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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인류리셋음모에 관한보고서(제3회)

by 허슬똑띠 2022.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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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의 진술



라온은 부모님의 기일에 산소를 방문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추수를 거의 마친 주변은 오후가 되면서 지나다니는 차량이나 사람들도 거의 없어 더욱 한가로운 고요함에 쌓여 있었다. 우로 굽은 길을 지나자 오른편으로 작은 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왼편 언덕의 화려한 단풍에 잠시 눈길을 주었다가 앞을 바라보는 순간 강물위로 빛나는 불빛으로 눈이 부셔왔다. 햇빛이 강물에 반사된 것인가 했는데 어느 순간 사라졌다.
환상처럼 느껴져 잘못 본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그 부근에 이르렀을 때 강가에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있었다. 궁금했지만 오늘 저녁에 마무리할 일이 있고 해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지나치려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것에 가까워지자 브레이크를 밟지도 않았는데 차가 그것에 끌리는 듯 그 존재 곁에 멈춰서버렸다.

라온은 섬뜩했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올리고 조심스럽게 관찰해보았지만 천사들을 감싸 도는 것 같은 야릇한 빛에 쌓여 있어 보일 듯 말 듯 했다. 다행히 유령과도 같은 존재는 아닌 것 같아 안심은 했지만 놀라움이 진정되지 않아 잠시 눈을 감았다. 슬그머니 눈을 떠보니 어느새 빛과도 같은 것은 사라지고 확연하게 드러난 것은 뜻밖의 외국여자였다. 그것도 한 미모하는...
라온은 바로 전에 보았던 것들은 어느새 잊고 그녀가 차를 태워 달라고 하는 것으로 여겼다. 확인하기 위해 차에서 내려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차를 살펴보면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라온은 괜스레 불안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녀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으므로 조수석 쪽으로 다가가 차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아름답지만 무표정한 얼굴로 라온을 바라보던 그녀는 은근한 미소를 띠며 차에 오르고자 했다. 그 모습이 상당히 부자연스러워 보여 도움을 주려다가 말았다. 손을 잡아주는 것조차 꺼려졌다.

어렵사리 그녀가 타자 차문을 닫고 운전석으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아 시동을 걸기 전 그녀를 보자 그녀가 다시 싱끗 웃었다. 당연히 우리말을 하지 못할 것이라 여기고 영어로 물었다.
“You must be first in Korea. May I ask where you are from?"
”그래요, 전 방금 외국에서 왔어요.“
그런데 뜻하지 않게 우리말로 답하는 게 아닌가. 한데 말소리에는 미묘한 울림이 있었고 머릿속에서 자동적으로 생성되는 느낌이었다.
‘뭐지 이 느낌은?’
하지만 그 느낌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눌리어 혹시 미녀들이 많다는 우크라이나나 벨라로스에서 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으로 전이되었다.
그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걸까?
“그래요 바로 벨라루스에서 방금 도착했어요.”
그녀는 묻지도 않았는데 그의 궁금증에 대해 해명이라도 하듯 말했다.
이때도 재미있게 목소리가 역시 울렸다. 아니 울렸다기보다도 역시 그냥 머릿속에서 말들이 떠올랐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듯 했다. 더 희한했던 것은 그녀가 말할 때 슬쩍 곁눈질했는데 입술의 움직임이 없는듯해서 더욱 그녀가 신비로웠다. 그래서였는지 그녀가 혹시 외계에서 왔는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우주공간에서 빛나는 북극성 폴라리스가 떠올랐고 영화 인터스텔라의 장면도 나타났다. 그러자 우연인지 몰라도 그녀가 자신의 이름은 폴라리스 스텔라라고 하는 게 아닌가.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이번엔 그녀의 입술이 움직이고 울림현상도 없어 그저 착각으로 치부했고 SF영화 같은 생각도 버렸다. 뒤이어 뜬금없이 당분간 당신에게서 머물 수 있는지 물었다. 자기는 아는 것도 없고 거처도 없어서 여러 가지를 배우려면 거처가 필요하다고 했다. 라온은 또 머릿속이 울리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승낙을 했다. 그래놓고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괜찮을까 하는 걱정도 들기는 했다. 그녀가 진짜 벨라루스에서 왔는지, 그곳에서 왔다면 왜 여기에서 나타났는지 전혀 알지 못하지 않은가 말이다. 여인네 혼자인 것도 그랬다. 그러자 그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듯 갑자기 잊은 게 있다면서 그것을 가져오겠으니 잠시 기다려달라고 했다. 차에서 내리는 그녀를 보며 의구심을 품은 것에 대해 겸연쩍게 여겨졌다. 강변의 풀숲을 타고 내려갔던 여인이 묘하게 생긴 숙녀용 가방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차에 다시 타자마자 그녀는 가방에서 여권을 꺼내 보여주었다.

