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이곳을 ‘신세계’라 불렀다.
13. 운명의 열쇄, 운석
창곤이 설립한 벤처회사의 초창기 주력분야는 미나리아재빗과 일종인 바꽃의 독극물을 이용한 무공해 해충제 생산이었다. 한의학에서는 통상 신체 특정 질환의 치료제로 사용되는 것이나 그는 이를 변형시켜 농작물에 적용시킨 것이다. 그 후 창업투자회사의 임원으로 있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투자자금도 받게 된 그는 개발연구를 본격화 하였다.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임상실험까지 거친 후 상업생산에까지 진척을 보이고 있을 때쯤 해빙에 대한 심각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당장 닥쳐있는 일에 온 신경을 쓰다 보니 한 동안 관심의 변두리에 머물러 있었다. 마침 한가람기자가 회사로 찾아왔다. 그는 힐난하듯 물었다.
“넌 왜 잘 나가고 있는 벤처기업을 털고 나왔는지 이해가 안 된다. 지금 그 회사가 얼마나 잘 나가고 있는데, 그걸 생각하면 네가 한 행동이 좀 잘못 되지 않았나 싶다. 뭐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말이야”
“네가 아쉬워하는 기분 나도 잘 알아. 하지만 나는 별로 개의치 않으니 걱정하지 마! 난 오히려 내가 나와서 회사가 더 잘되니 반갑던데 뭐. 그리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너무 만족스러워.”
“네 앞가림은 네가 알아서 한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 더 이상 그것에 대해 말 하지 않을게. 그건 그렇다 치고 들리는 얘기로는 지금 하고 있는 사업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는 것 같은데, 내가 나서서 홍보해줄까?”
“고마운 말이지만 아직까지는 그럴 듯한 기사거리는 안 돼. 정말 필요할 때 너한테 SOS 칠게. 그보다 발광하고 있다는 해빙의 내용이 궁금한데…”
한기자는 신문에 발표된 내용 외에도 그동안 나름 입수하였던 해빙과 관련한 정보를 세세히 말해주었다. 별 대수롭지 않은 냥 하는 말투와는 달리 그의 얼굴에 희미하나마 어리어있는 불안감의 그늘은 문제의 심각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더구나 그 정체가 외계에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는 부분에서 창곤은 동생과 주고받던 얘기가 얼핏 떠올랐다.
"박사님은 미생물 학계의 최고권위자니까 얘기하는 건데…"
병곤은 형을 언제나 박사님이라 호칭하면서 한술 더 떠 최고권위자라는 수식어까지 덧붙였다.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그 말에 창곤은 동생이 현재 대접하는 그대로의 상황으로 진정 가야할 것이라고 전의를 불태우고는 했다.
"내가 우주를 관찰하면서 자주 느끼는데 분명 이 가까운 태양계 내의 행성에도 말이야, 생물체가 살고 있을 것이라는 아주 강한 예감이 들더라고."
"과학자들 얘기로는 달처럼 공기가 없는 곳에서조차 물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생명체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잖아, 아주 원시적이긴 할 테지만. 그런 점에서 나도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동생의 말에 창곤이 맞장구를 쳤다.
"우리 지구에서도 호극성 박테리아라는 특이한 생명체를 발견해 냈었잖아? 지금까지의 상식으로서는 도저히 생물체가 살 수 없을 거라 판단했던 곳에서 여봐란 듯이 버젓이 살고 있는 것들을 말이야.
그렇다면 지구상의 그런 곳보다 더 열악한 환경의 행성이라 할지라도 생물체가 있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니까!
예를 들면 얼음으로 꽁꽁 덮여있는 행성에는 발열하는 성질을 가진 생명체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수성과 같이 열이 펄펄 끓는 곳에는 열을 흡수하는 성질을 가진 것들이 있을 수도 있잖아?
그러면 이들 때문에 뒤덮인 얼음 속은 녹고 뜨거운 열은 식고, 그래서 적당한 온도의 물이 생겨나고 그 속에는 보다 진화된 생명체가 살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거지."
