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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로즈파피(Rosepoppy) (제 17회)

by 허슬똑띠 2022.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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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회장의 일기(2)

 

그래서 그녀를 끌어드려 이를 덮고자 하였었다. 그녀가 이를 모를 리 없었다. 짐짓 모르는 채 하면서 그가 원하는 대로 회사 돈을 챙겨주었으며 이를 완벽하게 회계 처리하여 메웠다. 그럼에도 정영길은 항상 불안해했다. 그런데 갑자기 근심거리를 없애줄 테니 자기와 결혼 하자고 제안해왔다. 정영길은 당돌한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기 매우 어려웠다. 그는 그녀가 존재가 너무 소중했고 아주 영리했기 때문에 그녀가 없으면 자신의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릴 수 있음을 잘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남민희는 정사장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드린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근원적으로는 자신의 체향에 완전 굴복하였기 때문이다. 부차적인 이유로는 정영길이 엉뚱한 착각에 빠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는 정사장에게 골칫거리를 없애주겠다고 했었는데 그녀가 꽤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결혼하면 그 돈을 활용할 수 있으리라는 뜻으로 받아드렸던 것이다. 그녀가 설마 제갈명사장을 제거하는 그런 끔찍한 일을 벌이리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제갈사장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도 우연으로 생각했었다. 이는 그녀가 노리는 바이기도 했다.

회사의 운수반에는 조용진이라는 골칫거리 인물이 있었다. 그는 주정뱅이였고 걸핏하면 주사를 부리기 일쑤였다. 그러니 항상 돈에 쪼들려 살았다. 그러나 그는 교통사고를 내는 일은 없었고 제갈사장의 말은 절대 복종하였다. 그래서 그나마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조용진은 남민희로부터 제안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강하게 거절하였다. 그런 그도 은근히 끈질기게 유혹하는 그녀에게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곤궁한 처지에 있는 그에게는 막대한 성공보수가 피할 수 없는 유혹의 미끼였다. 그가 망설였던 것은 그를 계속 회사에서 일하도록 해준 제갈사장과 관련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런 상황이 지속될 지 장담할 수 없었다. 조용진은 덤프트럭을 모는 친구에게 제안하여 둘이서 일을 꾸몄다. 두 사람이 좁은 길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위협적으로 차를 몰아 제사장의 승용차가 낭떠러지에 떨어지도록 만들었고 제갈명 사장부부는 사망했다. 

남민희는 당일 외삼촌의 차를 빌려 타고 와서 그 주변에 있었다. 제대로 일을 하는지를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사고가 나자 확실하게 확인하려고 사고현장에 내려갔는데 부인이 죽어가면서도 어린 아이를 필사적으로 껴안고 있었다. 두 살배기 아이는 무사한 채 잠들어 있었다. 아이를 데려와 곧바로 삼촌의 집으로 가서 그 아이를 맡겼다. 그녀가 뜬금없이 아이를 데려온 것은 일말의 측은지심이 발동되었기도 하고 선계윤의 아이를 떼다가 잘못되어 불임이 되었기도 하다. 이는 그녀에게 아이에 대한 미련은 남아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사고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운전부주의로 인한 사고사로 결론을 내렸다. 어린 아이가 있었다는 회사 당직자의 증언을 듣기는 했으나 사고차량에는 부부 두 사람뿐이었다. 그래서 사고 당시 밖으로 튕겨져 나간 것으로 판단하고 주변을 수색하였으나 찾을 수 없었다. 결국은 아이는 없었던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런 기사를 읽으면서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토록 원했던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아픔이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는 안도감에 덧 씌워져서 그랬다.

제갈사장이 사망한 후 정영길이 일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제사장의 재산을 접수하였고 홀로 남게 된 큰 아들은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이혼하고 그녀와 결혼하기 전 어디론가 보내버렸다. 말로는 외삼촌이 와서 데려갔다고 했다. 그녀는 그렇게 믿었다. 마고도는 그녀가 그래서 가람을 보았을 때 제갈사장을 떠올리고 혹시나 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만나 그가 고아 출신이라고 밝히니 전혀 다른 인물로 알았을 것이다. 제갈사장이 죽고 나서 그녀는 정영길에게 재촉했다. 자신이 약속을 지켰으니 당신도 약속을 빨리 지키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정영길은 부인에게 얼마간의 위자료를 주고 본 부인과 이혼했다. 살길을 찾기 위해서다.

