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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그런 것은 후흑학(厚黑學)에서 일컫는 소위 ‘아녀자의 인(仁)’에 불과할 뿐이야. (염빙 바이러스 (제15회))

by 허슬똑띠 2023.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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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곳을 ‘신세계’라 불렀다

 

11. 고단한 행로(계속)

 

그러자 중호는 자신이 주장했던 소신을 더욱 확고히 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두 사람이 목표로 했던 것에 대한 성과를 내고자 하는 야심을 더욱 가속화 해갔다. 기대하였던 기술개발이 일순간에 끝날 수 없고 자금수요는 계속 많아지는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한 방편이었을 수도 있었으나 창곤에게는 중호가 지나치게 안달하는 모습으로밖에 비처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경영대학원의 연구과정에 다니면서 사람들을 많이 사귀고 있었다. 곰곰 생각하다가 자신의 거취를 정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자 결론을 내기 전에 먼저 중호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네가 기술개발을 하면서도 회사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는 생각해. 그러나 나의 의견도 웬만큼은 반영되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무턱대고 네 의견을 무시한 것은 아니잖아?”

“네가 지나치는 말로 코스닥 상장을 들먹일 때마다 좀 시기상조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하는 말이야. 우리가 아직 그럴 정도의 기반을 잡았다고는 볼 수 없잖아?”

“너는 어떤 면에서 지나치게 솔직한 게 병이다. 아니 너무 사고가 단순하다고 볼 수 있어. 사람들에게 1+1=2라고 제의한다면 흥미를 느낄 수 있을까?

글쎄? 내가 보기엔 자극적인 어필로서는 빵점이지. 1+1=3, 아니 1+1=4라는 면을 보여주어야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을 거고 그래야만 원기도 솟고 성공으로 가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

어차피 우리가 이 사업을 시작한 이상 그저 직원들 먹여 살리고 사람들 호감이나 사자고 하는 게 목적은 아니잖아?

그 이상의 것, 그것을 보다 진지하게 음미해 본다면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전혀 아니올시다 라는 부정적인 편견을 버릴 수 있을 거야.“

 

“글쎄? 네가 100% 틀렸다는 건 아니야. 단지 그 어필이라는 걸,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해야 한다는 거지. 그렇게 안하면 어쩌면 그건 곧 깨질 환상에 불과할 수도 있고… 잘못된 방향으로 유도했다가는 아예 수습할 수조차 없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을 거라는… 그런 우려 때문에 그런 거야.”

“그런 것은 후흑학(厚黑學)에서 일컫는 소위 ‘아녀자의 인(仁)’에 불과할 뿐이야. 그런데 문제는 이게 바로 한 기업이나 국가를 경영하는 데 있어 치명적인 패착을 가져온다는 거야. ‘일패도지(一敗塗地)’ 라는 말 알지? 한번 꺾이고 나면 재기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는 누구라도 아는 사실이야.

넌 그런 아집을 계속 고집하다가는 천생 한갓 별 볼일 없는 장돌뱅이 기술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거야.”

 

창준이 보기에는 중호는 어느 사이 범속적인 것을 떠나 비즈니스계의 제왕을 꿈꾸고 있음이 분명했다. 후흑학이란 바로 그런 길을 안내하고 있는 서적이 아니던가. 비록 글로벌 IT기업을 지향해왔지만 중호가 품고 있는 생각이 꼭 이를 뒷받침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 후로도 그와의 대화는 계속 어긋났고 두 줄의 기차 레일처럼 평행을 달리게 되었다. 저만치 멀리 앞을 바라본다면 지평선에서는 하나의 점으로 합쳐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듯 그러길 바랐다. 그러나 두 레일이 얼마 멀지 않은 터널로 들어가면서 아예 보이지 않게 되어버린 것처럼 혼자만의 바람으로 끝나고 말았다.

 

결국 수완을 발휘한 중호는 완성되지 않은 기술을 지나치게 부풀려 홍보함으로서 외부 자금을 끌어드리는데 성공했고 자본금의 50% 가까이나 되는 자금을 증자하게 되었다. 창곤은 그의 수완에 감탄하기보다 지나치게 손쉬운 성과에만 집착하는 태도에 속이 상했다. 순간 M/S사의 폴 앨런이 떠올랐다. 그렇다! 중이 절이 싫으면 절을 탓할게 아니라 절을 떠나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증자를 시행하기 전에 자신의 지분을 친구에게 모두 넘기고 그와 결별하고 말았다.

