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이곳을 ‘신세계’라 불렀다.
13. 운명의 열쇄, 운석(계속)
다음 날 집을 출발한 그들은 정오쯤 펜션에 도착했다. 혜성이 지구에 가장 근접했다는 그 날 병곤과 함께 왔었던 기억이 떠올라 서린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언제나 그녀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시동생이 자신에게 품었던 사랑의 편린이 자신도 모르게 가슴에 묻혀있었는지도 몰랐다. 둘은 병곤의 유품을 간직해둔 방에서 그의 배낭과 기타 소지품들을 면밀하게 살펴보았다. 그러나 운석은커녕 그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아내의 직감이 틀림이 없다는 믿음은 그대로였다. 창곤은 이날은 이곳에 쉬면서 몸과 마음을 충전시키고 난 뒤 병곤이 머물렀던 산간의 농가로 향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단둘이 호젓한 곳에 있게 되자 처음 만났던 시절보다 더욱 더 진한 사랑의 감정이 둘을 감쌌다. 두 사람은 아주 격렬한 사랑을 나누다가 달콤한 잠에 빠져 들었다.
병곤이 머물렀던 집에 도착한 것은 이튿날 저녁이었다. 워낙 지형이 험했고 길이 익숙하지 않은 탓에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집주인 할머니는 오랜만에 다시 찾은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했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주인으로부터 창곤이 마지막 갔었던 곳의 지형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고 최단 길까지 알아냈다. 이전에 창곤을 찾기 위해 왔을 때에는 구조대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가느라 주위에 신경을 쓰지 않았었기 때문에 창곤의 시신을 발견했던 곳을 확실하게 기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 날 둘은 며칠이 걸릴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단단히 무장을 한 다음 각오를 단단히 하고 그곳을 향해 출발했다. 힘겹게 그 부근에 도착해서 계곡의 가장자리에 텐트를 치고 가벼운 복장으로 수색을 시작했다. 몇 차례나 병곤이 추락했을 것으로 보이는 지점과 그가 흘러내린 곳을 살펴보았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실망에 잠겨 텐트 앞에 덜퍼덕 주저앉아 지친 몸을 쉬고 있으면서도 주변을 휘둘러보고 있던 서린의 눈에 이상한 물체가 어른거리는 듯 했다. 그녀는 발딱 일어서서 남편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창곤도 그 낌새를 눈치 채고 망설임 없이 그녀가 내민 손을 잡고 재빨리 일어섰다.
그녀의 눈에 띠었던 곳을 계속 주시하면서 올라가보았으나 홀연히 사라져버린 듯 했다. 마치 사막에서 나타났던 오아시스가 접근하면 사라지는 것처럼. 그녀는 하도 그것에 열중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헛것을 보았을 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실망스러운 표정이 그녀의 얼굴전체에 퍼지고 있을 즈음 갑자기 창곤이 바위틈으로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서린은 화들짝 놀라 그저 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10여 미터 아래로 내려간 창곤이 쌓여있는 나뭇잎들을 급하게 헤치더니 바위틈 사이에 보이지 않게 박혀있던 채집주머니를 꺼내들고 이것 보란 듯 서린에게 흔들어댔다. 주머니는 마치 누가 그곳에 단단히 숨겨놓은 것처럼 박혀있었다. 서린은 그것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쳐 올라왔다.
조심스럽게 들고 내려온 두 사람은 텐트 앞에서 거의 사계절을 거치면서 꽤나 낡아진 그 주머니를 열어보았다. 그 속에 들어 있던 상자에는 그들이 찾던 운석 조각들이 들어있었다. 병곤이 이를 발견하고 들뜬 마음에 급하게 비탈을 오르다가 추락하였을 것이고 이것은 그의 손을 벗어나 흘러내려 가다가 그곳에 처박힌 것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텐트를 쳐놓았던 자리에 나뭇가지로 작은 십자가를 만들어 꼽아 놓았다. 비명에 간 동생의 업적을 소박하게나마 기리자는 뜻에서였다.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서린은 자신의 생각을 얘기했다. 찾아낸 운석은 현재 엄청난 파란과 심리적 공황을 일으키며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빙하의 해역으로 떨어진 소행성의 일부임에 틀림없다. 즉 한 뿌리인 셈이다. 당신이 그 운석을 살펴보고 조사해보면 빙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반드시 나타날 거라 확신한다고. 창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의 말은 그의 생각에 다름없었다.
14. 암울한 미래
세상에 드러난 해빙의 실체
이창곤이 아내와 함께 운석조각을 찾아 헤매고 있던 그 시간에 한가람기자는 빙원과 관련한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분명 얼마 전 합동조사팀이 구성되어 빙원을 조사한다고 했었는데 이들에 대한 취재가 완전 통제되었고 수행되고 있는 조사내용이나 결과에 대해서는 일절 불통이었다. 재난본부 쪽에서 무언가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낌새를 눈치 챘다. 중국과 일본에서 일단의 정부요원들이 입국해서 어디론가 갔는데 이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그들의 입국목적과 일정 등에 대해서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었다.
