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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스토리

인류리셋음모에 관한 보고서(제6회)

by 허슬똑띠 2022.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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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리스 스텔라와의 재회 1

 

 

그런 마음가짐이 효과가 있었는지 라온은 모처럼 평온한 기분으로 부모님 산소를 다녀올 수 있었다. 그래서인가?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폴라와 처음 만났었던 곳을 지나치는 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눈에 익어 보이는 시냇물이 망각의 저편에 있던 추억의 조각들을 급하게 모아들였다. 쭉 뻗은 길이 시냇가를 따라 굽어지는 곳에 이르자 라온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끔뻑거렸다. 그 때처럼 지나치는 차량이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먼 산기슭에 불쑥 튀어나온 붉은 바위에 눈길을 주게 했다가 전방으로 원위치 시키도록 만들었다. 순간 그 가을날 그때처럼 잠시 숨이 턱 멎는 듯 했다. 낯익은 복장을 한 어떤 여인이 길이 꺾이는 곳에 홀연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멀리서 익숙하게 차를 향해 손을 흔들어 댔다.

‘이건 분명 데자뷰에 불과해!’

괜히 부인하면서도 라온은 그녀 바로 옆에 급정거했다. 조급한 마음에 알게 모르게 속도를 높였었나 보다. 차가 멎은 후 일련의 과정은 그 때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뒤 좌석에 배낭을 올려놓고 조수석에 앉은 여인은 역시 앞만 바라보았다. 라온은 곧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데쟈뷰이기에는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도 않고 그녀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 물었다.

“외국에서 오셨나요?”

“네 벨라루스에서 방금 도착했어요.”

여인이 이 말과 함께 라온을 돌아보았다. 라온도 따라 그녀에게 고개를 돌리며 차를 세웠다. 어찌 폴라가 아니겠는가. 그녀는 처음 대면했던 때와 전혀 다를 게 없었다. 그때와 다름없이 생글생글 웃는 모습은 한참이나 더 아름다웠다.

라온은 그녀를 포옹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으나 그냥 손을 내밀어 악수만 했다. 그녀의 온기가 신묘하게도 간밤의 꿈이 현실화 된 것을 축복해주는 듯 했다.

“라온님이 너무도 그리웠어요. 그동안 참느라 아주 혼났어요. 오늘은 우리요,  제 집에 가요. 보여드릴 게 있어요.”

“집에요?”

라온은 자기도 모르게 되물었다.

“네 제집, 아니 우리 집에요.”

폴라는 생글생글 웃으며 대꾸했다. 라온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국내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가 집을 마련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닐 터인데 어찌된 일일까? 잘은 모르지만 우리 국적을 취득하려면 적어도 2년이나 3년쯤은 족히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다른 한국인과 결혼했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또 이상해진다. 임자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한 것처럼 연극을 한 것도 말이 안 된다. 하물며 라온의 집에 삼일씩이나 머물 수 있을까?  더구나 처음에는 자기 집이라고 했다가 우리집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건 또 뭘 의미하는가?

 

“무슨 생각에 그리 빠져계시나요?”

라온이 머뭇대자 그가 왜 그런지 이해한다면서 집문서를 꺼내 보여주었다. 생뚱맞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받아들고 살펴보았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라온은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집의 소유주가 라온으로 되어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우리집이라고 했나?

“정말 죄송해요. 미리 얘기를 못한 게 아니구요, 먼저 얘기를 안한 건 오늘 이렇게 놀라게 하려고 했던 거예요. 자세한 건 후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출발하시지요. 거기 주소가 있으니까 가실 수 있으시죠?”

“알겠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미리 말씀을 해주셨으면 혼자 애쓰시도록 하지 않았을텐 데~~”

완전히 의문이 풀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속사정에 대한 해명 아닌 해명에도 복잡하던 머릿속이 웬만큼 밝아졌다. 그런데 이젠 다른 불안감이 스멀거리며 엉뚱한 질투심이 발동했다. 집의 명의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집을 마련하는 데에는 배경이 있을 것이다.

“혹시요~~ 남자가 있는 건 아니겠지요?”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벨라루스에서 왔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그 외에는 어떤 것도 물어보지 않았었다. 다만 그녀가 보낸 영상메시지에서 라온을 사랑한다는 말을 했었기 때문에 철썩 같이 그녀를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질문이 툭 튀어 나왔을까?

“네? 아아~~ 맞아요! 남자가 아니라 남자들이어요.”

남자들이라는 말에 라온은 화들짝 놀랐다. 라온이 어안이 벙벙해져 말을 잊고 있자 폴라가 미소 지으며 어서 가자고 재촉했다. 라온은 일단 폴라를 믿기로 했다. 가보면 알겠지 하면서 그녀가 가자고 하는 곳으로 방향을 돌려 달려갔다.

 

가는 도중 폴라는 라온이 궁금해 하던 내용을 차분히 설명해주었다.

“저는요, 여기에서 살 작정을 하고 왔었어요. 그런데 도착한 바로 그날 참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라온님을 처음 보는 순간 완전 필이 꽂히는 바람에 라온님을 반려자로 점찍었더랬지요.”

라온은 얼떨떨했지만 폴라의 입으로 직접 라온을 자신의 반려자로 점찍었었다는 말이 그를 흥분시켰다.

“오히려 제가 폴라님에게 필이 꽂혔었는데요?”

“호호호, 그럼 우린 서로 필이 꽂힌 셈이네요? 여기 말로 치면 저희 두 사람 모두 서로 눈이 맞은 셈이네요. 다행이어요. 사실 라온님의 집에 갔다가 라온님의 그런 마음을 확신했어요. 그래서 우리의 아이를 만들 생각을 했던 거구요.”

“우리의 아이요?”

라온은 아이라는 뜻밖의 말에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그를 간절히 원한다는 그녀의 진솔한 감정고백이 고맙게 여겨졌다. 그런데 집에 있다는 남자들은 아이들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도 그냥 남의 애들이 아니고 우리의 아이들?

‘라온 너 지금 뭔 소리하는 거야?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정신 좀 차리자!’

속으로 쭝얼대면서도 그런 궁금증이 주소지로 치닫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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