그후 정경길은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하다보니 회사가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다. 아마 본처와 이혼할 때까지만 해도 후회감이 적지 않게 남아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업이 번창 하고 여유도 생기자 그의 호색기가 다시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남민희 모르게 한 여인과 깊은 관계에 빠져 들었고 아이까지 갖게 되었다. 그는 내심 남민희와의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 않음에 실망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이런 것이 그녀의 안테나에 잡히지 않을 리 없었다. 그녀에게 또 다른 증오심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사전에 치밀하게 구상했다. 정영길이 경주 지역으로 출장을 가게 되면 항상 기존에 묵었던 호텔의 지정 객실에 묵는다는 것을 알았다. 여행을 간다는 핑계를 대고 내려와 그 방에 투숙했다가 출입문 키를 복제해왔다. 그 외에 범행을 위한 것들을 준비해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영길이 또다시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애인이 따라간다고 했다. 이만한 호기도 없다. 먼저 호텔에 간 뒤 청소부로 변장하여 객실에 들어가 흡입마취제가 든 방향제통을 설치해놓았다. 타이머를 부착시켜놓아 그들이 잠든 시간에 작동되도록 했다. 두 사람 다 곯아떨어진 틈을 타서 일을 잔행하기란 여반장이었다. 정영길이 한 것처럼 철저히 꾸몄다. 일을 끝낸 후 환기를 시키고 방향제통을 회수하여 나왔다. 시간은 새벽 2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나이트클럽에서 나오는 사람들에 섞여 나와 외진 곳에 주차시켜둔 차를 몰고 곧장 서울로 향했다. 출발하기 전 번호판은 바꿔달았다. 비서가 전화로 깨워 겨우 일어난 정영길이 바닥에 처참하게 널브러져 있는 여인의 주검을 보고 아연실색하여 우왕좌왕 하던 시각인 8시쯤에는 집에 안착해 있었다. 가사도우미는 오후에 나오기로 되어 있어서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후 정영길은 이러한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살인죄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감옥에서 자살한다. 이후 남민희가 경영권을 쥐고 회사를 운영해 나간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삼촌에게 맏겼던 아이를 양자로 입적시킨다. 사실 그 아이는 제갈명사장의 둘째 아들이었으나 그녀는 그녀 삼촌의 아이를 입양한 것으로 공표한다. 

마고도는 그녀가 이러한 행동을 한 이면에는 제갈명사장에 대한 연민의 정을 끝내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고 보았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일편단심 민들레 이지 않은가? 양귀비의 아름다운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로즈베이의 독성을 품고 있는 그녀의 심성 내부에 이와 같은 여린 마음씨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조용진과 관련한 이야기가 마지막이었다.

창립특집을 위한 인터뷰가 있고 나서 얼마 후 남사장을 통하여 조용진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는 메모를 받았다. 이 때 그녀는 진즉에 그를 처리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가 처음에 주었던 돈으로 거창하게 사업을 시작했다가 망한 뒤 비밀을 지킬 것을 빌미로 몇 번 더 손을 벌렸다. 그래서 그가 비밀을 누설하면 그도 함께 엮인다는 사실을 단단히 주입시키고 각서까지 받은 후 돈을 더 주었다. 그 뒤로 그는 전혀 그녀의 주면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돈까지 다 까먹고 완전 개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냥 두었었다. 하지만 슬슬 손을 벌리는 작태를 다시 보이고자 하고 있다. 그래서 이젠 후환을 없애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그를 일찌감치 쉽게 처리할 수 있었음에도 다른 사람과 달리 그냥 둔 것은 그가 그녀에게 지른 증오의 불길이 그다지 크기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달리 마음을 먹었다. 그러자 언젠가 연구소장으로부터 들었던 브리핑 내용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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