라온은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며 난처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아첨 섞인 말투로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사는 유라온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뵙게 되서 참으로 반갑습니다. 누추하지만 제 집 손님으로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네 저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폴라리스 스텔라입니다.”
그녀는 이제는 입술을 움직이며 말했다. 머릿속의 울림이 완전히 사리진 것이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아 그러시군요! 미녀가 많이 산다고 들었습니다.”
기분이 상쾌해져 농담 섞인 말까지 했다. 그러자 그녀는 빙긋 웃으면서 이제부터 폴라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라온은 들뜬 기분에 신나게 차를 몰고 집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한 뒤 라온은 폴라에게 서울의 야경도 구경하고 한국음식도 맛볼 겸 외출하자고 제의했다. 폴라가 흔쾌히 동의하자 먼저 여행의 피로를 풀기 위해 간단히 샤워하기를 권했다. 타월을 들고 오자 뭔가 잘못되었는지 약간 멍한 표정을 보였다. 라온은 그녀가 오해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아 된다고 했다. 그러나 멈칫하던 폴라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타월을 받아들었다. 라온은 안심하면서 그녀를 욕실로 안내했다. 1시간이 지났는데도 욕실에서는 감감무소식이었다. 라온은 불안해서 방과 욕실 문 앞을 왔다 갔다 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욕실 문에 귀를 기울이는데 나오는 소리가 들려 재빨리 주방으로 달려갔다. 욕실 문이 열리는 것 같아 슬쩍 그쪽을 바라보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욕실에서 나온 폴라는 마치 옷을 입은 채로 풀장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 같았다. 수건은 그냥 들고 있었다. 수건 몇 장과 헤어드라이기를 건네주며 침실에 들어가서 옷을 벗고 몸을 닦으라고 말한 뒤 라온은 근처 옷가게로 달려갔다. 그녀의 체구를 대충 떠올리며 속웃부터 겉옷까지 한 벌씩 사들고 헐레벌떡 들어왔다. 이런 해프닝을 벌인 후 둘은 수많은 불빛이 수놓은 거리로 나와 잠시 서울의 야경을 즐긴 후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샤워행태에 대해서는 나중에 묻기로 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놀라운 일이 벌어져 라온을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었다. 식사하면서 반주로 술을 권했더니 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조심스러워 술을 조금만 시키려고 했으나 그녀가 계속 원했기 때문에 삽시간에 술병이 쌓였다. 라온은 걱정이 되서 술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지켜봤지만 그녀는 전혀 취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폴라를 침실에서 자게하고 라온은 서재에서 잠을 청했다. 뜻밖의 외국여인을 만나게 된 것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곰곰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분명 깊이 잠들었을 것 같은데 꿈속에서 몸이 둥실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몸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듯 했다. 순간 잠이 깼다. 처음 꾸는 꿈이라 다소 뒤숭숭했으나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둘째 날은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다. 명동거리나 대형 쇼핑몰도 가보았다.
그녀는 매우 기분 좋아했다. 도서관과 박물관을 가고 싶다고 해서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중앙도서관을 방문했다. 나름 적당하게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데 라온을 놀랍게 한 것이 있었다. 그저 휘 둘러보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오면서 그녀가 본 것들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하는 것이 라온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로 하여금 점차 그녀에 대한 경외감을 갖게 만들고 있었다. 이상하게 이날 밤도 라온은 잠을 자면서 어제 밤과 똑같은 경험을 했다. 잠시 깨어난 라온은 몸에서 빠져나간 것이 자신의 기가 아닐까도 생각하기도 했다. 문득 폴라가 공연히 걱정되었다. 자고 있는 침실을 조심스럽게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작고 고른 숨소리를 듣고 나서 안심이 되어 문을 닫았다. 다시 잠자리에 들고 나서는 매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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