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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아마도 얼음덩어리는 이 바이러스가 먹이를 소화하고 난 부산물일 것이다.(염빙 바이러스 (제20회))

by 허슬똑띠 2023.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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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곳을 ‘신세계’라 불렀다.

 

15. 실마리를 찾다.(계속)

 

부장은 긍정하다가도 이내 미심쩍은 표정으로 변하고는 했다.

“그것을 간접적으로 반증하는 일이 있었다는 겁니다. 준에게는 대학교에 다니는 여동생이 있는데 하루는 자기와 상의할 일이 있다면서 그에게 들려준 얘기 있었다고 하는데요, 동생이 인터넷으로 사귀던 한국의 청년에게서 오래 전 메일이 오고 난 뒤 소식이 끊어졌다며 침울한 표정으로 말하더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그가 사고를 당한 게 분명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마지막으로 보낸 메일에 운석인지 뭔지를 찾기 위해 상당 기간 동안 험한 곳을 여행하기 때문에 당분간 연락이 안 되어도 오해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었다는 군요. 그러니 이것은 바로 운석이 한국의 험한 산악지대에 떨어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또 그것을 찾아 나섰던 사람에게서 더 이상 메일이 오지 않았다는 건…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돌아오지 못했고… 아직 그것이 발견되지 않은 상태로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라고 하더군요.

그것 외에도 나름대로 한국의 언론을 모두 검색해 보았는데 그 운석을 발견했다는 기사는 어디에도 없었다는 겁니다. 만일 이미 한국에서 발견했다면 이에 대한 내용을 숨기고 발표하지 않을 리 만무하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우리 조직원을 선발해서 운석이 떨어진 곳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자는 얘기죠. 확률은 반반이라고 합니다. 만일 이것을 발견한다면 우리 조직은 다시 탄생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후 김포공항에 오사카에서 출발한 일본항공의 여객기가 도착했다. 입국한 여행객 중에는 일본 단체 관광객들에 섞여 있는 건장한 사내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입국심사대를 통과하고 있을 때 정보부 요원 한 사람의 눈에 띠었다. 두 세 사람씩 관광객들 사이 여기저기에 끼여 있는 이들의 움직임을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다가 그들의 신상을 재확인 해보았으나 유달리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여 그대로 넘어가고 말았다.

 

정체를 드러낸 외계생물체 염빙바이러스

 

운석의 조사에 들어가면서 서린이 옆에서 조수로 도와주었다. 얼마 되지 않은 연구인원이라 다른 연구에 투입된 직원의 손을 빌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창곤은 고성능 전자현미경으로 네 개의 운석 중에서 먼저 큰 것부터 조사하기 시작했다. 로봇 팔이 운석을 이리저리 돌릴 적마다 수십만 배로 확대된 표면이 옆에 있는 모니터에 생생하게 표출되었다.

그러나 울퉁불퉁한 바윗돌 같은 표면에서는 생물체의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계속해서 나머지 작은 것 세 개를 모두 조사해보았으나 역시 아무런 흔적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면 소행성의 전체에 이 바이러스가 포진하고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덜컥 들자 허탈감이 기운을 쏙 빼고 말았다. 옆에서 그를 돕고 있던 서린 역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비벼대는 창곤을 침울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그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그러자 그는 살며시 아내의 손을 잡아끌어 자신의 얼굴에 가져가 비비댔다. 그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던 서린이 혹시 운석의 내부에 숨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냐는 말을 위로 비슷하게 건넸다. 미소를 띠며 일어선 창곤은 자신도 거기에 희망을 걸고 있다면서 그녀의 불에 입맞춤을 했다. 다시 분석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작은 것부터 표피를 조금씩 단계적으로 걷어 내가면서 현미경판에 올려놓고 끈질기게 관찰하였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제일 큰 것의 반쯤이 벗겨져 나갈 즈음이었다. 기대감 역시 그 만큼 벗겨져 나가 무의식인 손놀림이 계속되는 참이었는데 모니터를 바라보던 창곤은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함께 바라보던 서린도 역시 뒤로 물러서면서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손으로 가렸다. 전혀 본적이 없는 끔찍한 모습의 물체가 여러 개 모니터에 떠있었다. SF영화에서 자주 표현되곤 하는 걸쭉한 분비물을 질질 흘리며 지구인을 공격하는 지저분한 그런 에어리언 모습에 근접한다고도 볼 수는 있었다. 하얀 색깔을 띠고 있는 몸체 좌우로는 가시와 같은 것들이 돌출되어 있었고 표피 전체에는 울퉁불퉁하고 장방형 형태를 하고 있는 구멍들이 빈틈없이 채우고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사체에 우글거리는 구더기들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 그것을 본 순간 괴이한 모습에 당황했지만 이제는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꼼짝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창곤을 더욱 황당하게 만들었다. 단순한 박제가 필요한 게 아니지 않은가. 문득 동생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 극한의 상황에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으로 마치 동면하듯 모든 기능을 정지해놓고 있을 수도 있었다.

한 가닥 가능성을 열어놓고 이놈의 생사여부를 확인해보는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분리기를 통하여 이들을 안전작업박스에 옮겨놓고 배양유리통에 몇 마리씩 담았다. 차례로 단순한 민물부터 유황성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질을 주입하면서 이들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어느 것에서나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정말 이놈들이 죽어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미칠 것만 같았다. 그 끝자락에서 벼락같이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해빙의 정체에 대해 여태껏 확인된바 없이 바다에 빠진 소행성 파편일 것이라는 추정만 무성했지만 일단 그것이 맞는다고 본다면 이것의 성질은 염분과 관계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염분을 투입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전혀 움직임이 없었던 바이러스가 서서히 활성화되었고 얼음덩어리를 토해내면서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계속 염분을 공급하자 그 덩어리는 계속 커져갔다. 분명 염분이 이들에게는 생장을 위한 자양분임에 틀림없는 것 같았다. 염분을 더 이상 공급하지 않자 바이러스가 다시 활동을 중지하고 죽은 듯 그 상태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것이 이를 반증하고도 남았다. 해빙을 움직이는 정체는 바로 이 바이러스일 것인데 동중국해로 떨어진 소행성 속의 바이러스는 애당초 숫자도 많은데다 바닷물속의 무궁무진한 염분을 섭취하면서 셀 수 없이 불어났을 것이고 저렇게 커져갔던 반면 육지로 떨어진 파편 속에 있던 것은 염분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대로 꼼짝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창곤은 결론을 얻었다. 이것은 아주 특이하게도 염분을 먹이로 살아가면서 세포분열로 개체수를 늘려가는 미생물인데 얼음덩어리는 그들이 먹이를 소화하고 난 부산물일 것이다. 이 부산물은 또한 자신들을 공격하는 외부세력으로부터 자기들을 지켜주는 방패막이로 활용되는 것 같기도 하였는데 이들은 위협을 가하는 상대가 나타나면 본능적으로 이를 감지하여 집단적으로 얼음 방패막이를 조종하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창곤은 이를 ‘염빙(鹽氷) 바이러스’라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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