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의 탐색
계획했던 일을 1주일 만에 끝내고 가온이 쉬고 있는 사이 제이슨은 비즈니스 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김중훈은 협박장에서의 기한이 지나도록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그렇지 제까짓 것들이 무슨 수로 이곳에 들어 올 수 있겠어?’
그러나 만약을 대비하여 당분간 경비상황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며칠 더 지난 후 보물을 확인 해보고자 금고를 열어보고 기절초풍했다. 다른 것들은 모두 멀쩡하게 있는 데 보물을 담아둔 케이스만 보이지 않았고 달랑 종이 한 장이 대신하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집어 들며 중얼거렸다.
‘이게 종이로 변할 리는 만무하지.‘
그런데 더 기가 차는 것은 종이에 쓰인 글이었다.
’본인이 직접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강탈했던 물건은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어야겠지? 나머지 것들도 좋은 일에 쓰도록 하게. 회한의 눈물만이 치욕의 오점을 씻어버릴 수 있다네.‘
이런 글과 함께 두 겹의 매화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 종이가 철통같은 경비망이 뚫렸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문제는 감쪽같이 사라진 보물을 찾아달라고 경찰에 공식적으로 수사의뢰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게 금고에 들어있었다는 것이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이 그런 사실을 믿지도 않을 것이고 공연히 자신의 비밀만 세상에 알려지고 마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 빤했다. 그는 즉각 경호요원들을 불렀다. 시시티브이의 화면을 점검하면서 그 동안의 경비상황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들은 대체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전혀 이상이 없었다고만 대답할 뿐이었다. 그들을 의심을 만한 것은 없었기 때문에 곧바로 철수시켰다. 분한 마음에 도저히 그대로 넘어갈 수 없었던 그는 머리를 짜내다가 비밀리에 범인을 추적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와 상당한 친분을 맺고 있는 고위층에게 전화를 하여 개인적으로 수사를 맡길 수 있는 경찰간부를 소개해달고 했다. 그는 경찰청장에게 전화를 하여 김이 요구하는 사항을 비밀리에 맡아 수사해주도록 요청했다.
마고도경감이 수사보고서를 검토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수사부장의 전화였다. 당장 현안이 없는데 웬일일가 궁금해 하며 부장실로 들어갔다. 부장은 그가 자리에 앉자 은근한 어조로 상황을 설명했다. 마경감은 속으로는 짜증스러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보겠다면서 나와 김중훈이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음흉하게 웃으며 자신의 집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의 어투는 꽤나 거만했고 비위를 상하게 했지만 꾹 눌러놓고 시간 약속을 했다. 서경위를 불러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은밀하게 그에 대한 조사를 부탁했다. 서경위는 말하지 않아도 상황을 대충 알겠다는 듯 미소를 머금으며 나와서 즉시 그의 신상 파악에 들어갔다. 상당한 재력가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에 대한 이력에 특이한 점은 없는 듯이 보였다. 다만 그의 부친이 일본군 출신이고 그가 태어난 곳이 일본이라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거부감을 주는 인물이었다. 또한 과거에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으로 고위층과의 단단한 연을 맺고 있는 듯 했는데 그 재산의 상당부분에는 아마도 부친이 강탈한 재물이 섞여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서경위는 그가 소유하고 있는 재물 중 특별한 것을 도난당하고 비공개로 수사를 의뢰한 것으로 짐작했다.
마경감과 통화한 후 전화를 끊으며 김은 중얼거렸다.
“짜식, 유명하다고 티를 꽤나 내네.”
괘씸하기는 했지만 믿을 만한 녀석이니 그럴 만도 하겠지 하면서 스스로를 달랬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그의 집 대문 벨이 울렸다. 김은 현관문까지 나와 그를 마중했다. 대문이 열리고 정원을 통해 현관으로 향할 때 까지만 해도 까칠한 표정의 그가 김의 그런 모습을 보고 다소 공손하게 바뀌었다. 김이 그를 서재로 안내하여 들어가자 자리에 앉기 전에 명함을 꺼내면서 인사했다.
“마고도라고 합니다.”
통화할 때와는 달리 믿음직한 태도에 마음이 동한 김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악수를 청했다. 자리에 앉아 가정부가 차를 가져올 때까지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눈 다음 김이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기가 한 말은 절대 비밀이라면서.
집 외부의 경비상황에 대한 것과 이미 김이 경호요원들에게 확인했던 사항에 대해 듣고 난 후 직접 시시티브이의 화면을 다시 점검해보았다. 특별히 수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한 그는 사설경호요원들의 신상에 대해 물어보고 나서 그들의 소속과 연락처를 수첩에 적었다. 수첩을 안주머니에 집어넣고 난 마경감이 김의 안내를 받아 서재를 둘러보며 지하실은 어디에 있는가 묻자 김이 책상서랍에서 리모컨을 꺼냈다. 버튼을 누르자 서재 한편에 세워져 있는 책장이 좌우로 움직이며 비켜났다. 육중한 방화문이 나타나자 김이 다시 리모컨의 버튼을 눌렀다. 이번에는 방화문이 한편으로 미끄러지듯 열렸다. 마경감은 이 모습을 보면서 범인이 경호요원들 모르게 집 내부로 들어왔다 하더라도 사전에 이런 장치를 모른다면 지하실로 침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경호요원들이 지하실 입구를 아느냐는 마경감의 질문에 김은 고개를 저으며 지하실의 지자도 모른다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김을 따라 지하실로 내려가면서 평소 리모컨은 어디에 두는지 물어보자 김은 언제나 자기 베개 밑에 넣어두고 잔다고 했다. 그 동안 혹시 자고 있는 동안 잠에 곯아떨어졌거나 리모컨이 제자리 없었던 적이 있는가 물어보니 펄쩍 뛰면서 그런 일은 절대 없었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이 말에 섞인 과장된 말투와 그의 나이가 80세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을 것이다. 사전에 김의 이런 습관을 알고 있는 내부 사람과 공모하여 마취와 같은 방법을 이용해 그를 완전히 장악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가 기억해내기는 불가능할 테니 말이다. 지하실로 내려온 그는 먼저 금고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김은 이 금고를 열려면 3시간 이상의 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도대체 어떻게 그게 사라졌는지 모르겠다면서 혀를 찼다. 마고도가 보기에도 엄청난 금고임에는 틀림없었다. 설사 천신만고 끝에 지하실로 들어온다 해도 금고를 열기가 쉬워 보이지 않았다. 이 금고의 특성을 잘 알지 못하는 한 말이다. 그러나 자기가 모르는 희대의 금고털이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미치자 그는 수첩에다 이를 조사할 것을 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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