단한 행로(계속)
실제로 병곤은 레이와 수시로 관심사나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정보들을 나누면서 어느새 그녀에 상당히 빠져있었기 때문에 한동안 연락이 없을 경우 그녀가 절교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었다. 그녀 역시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은 있었지만 오해를 하고 자신을 떠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강원도 산골을 다니다보면 손쉽게 연락이 안 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단히 채비를 해둔다는 마음으로 그런 메일을 보냈던 것이다.
승용차를 몰고 사전에 한 달간 예약을 해둔 깊은 산속 마을 한 농가에 도착하였다. 주인은 약속을 어기지 않고 찾아온 병곤을 무척이나 반겼다. 사람의 왕래가 드문 이곳에서는 사람이 그립기도 했을 것이다. 나이든 할머니의 따스한 손님맞이에 송구스럽기도 하면서 마음이 푸근해진 병곤은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자신이 묵게 될 방에 짐을 부려놓았다. 더위가 한창이었지만 깊은 산골인지라 그리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선선한 바람이 부는 침상에 걸터앉아 지도를 펼쳐들었다. 예상되는 운석의 추락지점 몇 군데를 선정하고 답사 순서를 정했다. 차례차례 일주일씩 세세히 살펴나가기로 작정했다.
다음 날부터 험산 산과 골짜기를 돌아다니며 살펴보았지만 운석이라고 할 만한 비슷한 것조차 찾아낼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쳐갔고 자신이 잘못 판단했을 수도 있다는 회의감이 몇 번이나 포기를 유혹했다. 겨우겨우 마음을 다잡고 세 번째 대상지역까지 조사를 마치고 난 뒤 농가로 돌아와 이틀을 쉬면서 자신이 소행성을 관측할 때 녹화 시켜두었던 소행성파편의 낙하장면을 점검했다. 면밀한 관찰 끝에 그동안 방향을 잘못 잡았었고 마지막 남은 지역이 가능성이 제일 높다는 느낌이 가슴에 확 다가왔다. 그는 용기를 내어 다시 출발하였다.
이틀 째 되는 날 사람의 인적이 없는 산비탈을 내려가다가 커다란 나무의 굵은 줄기가 부러져 있고 불탄 흔적까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번개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 부분만 약간 탈 리가 없었다. 단서를 잡았다고 생각한 그는 흥분하여 파편이 스쳐 지나간 것으로 추정되는 방향을 가늠해보았다. 내려가면서 드문드문 비슷한 형태의 나뭇가지들을 목격했다. 힘겹게 가파른 산비탈을 내려와 계곡에 거의 다다른 병곤의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맑은 물이 시원스레 흐르고 있는 개울에 못 미친 비탈 마지막 자락이었다. 쌓여있는 크고 작은 돌 틈 사이로 약간 다르게 보이는 돌 몇 개가 흩어져 있는 게 아닌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병곤만은 단숨에 운석조각들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비교적 크게 보이는 것을 집어 들어 살펴보니 틀림이 없었다. 아주 단단했는데 주변의 조그만 조각들은 이곳에 충동하면서 떨어져 나간 것의 일부로 보였다. 병곤은 환호성을 지르며 이들을 모두 채집주머니에 집어넣고 자신의 성공을 자축하는 뜻에서 계곡물로 땀투성이 얼굴을 씻었다. 거의 한달 사이 그의 팔은 완전히 구리 빛으로 변했고 얼굴도 많이 그을려 있었다.
잠시의 휴식을 끝낸 병곤은 배낭을 짊어진 다음 채집주머니는 어깨에 메고 돌아가기 위해 다시 산비탈을 오르기 시작했다. 저절로 흥이 나서 힘차게 나아가다 비탈의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발을 딛었던 작은 바위돌이 생각지 않게 힘없이 부서졌다. 그 바람에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다가 등에 맨 배당의 무게로 인해 밑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비명을 지르며 마구 미끄러져 내려가는 사이 운석을 담은 채집주머니가 떨어져 나와 덩달아 비탈을 데굴데굴 굴러 내려갔다. 병곤은 나무와 바위에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계속 추락하여 오르기 시작한 지점에 나뒹굴고 말았다.