단편적인 정보들을 취합하여 분석하던 중 한기자는 정부기관에서 발주한 대규모 지하벙커 공사에 대한 소문을 접하게 되었다. 정확한 공사의 내용과 설치되는 위치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그곳 외에도 규모는 다르지만 곳곳에 비슷한 형태의 지하구축물 공사가 진행된다는 뜬구름 잡는 얘기들이었다. 기자의 직감으로서 이것이 해빙과 관련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한기자는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해보려 했으나 그 이상의 것은 알 수가 없었다.
창곤과 대화하던 중 마침 선배한테서 전화가 왔던 것이고 그로부터 귀띔을 받게 되었다. 친구 중에 해빙조사팀에 참여했던 과학자가 있었는데 장기간에 걸친 조사를 끝내고 돌아온 뒤로 해빙과 관련된 것은 자신도 잘 모른다면서 그저 얼버무리고 지나가기에 급급한 인상을 풍겼다는 것이다. 한기자는 직접 그 과학자를 만나 설득해보았으나 처음에는 굳게 닫친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끈질긴 설득 끝에 조사결과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해빙의 정체가 외계생물체일지도 모른다는 놀라운 사실과 더욱 기막힌 것은 해빙이 언젠가는 지구 전체를 덮을 정도로 커져가고 있음에도 이에 대처할 방안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상쩍은 지하벙커는 이를 대비한 특별 시설임에 분명하였다. 정부기관 관계자와의 면담은 계속 거절되었고 겨우 성사되었다고 해도 사실을 알 수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다른 언론기관에서도 해빙과 관련하여 떠도는 각종 소문에 대한 추적을 시작했다는 얘기가 들려오자 다급해진 한기자는 지하시설이 건설되고 있을 것이라 나름 추정되는 곳을 무턱대고 돌아다니다가 결국 꼬리를 잡게 되었다.
그는 애용하는 지프차를 몰고 가장 유력하게 느껴지는 지역을 지나다가 주변에 비해 꽤나 험한 산을 보고 멈추었다. 왠지 당기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확실한 물증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산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구석 한쪽에서 희미하게 먼지가 일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순간 이거다 싶어 숲속을 헤집고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곳까지 최대한 가깝게 밀고 갔다. 더 이상 차로는 갈 수 없는 지점에 이르자 차를 세워 놓고 등산 복장을 한 다음 그곳으로 향했다.
얼마 가지 않아 철책이 나타났는데 그 위에는 빨간 색 사선이 그어진 표지판이 줄줄이 붙어있었다. 거기에는 ‘여기는 군사작전 지역이므로 출입을 엄금함’ 이라는 경고가 쓰여 있었는데 그것보다도 더 삼엄하다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이 보였다. 100여 미터 간격으로 세워져 있는 초소는 철책과 더불어 최전방의 지오피(GOP)를 연상케 했는데 경찰도 아닌 군인이 경계를 하고 있는 바람에 그는 바짝 긴장했다. 일단 그들에게 발각되지 않을 만한 나무숲사이로 몸을 숨기고 망원경으로 먼지가 날리는 곳이 어디인가를 살펴보았다.
일괄 조망하는 도중 눈에 확 띠는 것이 있었다. 산중턱에 만들어진 터널입구 주변에서 먼지가 살살 날리고 있었는데 그곳으로 들락날락하고 있는 트럭들 때문이었다. 들어가는 것은 비어있었으나 나오는 트럭에는 겉을 천막으로 덮었지만 무언가를 잔뜩 실은 것으로 보아 터널내부에서 파낸 흙이나 암반부스러기가 틀림없었다. 그는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터널입구로부터는 산골짜기를 향해 구불구불한 길이 뻗어있었는데 골짜기 너머로는 보이지 않았다. 한참동안 터널입구를 관찰하다보니 다양한 건설기계 중장비들이 나오고 있는 것도 보였다.
잠시 후 다른 중장비들이 들어가는 것을 보니 교대로 쉴 틈 없이 작업을 진행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분명 소문으로만 들리던 빙하기 대비 지하시설 공사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를 확인해줄 증거가 필요했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기로 했다. 밤이 되기를 기다려 아주 어두운 쪽의 철책 한 쪽 부분을 벤치로 뜯어내고 터널로 연결되는 골짜기 길로 최대한 낮은 자세를 유지하며 살금살금 뛰어갔다. 다행히도 초소의 경비병들은 경계심이 그리 강하지 않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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