"대단한 생각이다. 그래 우리는 지레짐작해서 이러저러한 가능성을 배제할 필요는 없다고 봐."
"그리고 또 한 가지, 이런 박테리아 형태의 생명체가 혜성이나 소행성 충돌로 인해 발생한 파편에 묻어 우주공간에서 떠돌다가 우연히 다른 행성이나 소행성으로 이민을 갈수도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그 동안 몇 번이나 화성 밖의 행성들에 무언가가 충돌하는 아주 미세한 섬광들을 발견했었거든."
"이민이라? 재미있는 표현인데!"
한기자의 말은 점차 진지하게 변해갔다. 이곳저곳을 들쑤셔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떠도는 얘기보다 한층 더 심각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창곤에게 의견을 물어왔다. 한기자의 정보를 들은 창곤은 당장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실체의 규명이 아니겠냐고 원론적인 얘기를 하는데 한기자의 휴대폰이 울렸다. 통화를 끝낸 한기자는 답답한 대화를 다 갈무리도 하지 못한 채 갈 곳이 있다며 황급히 나가버렸다.
모처럼 들은 해빙의 얘기를 곰곰 되새겨보았지만 번득이는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괜한 고민에 빠져 있다가 동생과 나눈 대화를 회상하며 집으로 돌아온 그가 저녁식사를 마치고 베란다에 설치한 탁자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아내가 차를 들고 그에게 슬며시 다가왔다. 창곤은 매일 보는 모습이었지만 왠지 이 순간은 처음 그녀를 만나고 난 후 거의 매일처럼 그리움을 느끼게 했던 예의 그 상그러움이 되살아나왔다. 그 미소 그대로 그의 앞자리에 앉은 그녀는 점차 애잔함이 서려있는 잔잔한 미소로 변하더니 조용히 말을 꺼냈다.
“뜬금없는 빙하에 대한 뉴스를 보다가 돌아가신 도련님이 찾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곰곰 생각해 보았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창곤의 가슴에 마른번개가 번쩍 스쳐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녀석이 사고사 한지도 벌써 일 년이 다되어 가고 있는데 동생의 사고에 대한 의문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서린은 지금도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듯 눈을 내려 뜨고 말을 계속 했다.
“저는 그것이 혜성에서 갈라져 나온 소행성 파편이다 싶어요. 도련님이 그 소행성을 먼저 발견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어요. 그렇다면 소행성이 지구에 떨어질 적에 일부 파편이 우리나라에 떨어진 것도 알고 있었을 거란 거죠.”
“맞아! 당신이 그 말을 하니 그동안 꽉 막혀있던 답답한 의문이 풀리는 것 같아. 당신 말대로 그것 아니고는 다른 여지가 없어.”
이 말을 하고 난 뒤 그는 턱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갸우뚱했다.
“그런데 말이야… 녀석의 배낭 속에는 그와 비슷한 것조차 없었단 말이야. 그렇다면 운석을 발견하지 못한 게 아닐까?”
“저는 아니라고 봐요. 분명 그것을 계곡 어딘가에서 발견하고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한 것일 거예요. 다른 사람이 그것을 빼앗기 위해 도련님을 해친 것 또한 아니고요.”
“그렇다면?”
“배낭 속에 넣지 않고 다른 가방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요? 아마 추락할 당시 다른 곳으로 튕겨져 나가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그건 아직도 그 부근 어딘가에 있다는 얘기지요. 지금까지 운석을 발견했다는 기사나 떠도는 얘기는 없었으니까요”
창곤은 단초가 보이는 듯 했다.
“그래 당신 말이 맞아. 당장 내일 펜션에 가서 먼저 병곤이의 배낭을 다시 확인해보자고. 역시 없다면 그 녀석 시신을 발견했던 주변을 샅샅이 찾아보는 수밖에.”
이 말을 끝내기 무섭게 두 사람은 오지로 탐사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온갖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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