창곤은 동생으로부터 방학을 이용하여 여행을 해야겠다는 말만 들었지 어디로 무엇 때문에 간다는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었다. 그런데 동생이 오랫동안 연락이 없자 부모님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어서 창곤이 직접 동생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단서를 잡기 위해 병곤의 방을 살펴보다가 메모지에 한 연락처를 발견하였다. 그곳에 전화를 해보았더니 창곤이 한 달 일정으로 머물기로 했던 산골 마을의 한 농가였다. 집주인은 그가 일주일 간격으로 깊은 산속에 등산을 다닌 것 같다고 하면서 다시 그곳으로 돌아올 때가 훨씬 넘었는데도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만사 제쳐두고 창곤은 아내 서린과 함께 그 농가로 급히 출발하였다. 그곳에 도착한 창곤은 먼저 병곤이 머물던 방을 확인해 보았다. 거기에서 꼼꼼하게 적어놓은 일정표와 개략적으로 표시해놓은 종이쪽지를 발견했다. 계획했던 지역 4군데 중 3군데에는 물음표와 함께 X표시가 된 것으로 보아 최종지역으로 갔다가 조난당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는 그 지방 119에 구조요청을 하여 도움을 받기로 했다. 구조대원들과 함께 종이에 쓰인 지역을 수색하다가 깊은 계곡 가장자리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병곤을 발견하였으나 이미 숨져있는 상태였다.
망연한 상태로 장례를 치르고 난 뒤 병곤의 유품은 천문망원경이 있는 펜션에 보관하였다. 서린은 자신이 선물했었던 ‘일성정시의’모형을 시동생의 영정 바로 옆에 놓아두었다. 그가 자신에게 애정의 표현을 했을 당시에는 난감했었으나 그런 것에 거부감이 일지 않았던 것 역시 사실이었다. 그녀 마음 한구석에도 병곤의 애정을 받아드릴 수 있는 자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 생각이 들자 더욱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절로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창곤은 동생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도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동생이 단순히 등산을 하기 위해 험난한 그 지역에 가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렇다면 무엇을 찾기 위해 갔었고 왜 그런 사고를 당한건지 아무리 합리적으로 사고의 고리를 연결해보려 해도 별무 소용이었다. 아무런 건덕지도 이끌어내지 못하자 이제 서서히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벤처사업의 기반을 확고히 하는 데에 전념하기 위하여 당분간 그 의문은 접어두지 않을 수 없었다.
깨어진 동업의 환상
창곤은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대학시절부터 절친하게 지냈던 안중호와 의기투합하여 바이오 벤처사업을 시작했었다. 마침 창곤이 토양오염을 획기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박테리아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고 중호 역시 부작용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 인공피부에 대한 기술개발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다. 둘은 야심차게 사업을 추진하였다. 처음 시작할 때 그들은 BT부문에서 IT부문의 마이크로소프트와도 같은 세계적인 기업을 이루어보자고 다짐했었다. 그들이 초기에 계획했던 연구개발은 적지 않은 문제에 직면하여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추가로 발굴해낸 프로젝트들에서 성과들이 나타나주어 그런대로 사업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생각보다 원활하게 진척되는 것처럼 보였던 두 사람의 동업관계가 사업을 시작한 지 3년차에 들어서면서 균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자 창곤은 이를 풀어보고자 마음먹었다.
“너도 알다시피 네 눈은 길고 가늘게 그려진 것 같아 작아 보이기는 해도 누구나 총명하다고 느낄 수 있는 그런 눈빛을 황상 발하고 있었거든. 나는 그런 것에서 너에게 무한한 호감을 느꼈었고 과연 이것이 너에게 감추어진 능력을 발휘하도록 만드는 거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달리 보이기 시작했냐?”
“꼭 그렇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언제부턴가 좀 매섭다는 느낌이 들더라.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몰라도 입신양명에 대한 너의 욕심이 과해서 그런 게 아닐까 할 정도로 말이야.”
“글쎄?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너도 분명 인정했던 부분을 이제 와서 부정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데?”
“물론 지금도 변함없이 인정하고 있어. 우리는 어쩔 수없이 경쟁상대와 대결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닥칠 때가 많지. 그 때마다 비상하게 돌아가는 순발력하며 냉정하면서도 합리적인 집중력을 발휘하는 너의 그 대단함을.”
“그런데 그게 왜 문제가 돼지?”
“지금까지 나도 그저 단순하거나 순탄한 인생을 살아온 것은 전혀 아니야. 종종 아주 자극적인 순간에 직면할 때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부어 가면서 노력 해왔거든. 그러나 지금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 어질어질하게 느껴져서 그런 거야”
“난 네가 당초 우리가 가졌던 목표를 잊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봐.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한 생각만 해야 된다고 생각해. 그런데 나만 애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잖아?”
창곤은 그 말에 말문이 막혔다. 괜한 생각이 자신을 너무 부정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라고 자신을 탓하면서 물러서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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