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의 이데누보(idée nouveau)의 실체
이러한 오류가 필연적으로 몰고 오게 될 불행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폴라의 말이 이어졌다.
“마침 라온님이 제가 알지 못했던 외계인에 의한 계획출산 가설을 말씀해주셨죠. 가설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해서 현재 살고 있는 지구인과 같은 신인종이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그래서 그것을 활용하여 새로운 지구를 만들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던 거예요. 그 다음으로는, 신화라든가 그냥 전설로만 전해지는, 지구인에게 닥쳤었던 엄청난 재앙은 실제일 가능성이 다분하죠. 게다가 여러 번 그런 일이 반복되었다는 것도요. 이런 점에도 주목해야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라온님과 제가 소위 지구인이 말하는 그런 신적인 존재가 될 필요성이 제기되는 거랍니다.“
폴라는 잠시 말을 멈추고 라온의 동의를 구하는 듯 했다.
“그건 왜죠?”
“왜냐하면 현존하는 인류가 되풀이 해온 커다란 오류, 어쩌면 지구 자체를 파괴할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그런 잘못을 우리의 후손들이 답습하지 않고 온전하게 지구를 낙원으로 지켜나가도록 하기 위함이죠. 나아가 전 우주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존재로 거듭나게 인도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거랍니다.“
“그런데 제가 전에 큰 소리는 쳤지만 신과 대등한 능력을 가진다는 것은 무리이지 싶은데요.”
“저에게는 지구에 사는 누구보다도 훨씬 우수한 과학적지식과 기술이 있으니 이것이 그 기초가 될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능력을 키워 가면 될 거예요. 다만 이러한 능력은 후손들이 잘 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관리할 때 필요한 것이지 징벌을 내리려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인류는 자유의지라는 혜택을 부여받았음에도 이를 남용하였고 그로 인한 징벌 또한 어마무시 했던 거죠. 저희들은 이와 같은 사례를 사전에 방지하자는 의미도 있습니다.”
라온도 그녀의 말 중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의 자가당착적이고 비열하기도 하며 잔인한 성질과 처세에 대한 부분은 동의할 수 있었다. 허나 두 사람의 자손으로 신인종을 퍼트린다는 계획에 대해서는 여전히 선뜻 그녀의 손을 들어주기가 어려웠다. 다만 솔직히 그 자신이 그녀와 함께 신과도 같은 존재로 군림한다는 점에 구미가 당겼다는 점은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생뚱맞게도 계획의 성사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리스크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이건 노파심에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만일 인류가 성경에서 얘기하는 창조론에 따라 지구상에 나타난 것이 아니고 어느 초인과도 같은 존재의 도움을 받아서 기존 구 인류를 제치고 보다 우수한 성질을 가지고 나타난 것이 기정사실이라고 볼 경우에 말이죠. 우리를 있게 도와준 초인 혹은 외계 종족이 그들이 탄생시킨 현 인류의 존망을 가만히 두고 볼까요?“
이런 라온의 의견에 그녀도 무턱대고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겠지만... 만약 유사한 일이 벌어진다 해도 제가 충분히 커버할 수 있으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폴라가 이렇듯 장담은 했으나 구체적으로는 말하지는 않았다. 라온도 더 이상 깊숙하게 개입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잠자코 있었다. 마치 음모론에서나 나올 법한, 인류 리셋에 대한 환상과도 같은 이데누보에 대한 두 사람의 토론은 이렇게 일단락 났다.
가뿐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마음에 담겨있는 것들을 속 시원하게 다 밝혔다는 점이 중요했다. 또한 앞으로 조정과 합일만 남았기에 다소간이지만 부담은 덜은 셈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고 웃으며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참고로 호모드라마쿠스라는 서적에서 저자 윤진은 팬옵티콘(panopticon)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미성숙한 정치일수록 개인의 행복추구를 단죄하고, 개인의 욕망이 가족, 집단,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국가의 이익이라는 절대선을 가로 막는다는 죄책감을 불어 넣는다. 이것은 저항의 가능성을 상당부분 원천 봉쇄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폭력적이다. 여기에서 그 미성숙한 권력 환상중독자들은 권력의 항시적 감시를 내재화한 팬옵티콘이라는 형태를 유효적절하게 활용하여, 사람들을 길들이고 자기 스스로가 자기의 욕망을 단순한 이기심의 발로로 치부하게 한 다음 결국은 그 욕망을 공공의 적으로 간주하게 만든다.
며칠 뒤 폴라는 라온의 완전한 동의를 얻을 때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나 준비는 해야 될 것 같다면서 필요한 기기의 설치에 대해 설명했다. 우선 지구상의 위험물질을 탈 없이 제거하는 사전 작업이 수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을 적절히 표시해줄 벽걸이용 대형 TV를 주문하자고 했다. 이것을 서재에 설치하기로 했다. 라온은 이의가 없었으므로 곧바로 들여와 기존 TV옆의 벽에 붙여놓았다. 그런데 개조된 것인지 몰라도 터치도 아닌 소위 안구인식지문방식으로 열고 끄는 것이었다. 라온과 폴라가 각각 등록을 했다. 그리고 만약을 위해 터치방식도 보완했다. 폴라라는 글씨를 스크린에 쓰면 열리도록 해놓았다. 라온에게 폴라는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별도의 기기에서 원격조정장치로 확인한 각종 핵무기, 생화학무기 저장소와 생산기지 등을 표시할 것이라고 했는데 얼마 후에 모든 표시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온전한 지구를 물려받으려면 이것들을 지구인 스스로 안전하게 폐기시키도록 조치하게 하는 방법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지구를 물려받을 방법에 대한 것은 연구 중이라면서 폴라는 라온의 손을 잡아 이끌어 유리문이 달려있는 책장 쪽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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