그 때 폐부를 찌르는 한 선각자의 말이 떠올랐다. ‘대지(大智) 즉 큰 슬기는 어리석음과 같다. 타인에게 마음의 상처, 배반을 안기어 스스로의 큰 슬기를 어리석음으로 만드는 것보다 더 멍청한 것은 없다.’ 이 말의 이미를 되새기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만 뒤 별도로 벤처기업을 설립하였고 정상궤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도 분주하게 보내고 있던 참에 동생의 사고를 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12. 미래를 위한 준비

 

한국의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밖은 날로 기세를 올리고 있는 뜨거운 열기로 여리던 초목의 빛이 짙어가고 있었지만 실내는 얼음장과도 같은 냉기류가 참석해 있는 사람들의 기분을 대변했다. 그 자리에는 대통령과 국정원장, 기획재정부장관, 국토해양부 장관 및 청와대 수석들의 면면이 보였다.

대통령은 모두를 둘러보며 국가의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의견을 구하고 있었다. 비록 가능성이 전혀 엿보이지 않았지만. 차가운 분의기를 깨며 국정원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빙하가 전국을 뒤덮었을 경우 어떻게 국정운영을 계속해 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모두를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국토해양부장관의 의견이 뒤를 이었다. 그는 미국에 전 세계가 핵전쟁에 빠져들었을 때를 대비한 거대한 지하기지가 건설되어 있음을 상기시켰다.

 

우선 서울 근교에 수천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임시수도를 지하에 건설하고 이곳에 몇 년이라도 버틸 수 있는 식량 및 생필품을 저장하는 계획이었다. 이어서 전국 곳곳에 적절한 규모의 대피공간을 구축하고 지하 통로를 통하여 지휘본부와 연결하도록 하는 동시에, 아무리 대피공간을 최대한 만든다 해도 전 국민을 모두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일 것이므로 개인적으로 대피소를 만드는 것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청사진이었다.

이와 함께 생활용수를 확보하는 방안으로서 담수를 최대한 저장하기 위한 댐이나 적은 규모의 저수지를 가능한 대로 조성하기로 했다. 지금 빙하기를 초래할지 모르는 해빙은 얼음이라지만 전혀 쓸 수 없으나 지상의 담수는 얼더라도 이를 녹여서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지상이 모두 얼어붙기 전에 지하수의 개발도 병행하기로 했다. 민물과 해양어류의 보존과 증식을 통한 대체식량의 확보를 위해서 지하에 거대한 저수지를 조성하고 미리 각종 어류를 확보하는 한편 가축들의 사육 공간과 이들의 먹이를 마련하는 방안도 제안되었다. 또한 소량이나마 지하공간에서 곡물을 생산하는 기술도 서둘러 개발에 착수키로 했다.

 

그 다음으로는 타국과의 비상 교통로 확보 문제였다. 물론 지구 상공에 떠있는 인공위성으로 당분간 상호 통신이 가능하겠지만 전 세계의 모든 나라가 얼어붙게 되면 타국과의 통행은 불가능할 것이므로 항공기가 필수적일 것으로 예상되었다. 따라서 영하 100 여도에 가까운 살인적인 초저온에 견딜 수 있는 항공기의 개발이 필요할 것이고 이와는 별도로 항공기의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지하에 활주로를 건설할 필요성도 있었다. 지하대피소에 수용할 대상자들의 선정기준에 대해서는 일의 진척을 보아가면서 결정하기로 하였다. 당장 이와 같은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면 서로가 이곳에 들어가기 위한 이전투구는 물론 유혈사태까지도 예상되므로 모든 것은 철저히 보안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이상과 같은 계획을 추진하려면 비상조직이 필요하였고 또한 적지 않은 인원이 동원되어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건설자금과 필요한 기자재 및 각종 생필품 저장을 위한 자금의 조달이 급선무였다. 해빙의 출현이 아니더라도 세계경제가 더블딥의 위기 앞에 휘청거리고 있는 차에 괴물 같은 해빙의 출현은 경제적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므로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그것도 공식적으로 추진할 수 없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였다. 전반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결정된 것은 치밀하게 밀어붙이기로 결정되었다. 생각보다 일사불란하게 계획은 추진되었고 공사 일정, 공사 위치 등 계획진행에 필요한 사항들이 빠르게 마련되어 갔다. 재난방어계획에 소요되는 예산도 전체자금의 일부분이기는 하였지만 어렵게 확보되면서 실제 공사에 착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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