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스텔라의 편지
“이렇게 라온님을 떠나오게 돼서 정말로 미안해요. 라온님을 만나게 되고 삼일을 보낸 것은 제게 행운일 뿐만 아니라 무척이나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라온님이 제게 아주 소중한 희망 두 가지를 주셨다는 거예요. 하나는 새로운 세계를 위한 방향이고 또 하나는 그러한 세상에서 꽃피울 배우자와 후손들이랍니다. 이것은 우주의 신께서 라온님과 저에게 주신 선물이라 여겨집니다. 이런 선물이 진정한 우리의 희망이 되도록 하기위해서 많은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당분간 라온님을 떠나있게 된 거예요. 이런 연유를 이해해 주시고 나무라도 좋으니 저에 대한 사랑만은 꼭 간직해 주세요. 때가 되면 저는 틀림없이 라온님에게 돌아갈 거예요. 다시 만날 그날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폴라...”
라온은 이 영상을 보고 난 뒤에도 몇 번이나 다시 보았다. 선물이든가 우리의 희망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는 당장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라온 자신도 폴라에게로 향한 연정의 싹을 한껏 돋아놓았는데 그런 감정이 폴라에게도 일었었다는 것이 라온의 감정을 무척이나 뜨겁게 달구었다. 게다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대놓고 말하지 않는가. 교차 확인한 사랑의 감정과 다시 재회할 수 있다는 벅찬 희망이 그를 혼절하다시피 만들었다. 라온은 거의 기절하여 침대에 쓰러졌다. 수시로 폴라의 영상을 보면서 즐거움과 함께 평정심을 유지하며 지냈다. 하지만 그 뒤로 아무런 연락도 없이 시간은 무정하게 흘러갔다. 차츰 폴라의 영상은 단지 마술과도 같은 장난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었다. 더구나 그 영상이 어느 순간 휴대폰에서 사라지는 바람에 그런 의구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결국 그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이나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 역시도 환청이나 착각에 불과하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허탈해져서 폴라라는 존재는 물론이고 그녀와의 추억을 억지로라도 잊으려했다. 이 모든 것은 유가일몽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고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완전 불가능했다. 오히려 커져만 가는, 폴라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풀 길 없는 깊은 시름으로 변해갔다.
참고로 유가일몽이라는 말은 남가일몽이라는 말을 차용한 것으로서 남쪽 나뭇가지에 걸린 꿈이라는 말 대신에 유라온의 나뭇가지에 걸린 꿈이라고 변형한 말이다. 즉 유라온의 일장춘몽을 뜻한다.
그리움은 그리움일 뿐인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부지기 수였지만 세월은 진이 빠진 채로도 무심히 흐르다보니 다시 부모님 기일이 찾아왔다. 내일을 위해 오늘은 기필코 제대로 잠을 자야겠다하고 잠을 촉진시키는 약까지 먹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눈을 뜨게 한 것은 얼굴을 맴도는 부드러운 촉감이었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모습이 아주 익숙하였음에도 사실이 아니라고 여겨져 눈을 떴다 감았다 하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라온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폴라였다. 너무나 감격스러웠으나 그 자리에서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아무런 말 또한 낼 수 없었다. 그러자 폴라가 그의 옆에 나란히 누었다.
“저는요, 신과도 같은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요.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그런 여신이라고나 할까요? 물론 당연히 라온님과 함께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어요. 라온님의 도움이 절실하답니다.”
폴라의 말과 함께 묘한 향기가 귀와 코끝을 간질이며 퍼져왔다. 라온은 문득 전에 폴라가 떠나는 영상에서 말했던 새로운 세계의 방향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의미가 무언지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진지하게 답했다.
“폴라님! 폴라님께서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도와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슬프게도 저에게 그러한 능력이 없다는 겁니다.”
“아니에요. 라온님의 능력은 무궁무진하세요. 라온님이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진실을 곡해하고 있기 때문에 느끼지 못하고 계실 뿐이랍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문제는 안 된답니다. 오로지 라온님만 항상 제 곁에 있어주시면 되어요. 계속 저한테 영혼의 깊은 숨을 불어넣어 주시면서요.”
“영혼의 깊은 숨이라고요? 영혼의 깊은 숨....”
무슨 뜻인지 몰라 중얼대고 있는데 눈이 부셔왔다. 밤새 창문을 열어놓고 있었나 보다. 지나치는 바람이 열려진 틈 사이로 커튼을 잠깐 젖혔다 간 사이에 뚫고 들어온 찬란한 아침햇살이 잠시 눈 주위를 간질였기 때문이었다.
‘영혼? 영혼이라고?’
그런데도 아직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착각은 계속 이렇게 중얼거리게 만들었다. 어느새 폴라와 헤어진 지 1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그녀와 우연히 만나 지낸 시간은 삼일 정도뿐이었고 더구나 사랑과 그리움을 불러일으킬 만한 일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간절히 보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이러한 꿈도 다 꾸어지나 보다 했다.
‘그래, 꿈은 꿈일 뿐이지 더 이상 뭐 있겠어?’
간절했던 마음이 속상해져서 이렇게 중얼거리다가 문득 뒷말의 의미가 궁금했다. 왠지 모르게 안타깝게도 느껴졌다.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몰라도 폴라가 라온의 영혼과 함께 하려는 간절함, 그것을 자기가 어서 충족시켜주어야 할 것 같은 긴박한 마음이 살포시 일렁거렸다.
“아니야! 꼭 꿈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아쉬운 뭔가 있어...“
한참을 방금 꾸었던 꿈속에서의 폴라의 손길 촉감 속에 빠져 회상하다가 그녀가 말없이 떠난 부분에 와 닿았다. 허탈감이 마른 장작에 붙은 불길처럼 타오르더니 순식간에 모든 회상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라온의 들끓는 변덕은 항상 이랬는지 모른다. 모든 것을 털어버리듯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늘 만큼은 부모님과의 추억에 집중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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