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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인류리셋음모에 관한보고서 (제4회)

by 허슬똑띠 2022.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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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리스 스텔라와 지낸 3일

 

셋째 날은 집에서 직접 라온이 음식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그가 나름대로 배운 레시피 대로 요리를 하는 동안 그녀는 그의 서재에 틀어박혀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종종 그가 만든 음식을 맛보라고 들러보면 그녀는 컴퓨터로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거나 책장의 서적을 모조리 읽어보고 있었다. 그녀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본 라온은 신기했다. 아니 신비롭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울트라러닝을 습득한 사람보다 몇 십 배나 더 빠르게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저 건성으로 그러는 것이 아님을 한 눈에도 알 수 있었다. 독서하는 그녀의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자 그녀는 읽고 있던 책을 들어보였다. 그러면서 성경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다고 했다.

“세상에서 제일 많이 팔리고 읽힌다는 책이죠. 그리고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으니 그렇죠.”

라온은 일단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녀가 성경을 처음 본다는 점이 의아스러웠고 흥미롭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지만...

 

그녀는 저녁식사를 하면서 내일은 떠나야겠다고 했다. 자기 나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짧은 일정이 아닌가 묻고 싶었지만 다 그럴만한 사유가 있겠지 하면서 그만 두었다. 대신 이별을 위한 파티를 위한답시고 첫날 그녀가 잘 마셨던 포도주를 잔뜩 주문했다. 주문해놓고 보니 실수한 것 같았다. 내일 출발하는 데 지장이 생길 것 같아서였다. 그녀가 전혀 관계없다고 해서 두 사람은 밤늦도록 마셔댔다. 각자 잠자리에 든 후 이날 밤도 똑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이틀 밤 경험했던 것과는 다른 묘한 기분이었다. 지금껏 한 번도 맡아본 적은 없으나 사람의 혼을 쏙 빼앗아 가는 듯한 향기가 퍼지는 가운데 느끼는 기분 좋은 환상이었다. 정확히 알 도리는 없지만 그 냄새가 천상의 향기가 아닐까 했다.

 

라온은 잠들기 전에 다음날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난 후에 그녀를 보내려 작정했었다. 그래서 취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았지만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외출 준비를 했다. 준비하면서 그녀의 방을 노크했다. 그런데 응답이 없었다.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폴라의 이름을 부르며 침실 문을 살며시 열었다. 그래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문을 완전히 젖히고 보니 침대는 깔끔히 정리되어있으나 정작 주인공이 보이지 않았다. 불안감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지독한 공포로 변해갔다. 왜 그런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곁에 있던 삼일 간의 포근함이 그렇게 만드는 것일 게다. 정신없이 온 집안을 샅샅이 다 살펴보았지만 그녀의 모습은 물론 체취조차 한줌 남아있지 않았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난 라온은 그 때가 무척이나 간절한들 마치 꿈속을 거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오경사가 그의 정신을 일깨우며 한 마디 했다.

“이 이야기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네요. 부인이 초능력자라는 것을 뺀다고 하면요.”

“듣는 분들은 대개가 그렇게 말씀하실 터이니 제가 경험했던 일들을 말하고 싶겠습니까?”

라온은 힘이 쭉 빠진 채로 불쾌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자 이경위가 그를 달래듯 말했다.

“그 말씀 이해합니다. 하지만 듣는 사람의 입장도 난감합니다. 세상에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게 사실입니다. 헌데 면밀하게 조사해보면 상당부분은 꾸며낸 것으로 판명되고는 합니다. 그러다보니 본의아니게 우선은 허구일 수도 있다는 전제를 깔고 듣게 됩니다. 이러한 점도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초반에서 벗어나지 않은 듯하니 이야기를 계속하시죠. 우리도 더욱 진지한 자세로 듣도록 할 테니까요.”

이 말에 라온은 조금 기분이 전환된 듯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폴라가 떠난 뒤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함께 했던 그 환상적인 삼일, 이 모든 것이 현실에서 겪은 일이 아닌 듯, 꿈속인 듯 헷갈리기만 했다. 그럴수록 그리움은 더욱 깊어지기만 했다. 역으로 짧은 기간이지만 알게 모르게 생성되었던 연정은 그녀 존재외의 모든 것을 눌러놓았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이 보고 싶어 안달복달하는 심정은 그녀와 함께 찍었던 장면을 떠올려주었다. 부리나케 그것을 재생해보다가 까무러칠 뻔했다. 놀랍게도 그 동영상 속에는 그녀만 보이지 않았다.

‘그럼! 내가 그동안 귀신하고 놀았단 말이냐? 아냐! 아냐! 아냐! 이건 말도 안 돼!’

휴대폰을 내동댕이치고 울부짖으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소름이 돋기도 했으나 환하게 웃으며 떠오르는 폴라의 모습이 이내 이를 거두어 갔다. 한데 거꾸로 눈앞에 어른거리는 폴라의 모습이 한숨과 더불어 사그라져 낡아빠질 대로 낡아버린 가을빛과도 같은 짙은 시름의 바다에 동동 떠다니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멍하게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휴대폰도 거의 점검하지 않았다.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일을 재개하다가 확인할 사항이 있어 휴대폰을 열었다. 몇 가지 사항을 체크하다가 폴라라는 파일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파일을 열어보니 폴라의 모습이 환상처럼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너무도 반가워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 속에서 보이는 폴라의 모습과 함께 조용한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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